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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 “양심상 죽일 수밖에 없었다”던 ‘공산당 학살자’와 살아남은 합창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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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 “양심상 죽일 수밖에 없었다”던 ‘공산당 학살자’와 살아남은 합창단

입력
2019.10.28 17:29
수정
2019.10.28 1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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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 '반공 대학살'의 주범 안와르 콩고씨가 다큐멘터리 영화 '액트 오브 킬링'에서 자신이 사람들을 죽인 장소를 찾아 회고하는 장면. 액트오브킬링 캡처
인도네시아 '반공 대학살'의 주범 안와르 콩고씨가 다큐멘터리 영화 '액트 오브 킬링'에서 자신이 사람들을 죽인 장소를 찾아 회고하는 장면. 액트오브킬링 캡처

1960년대 중반 인도네시아 수마트라섬에서 공산당원 수천 명을 살해한 혐의를 받고 있는 안와르 콩고씨가 숨졌다. 그는 ‘공산당 학살자’라는 자신의 별칭을 자랑스러워했고, 끝내 처벌받지 않았다. 가족이 학살당한 유가족과 살아남은 자들은 합창단을 만들어 그날의 비극을 알리고 있다.

28일 자카르타포스트 등에 따르면, 안와르씨는 25일 오후 북부수마트라주(州)의 주도 메단의 마다니종합병원에서 78세로 생을 마감했다. 안와르씨의 아내는 “신경이 눌리는 등 남편이 몇 가지 병을 앓고 있었지만 건강에 대해 거의 불평하지 않았다, 자카르타에서 손자손녀들을 만나고 돌아온 후 피곤하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안와르씨는 2013년 개봉한 미국 조슈아 오펜하이머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액트 오브 킬링(Act of killing)’에 출연하면서 국제적인 명성을 얻었다. 다큐멘터리는 1965년 9월 수하르토가 주축이 된 군부가 공산당의 쿠데타를 진압하며 권력을 잡은 뒤 벌어진 ‘반공 대학살’을 다뤘다. 당시 군이 조직한 민병대와 민간 자경단은 군부에 반대하면 공산주의자로 몰아 ‘공산당 척결 운동’이란 미명 아래 100만명 이상을 살해했다. 죽창으로 항문을 찔러 죽이고, 강간한 뒤 죽이고, 칼로 머리를 베어내기도 했다. 얼마 전만 해도 이웃이던 노동조합원, 소작농, 지식인, 화교 등이 가족 앞에서 희생됐다. 150만명 넘게 투옥됐다.

미 중앙정보국(CIA)이 ‘20세기에 벌어진 가장 처참한 집단 학살’이라고 보고했으나 미국과 서방 국가들은 수하르토의 ‘신질서(Orde Baru)’ 정부를 전폭 지원했다. 1998년 민중혁명으로 수하르토가 권좌에서 물러난 뒤에도, 아니 아직까지도 학살의 주체들은 나라를 장악하고 있다. 인도네시아 정부는 반공 대학살을 공개적으로 인정한 바 없다.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디알리타 합창단이 6월19일 자카르타의 인도네시아 주재 한국 대사관에서 공연을 하고 있다. 자카르타=고찬유 특파원
디알리타 합창단이 6월19일 자카르타의 인도네시아 주재 한국 대사관에서 공연을 하고 있다. 자카르타=고찬유 특파원

당시의 참상을 노래로 풀어내는 이들이 디알리타(Dialita) 합창단이다. 단죄는커녕 진실마저 밝혀지지 않은 채 어느새 지천명을 훌쩍 넘은 생존 여성들과 희생자 유가족 여성들이 2011년 자신들의 처지를 이름에 녹인 합창단을 만들었다. 디알리타는 ‘50세 이상(Di Atas Lima Puluh Tahun)’이라는 인도네시아어의 약자다. 합창단은 올해 광주인권상 특별상을 수상하고, 6월 인도네시아 주재 한국대사관에서 열린 초청 공연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Marching for Our Beloved)’ 등을 불렀다.

살아남은 자 10명(현재 22명)은 역사의 비극을 세상에 알리고자, 오명과 차별에 시달린 자신들을 치유하고 다른 피해자를 돕고자 함께 노래했다. 학살 당시 가족을 잃고, 성희롱과 강간을 당하고, 불법 구금과 고문에 시달리고, 이후에는 ‘빨갱이’라 손가락질 당한 신산의 세월. 그러나 그들은 가사와 운율에 적의와 증오, 탄식 대신 화해와 치유, 희망을 담았다.

인도네시아 '반공 대학살'의 주범 안와르 콩고(가운데)씨가 출연한 다큐멘터리 영화 '액트 오브 킬링'의 한 장면. 액트오브킬링 캡처
인도네시아 '반공 대학살'의 주범 안와르 콩고(가운데)씨가 출연한 다큐멘터리 영화 '액트 오브 킬링'의 한 장면. 액트오브킬링 캡처

반면 극우단체 판차실라청년단(PP)의 일원이던 안와르씨는 처벌은커녕 40년이 흐른 뒤에도 국민영웅 대접을 받으며 호화로운 생활을 누렸다. 안와르씨는 자신의 ‘위대한 살인’ 업적을 기록으로 남기자는 오펜하이머 감독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안와르씨는 희생자들을 죽인 방법, 매번 살인이 끝난 후 콧노래를 부르고 춤을 췄던 당시의 축하 행사를 당당하게 재연하고 증언했다. 영화 마지막 부분에서 그는 학살 현장을 찾아 “나쁜 짓인지는 알았으나 양심상 죽일 수밖에 없었다”고 말하며 살인 도구들을 소개한 뒤 참회하듯 구토한다.

이 다큐멘터리는 국제 영화제에서 많은 상을 받았고, 2014년 미국 아카데미영화제 다큐멘터리 부문 최우수작품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오펜하이머 감독은 이듬해 속편 격인 다큐멘터리 ‘침묵의 시선(The Look of Silence)’을 선보였다. 오펜하이머 감독은 안와르씨의 부고를 접하고 “그가 얼마나 끔찍한 삶을 살았는지, 얼마나 끔찍한 선택을 했는지, 얼마나 많은 가족을 파괴했는지, 그리고 어떻게 죄책감이 그를 파멸시켰는지 알고 있다”라며 이어 “그가 좋은 사람이 될 수 있었기 때문에 울었다”고 자카르타포스트에 말했다. 학살자는 죽었고, 노래는 계속 살아있다.

자카르타=고찬유 특파원 jutda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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