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말 필요 없이 동백씨는요. 기냥 행복해질 자격이 충분히 차고 넘치는 사람이에유.” 배우 강하늘은 KBS2 화제의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에서 감칠맛 나는 충청도 사투리로 멜로에 온기를 더한다. 강하늘이 따뜻하게 연기하는 시골 순경 황용식은 청국장 찌개 같다. 한번 빠지면 그 구수한 매력에서 도통 헤어나오기 어렵다. 올해 막 서른이 된 배우는 20~40대에 ‘촌므파탈(촌과 치명적인 매력남을 뜻하는 옴파탈의 합성어)’로 불리며 인기다.
개그맨 김용명도 촌므파탈이다. 요즘 ‘시골의 BTS(방탄소년단)’로 통한다. 영농후계자를 방불케 하는 박학다식한 농경 지식과 손재주, 붙임성 좋은 성격이 인기의 비결이다. MBC ‘놀면 뭐하니?’부터 TV조선 ‘아내의 맛’까지. 김용명은 방송가에서 시골 촬영 ‘섭외 1순위’로 꼽힌다. 드라마와 예능프로그램을 통해 대중을 사로잡고 있는 두 ‘촌므파탈’의 인기 비결은 무엇일까.
◇“‘너는 내 운명’ 김석중의 성장” 강하늘
텁수룩한 머리에 구수한 사투리, 목 늘어난 티셔츠를 입고 동네를 활보하는 청년은 ‘촌티 종결자’다. “옹산 바닥 그 어떤 주댕이도유(주둥이도요). 동백씨가 ‘용식이 꼬신다’는 소리 못하게, 동백씨한테 백여시란 소리 못하게 그렇게 할게유.” 황용식은 ‘동백꽃 필 무렵’에서 순박하고 투박하게 동백(공효진)에 다가가 그의 마음을 흔들어 놓는다. ‘차도남(차가운 도시 남자)’ 같은 남자 주인공은 없다. 충청 지역을 배경으로 펼치는 강하늘의 사랑은 1990년대 농촌 드라마 ‘대추나무 사랑 걸렸네’에서 봤을 법한, 우직하고 예스러운 사랑에 가깝다.
이 남자의 깊은 매력은 따로 있다. 황용식은 에이즈 감염자인 다방 종업원을 헌신적으로 사랑하는 영화 ‘너는 내 운명’(2005)의 노총각 석중(황정민)을 닮았으면서 다르다. 용식은 술집을 운영하는 미혼모인 동백에게 삶의 의미와 가치를 반복적으로 환기하고 알려주는 역할을 한다. “석중이 개인적인 사랑이었다면, 용식은 사회적 약자에 대한 포용을 더욱 공론화해”(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 울림을 준다. 21세기 멜로에서 ‘촌므파탈’ 강하늘이 사랑받는 이유다.
‘동백꽃 필 무렵’ 제작진에 따르면 ‘촌므파탈’이란 네 글자를 화두로 삼아 남성 주연 캐스팅을 시작했다. 20~30대 배우 중에서 적임자를 찾다 자연스럽게 강하늘로 좁혀졌다. 영화 ‘재심’(2016)에서 살인 누명을 쓴 청년 역을 맡아 전라도 사투리를 구사하며 선 굵은 연기를 보여주고, ‘청년경찰’(2017)에서는 티 없이 맑은 경찰의 모습을 발산한 점이 높은 점수를 얻었다. 강하늘은 부산 출신으로만 알려졌지만, 유년 시절 충북 청주에서 초등학교를 나왔다. 강하늘이 어색하지 않게 충청도 사투리를 구사하고 캐릭터의 느긋함을 살릴 수 있었던 이유다.
강하늘을 통해 황용식의 순박함은 생명력을 얻는다. ‘청년 유재석’이라 불리는 강하늘은 연예계 ‘미담 제조기’로 유명하다. “강하늘은 늘 두 손을 모아 얘기하는”(‘공효진) 예의 바른 배우로 정평이 나 있다. 스태프 60여 명의 이름을 모두 외우는 건 기본이다. 좀처럼 화를 내지 않아 ‘몰래카메라’도 무색하게 만든다. 나영석 PD 등 ‘꽃보다 청춘 아이슬란드 편’(2016)의 제작진은 강하늘이 화를 내는 모습을 찍기 위해 출연자인 정상훈, 조정석 등과 머리를 맞댔으나 실패했다. “힘든 여정에서 1주일 동안 리얼리티 카메라로 바짝 붙어 동행했는데 이렇게 동요 없고 다른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 연예인을 본 것도 신기했습니다.”(양정우 CJ ENM PD)
◇“시골은 내 운명” 김용명
“어, ‘6시 내 고향’ 하시던 분 아냐?” 충북 충주의 한 과수원. 인근 텃밭에서 깻잎을 따던 농장주는 한 사내를 보고 먼저 아는 척을 했다. 사내가 맞다며 고개를 정중히 숙이자 농장주는 오른쪽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고 환하게 웃었다. 고향에 내려온 자식 반기는 모습 같았다. 농장주는 사내 옆에 있던 가수 유희열을 알아보지 못했다. 지난 13일 방송된 MBC 예능프로그램 ‘같이 펀딩’에서 유희열에게 굴욕을 선사한 주인공은 김용명이다. 그는 ‘중년층의 아이돌’이다. 전통 시장이나 도시 외곽으로 가면 그의 영향력은 더욱 커진다. 2년 6개월 여 동안 일손이 부족한 농어촌을 찾아 ‘손’을 보태고, 외로운 노인들의 정겨운 말벗이 돼 준 결과다. 김용명은 2016년 12월부터 지난 5월까지 KBS1 ‘6시 내 고향’에서 코너 ‘청년회장이 간다’를 이끌었다.
‘청년 회장’ 김용명은 1991년부터 ‘6시 내고향’을 거쳐 간 여러 리포터와 달랐다. 지역 문화와 상품을 소개하는 데 그치지 않았다. 거제도에 가 직접 굴을 땄고, 밭에 나가 엉덩이에 흙을 묻혀 가며 생강을 캤다. 짧게는 1박2일, 길게는 2박3일에 걸쳐 현지에 머물며 밭과 바다를 오갔고, 시골 어른들과 함께 밥을 먹고 잠을 잤다. “이북 빼고 전국은 다 돈 거 같아요. 숯 만드는 일이 정말 힘들더라고요. 무거운 참나무를 벽돌집에 쌓고 며칠 동안 불을 때 숯을 만드는데, 어휴... ‘6시 내고향’ 초반엔 촬영 갔다 오면 매번 앓았어요.” 지난 25일 서울 마포구 한 카페에서 한국일보와 만난 김용명의 두 손엔 상처 자국이 곳곳에 새겨져 있었다. 자식과 멀리 떨어져 살거나 자식이 없는 노인들의 일을 돕다 생긴 ‘훈장’이었다.
김용명은 1년 전만 해도 ‘무명 개그맨’이나 다름없었다. 2004년 SBS 코미디 프로그램 ‘웃찾사’로 데뷔했지만 외면받았다. “CJ ENM 화장실에서 (SBS 공채 개그맨 출신) 김구라 선배님을 우연히 만나 인사드렸더니 ‘개그맨이세요?’라고 묻더라고요.” 김용명은 10여년 넘게 무대에서 빛을 보지 못해 방송 활동을 포기하려 했다고 한다. 그런 그에게 ‘6시 내고향’이 찾아왔고, 전국을 누빈 덕에 그는 서민 캐릭터로 사랑받는 보기 드문 개그맨이 됐다.
김용명은 28일 경기 이천에 갔다. 귀농 관련 방송 촬영이었다. 스케줄의 90%가 지방 촬영이라는 그는 집에 ‘몸빼바지’와 장화를 항상 준비해 둔다. “5,000평(1만6,530㎡) 밭 물려 주신다는 분도 있었어요. 내려와 농사지으라면서요. 시골은 제 운명인가 봐요, 하하하.”
양승준 기자 come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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