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최근 “누구를 위한 재정 건전성인가라는 관점에서 지금의 재정 지출을 미래세대를 위한 적극적 투자 개념으로 인식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특단의 대책을 통해 부침을 겪고 있는 경기 흐름을 조속히 반등시키는 것이 시급하며, 과감한 총수요 확장 정책이 요구된다“고 했다. 정부의 확장적 재정 집행의 정당성을 강조한 발언이다.
정부의 성장 기여도 급감이 지난 3분기 0.4%에 그친 ‘성장률 쇼크’의 주요 원인이며, 이는 추경예산 집행이 늦어졌기 때문이라는 자체 진단이 홍 부총리 발언의 배경으로 보인다. 하지만 재정 집행은 규모나 속도보다 적시ᆞ적소(適時ᆞ適所)의 원칙을 지켜야 목표를 이룰 수 있는 만큼 규모에만 매달리면 부작용이 클 수밖에 없다.
당장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내년도 예산안에 그런 문제점이 드러난다. 국회예산정책처 2020년도 예산안 분석에 따르면 수년간 집행 실적이 부진한 사업 예산이 계속 편성돼 예산 집행의 효율성을 떨어뜨리고 있다. 2018회계연도 결산 기준 ‘연례적 집행 실적 부진 사업‘(2018년 집행률 70% 미만이면서 최근 4년간 평균 집행률 70% 미만 사업)은 264개나 되는데, 내년 예산에도 5조1,263억원이 포함됐다. 이는 전년 대비 13%나 증가한 것이다. 해당 사업은 올해 예산에 4조5,385억원이 반영됐는데, 9월까지 예산현액(예산+이월) 대비 집행률은 34.6%에 그쳤다. 국방부 화력장비, 국토교통부 주차환경 개선, 환경부 오염 저감 등이 단골 집행 부진 사업이다.
국회 예산결산특위가 만든 내년 예산안 검토 보고서에 따르면 예산 집행에 필요한 입법 조치가 완료되지 않았는데도 정부가 집어넣은 관련 예산 사업이 13개, 14조3,234억원 규모에 달한다. 기초연금 급여 기준 확대, 농업직불금을 통합하는 공익형 직불제 등이 대표적이다.
가뜩이나 야당은 정부의 내년도 예산안이 총선을 의식한 ‘퍼주기 예산’이란 의심을 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허술한 예산안을 내놓고 국회 협조를 바라는 것은 임무 방기나 마찬가지다. 국회는 내년 예산안을 꼼꼼히 따지되 암울한 경기 상황을 고려, 법정기한 내 처리 모습을 보여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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