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등 “민망 패션” “남성 왜곡 시각이 문제” 논쟁 지속
“여성 옷차림에 책임 돌리는 것 자체가 문제” 지적도
버스 안에서 레깅스를 입고 있던 여성의 하반신을 몰래 찍은 남성에게 무죄가 선고된 사실이 28일 알려지면서 레깅스(leggins) 패션 논란에 다시 불이 붙었다. 레깅스 선정성 공방에 더해 “남성의 문제를 여성의 옷차림에 돌리는 게 문제”라는 반발도 이어지고 있다.
의정부지법 형사1부(부장 오원찬)는 이날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카메라 등 이용 촬영) 혐의로 기소된 A씨에 대해 원심을 파기하고 무죄를 선고했다. 법원에 따르면 A씨는 지난해 같은 버스를 타고 있던 여성 B씨의 엉덩이 부위 등 하반신을 휴대전화 카메라로 8초 동안 몰래 촬영하다 적발됐다.
원심은 A씨의 행동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하고 벌금 70만원을 선고했다. 그러나 항소심 재판부는 “레깅스는 일상복으로 활용되고 피해자도 이 같은 옷차림으로 대중교통에 탑승해 이동해 성적 수치심을 유발하는 신체 부위로 볼 수 없다”는 이유로 무죄 판결을 내렸다.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촬영된 부위가 성적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는 부위인지 여부는 일반적이고 평균적인 사람들의 관점에서 판단한다. 항소심 재판부는 2016년 대법원 판례를 근거로 피해자 옷차림, 노출 정도, 촬영 의도와 경위 등을 두루 살폈다.
B씨는 당시 엉덩이 위까지 내려오는 헐렁한 운동복 상의와 발목까지 내려오는 검은색 레깅스 하의를 입고 운동화를 신었다. 외부로 직접 노출되는 부위는 목 윗부분과 손, 발목 등이 전부였다. A씨가 B씨를 몰래 촬영할 당시 특별한 각도나 방법이 아닌 통상적으로 시야에 비치는 부분을 그대로 촬영한 것도 재판에 영향을 미쳤다.
항소심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레깅스는 운동복을 넘어 일상복으로 활용되고 있다”며 “레깅스를 입은 젊은 여성이라는 이유로 성적 욕망의 대상이라 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 이어 “피고인의 행위가 피해자에게 불쾌감을 준 것은 분명하지만, 피해자가 성적 수치심을 느꼈다고 단정하기 어렵고 피고인에 대한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의사를 표시했다”고 무죄 이유를 설명했다.
이 소식이 전해지자 레깅스 착용을 둘러싼 공방이 재연됐다. 몸에 밀착해 하체 라인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레깅스는 전세계에서 유행하는 패션이다. 하지만 일부에선 몸매가 드러나 보기에 민망하다는 이유로 외출복으로는 부적절하다는 주장이 나왔다. 동시에 여성의 옷차림을 왈가왈부 하며 남성의 왜곡된 시선을 정당화하는 것 자체가 잘못됐다는 반론도 이어졌다.
최근 미국에서도 노트르담대 학보에 ‘남성들의 성적 욕망을 자극한다’는 이유로 여성들의 레깅스 차림을 반대한다는 한 주부의 편지가 실리면서 논쟁이 촉발됐다. 레깅스가 성적 욕구를 자극하느냐 아니냐 논쟁으로 시작해 ‘여성을 성적 도구로 국한시킨다’는 반론이 거세졌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선 ‘#legginsdayND(노트르담 레깅스의 날)’이라는 해시태그와 함께 여성들의 시위가 벌어지기도 했다. 이를 두고 미국 일간지 뉴욕타임즈는 “레깅스를 둘러싼 논란은 단순히 그것을 입어도 된다, 안 된다는 표면적 문제를 넘어 훨씬 복잡하고 표현하기 힘든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날 온라인에서도 비슷한 논쟁이 이어졌다. 한 누리꾼(k*****)은 해당 판결을 언급한 뒤 “레깅스 패션이 신체 굴곡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기 때문에 남자로서 시선이 가는 건 어쩔 수 없다. 일상복으로 보기에 무리”라고 했고, 다른 누리꾼(o*****) 역시 “본인은 편할지 몰라도 보기에 너무 민망하고 불편하게 하는 패션이기 때문에 외출복으로 적절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반면 이런 시각 자체가 문제라는 의견도 많았다. 한 트위터 이용자(ys*****)는 “레깅스가 선정적이라면 신체 노출이 더 심한 짧은 치마나 핫팬츠 등은 훨씬 선정적인 게 아닌가”라고 반문하며 “개인의 자유를 심각하게 침해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또 다른 누리꾼(w******)은 “레깅스 복장이 남성을 유혹해서 부적절한 행동을 하게 만드는 식으로 책임을 여성에게 돌리는 것이 문제”라며 “시대착오적인 발상”이라고 강조했다.
손효숙 기자 sh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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