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탄핵 조사로 시끄러운 미국 정치의 심장부 워싱턴 DC가 모처럼 단합된 열기로 들썩이고 있다. 미국 메이저리그 프로야구의 워싱턴 내셔널스가 창단 후 처음으로 월드시리즈에 진출하면서 도시 전체가 정치적 갈등을 잊고 축제 분위기에 빠져든 것이다. 워싱턴포스트(WP), 뉴욕타임스(NYT) 등 주요 매체들은 “월드시리즈가 분열의 도시 워싱턴을 단합시키는 기회를 제공했다”며 워싱턴의 이례적 응원 분위기를 전했다.
25일, 26일 저녁 월드시리즈 3, 4차전이 열린 워싱턴 내셔널 파크를 가득 메운 4만3,000여명의 관중들은 평소 정치적 갈등 관계를 잊고 홈팀 응원으로 한 마음이 됐다. CNN의 베테랑 앵커 울프 블리처는 WP에 “업무상 종종 충돌하던 워싱턴 정가 사람들을 경기장에서 만나 하이파이브를 나눴다”면서 “매우 특별한 경험이었다”고 말했다. 아들과 함께 경기장에 나온 NBC 뉴스 방송 진행자 척 토드도 “취재원들과 말다툼을 하다가 ‘경기 보러 갈 거냐’고 물으면서 분위기를 전환했다”며 “지난 2주 동안 이런 일들이 아주 많았을 것이다”고 전했다.
이날 경기장에는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탄핵 조사를 진행하는 하원 외교위원회 위원장인 엘리엇 엥겔 민주당 의원이 내셔널스 모자를 쓰고 응원하는 모습이 포착됐고 마크 워너 민주당 상원 의원도 응원전에 참여했다. 이들의 정치적 적수인 공화당계 인사들도 홈팀 응원에 뒤지지 않는다. 대법관 인준 과정에서 민주당의 집중적인 공격을 받았던 브렛 캐버너 대법관, 마이크 펜스 부통령 비서실장인 마크 쇼츠, 2016년 트럼프 캠프 선거대책 부본부장을 맡았던 데이비드 보시 등은 수년간 내셔널스의 시즌 티켓을 구입해온 열혈 팬으로 알려져 있다. 미치 매코넬 공화당 상원 원내대표는 내셔널스의 월드시리즈 진출에 대해 “많은 미국 사람은 워싱턴에서 유일하게 정상적인 일이 일어났다고 생각할 것이다”며 촌철살인식 환영의 뜻을 보이기도 했다. 뉴욕 양키스 팬으로 알려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도 27일 경기장을 찾아 관람할 예정이다.
이처럼 워싱턴 정가마저 야구 열기에 들썩이는 것은 워싱턴을 연고로 둔 야구팀이 월드시리즈에 진출한 것이 1933년 이후 처음이기 때문이다. 당시 월드시리즈에 진출한 워싱턴 새니터스는 1960년 연고지를 미네소타로 옮겼고 이후 창단한 다른 팀도 다시 텍사스로 옮기며 워싱턴을 떠났다. 오고 가는 이주자들이 많은 도시 성격상 홈 구단에 대한 로열티가 적은 편이어서 야구팀도 정착하기 어려웠던 셈이다. 하지만 2005년부터 워싱턴에 연고지를 둔 내셔널스가 올해 월드시리즈에 진출하는 이변의 드라마를 쓰면서 각종 정치적 이슈로 혼란스러운 워싱턴에 잠시나마 숨을 돌릴 수 있는 탈출구를 제공했다는 평가다. WP는 “월드시리즈가 워싱턴의 공기를 짓누르는 탄핵조사와 청문회, 국가안보 우려 등을 일시 정지 시켰다”고 평가했다.
워싱턴=송용창 특파원 hermee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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