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천(公薦)은 공직선거 후보자를 추천하는 정당의 제도다. 공(公)은 글자 그대로 사사롭지 않아야 한다는 뜻이다. 천(薦)은 해태(廌)가 먹는 풀(艸)이라는 의미인데 그런 풀을 이용해 신에게 올리는 제사에 쓸 돗자리를 만들었다고 해서 ‘신에게 올리다’는 뜻이 담겼다고 한다. ‘퍼블릭 레커멘데이션(Public Recommendation)’이나 ‘퍼블릭 노미네이션(Public Nomination)’이라는 영어 표현도, ‘공인(公認)’이라는 비슷한 일본 용어도 신성함까지는 아니더라도 공적인 결정이라는 의미가 강조되는 것은 마찬가지다.
□오랜 군사독재 시절 국회의원 공천에서는 이 같은 공적인 의미가 사실상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공적인 천거가 되려면 적어도 당원, 나아가 민심까지 반영한 후보 선정 과정이 필수이지만 국내 정당사는 출발부터 그렇지 못했다. 김종필 등 5ㆍ16 쿠데타 세력이 1963년 만든 민주공화당이 당헌에 ‘공천권은 당 총재에게 있다’고 명기한 이후로 공천을 좌지우지한 것은 사실상 당대의 최고 권력이었다. 문민화 이후에도 한동안 이런 관행은 ‘전략공천’이라는 이름으로 지속됐다. 정치 신인 발탁에는 유리하지만 전횡의 폐단이 그런 장점을 상쇄하고도 남는다.
□바람직한 공천이란 당원과 국민의 의사를 공천 과정에 최대한 녹여내는 것임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20대 총선을 앞두고 당시 여당인 새누리당에서 미국식 선거제도인 오픈 프라이머리(완전국민경선제) 공천을 꺼내 반향을 일으킨 것도 이 때문이다. 비록 제도화에까지 이르지는 못했지만 일부 정당에서 이미 이런 공천이 일반화했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더불어민주당이 이른바 ‘시스템 공천’을 확정해 공천 과정을 투명하게 한 것도 공공의 의미에 부합하는 인재 선발 과정으로 볼 수 있다.
□이에 반해 자유한국당은 총선룰조차 정하지 못하고 있다. 내부 위원회에서 정치신인에게 50%, 청년ㆍ여성에게 40%의 가산점을 부여하고 문제 있는 현역 의원에게 최대 30%의 감점을 주는 혁신 공천안을 만든 모양이다. 하지만 당 지도부는 패스트트랙 처리를 물리적으로 방해해 국회선진화법 위반 혐의로 고발된 의원에게 정치 저항을 올바르게 앞장서서 했다며 가산점을 주겠다고 했다가 여론 반발로 철회했다. 범죄 혐의로 수사 대상에 오른 의원들에게 잘했다고 표창장과 금일봉 주는 것도 모자라 중용하겠다고 했으니 법마저 우롱하는 반개혁적인 공천룰이 아닐 수 없다.
김범수 논설위원 bskim@hankooko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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