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켈리 전 백악관 비서실장이 지난 연말 백악관을 떠나기 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게 자신의 후임자로 ‘예스맨’(yes man)을 임명한다면 탄핵당하게 될 것이라 충고했다고 밝혔다. 또 자신이 자리를 지켰다면 현재 트럼프 대통령의 정치생명을 위협하는 탄핵 조사도 피할 수 있었을 것이라며 유감을 나타냈다. 트럼프 대통령은 켈리의 고언을 받아들이지 않고, 그의 후임으로 그야말로 ‘트럼프의 입’으로 역할을 충실히 하는 믹 멀베이니를 선택했다. 켈리의 지적은 그가 백악관을 떠난 지 1년여 만에 발화한 우크라이나 스캔들로 사실상 현실화 됐다. 미국 법원이 25일(현지시간) 미 하원의 트럼프 대통령 탄핵조사가 정당하다는 판결을 내리면서 탄핵절차가 속도를 내고 있지만, 정작 트럼프 대통령은 켈리 전 비서실장의 말에 대해 “그런 적 없다”고 고개를 저었을 뿐이다.
워싱턴이그재미너는 26일 켈리 전 비서실장이 이 매체가 주최한 행사에 참석해 이같이 발언했다고 소개했다. 그는 “11개월 전쯤 내 자리를 대신할 후임자를 찾고 있던 트럼프 대통령에게 ‘무슨 일을 하든지 진실을 말해주지 않는 예스맨은 쓰지 말라’고 했다”며 “그러면 탄핵당할 거로 생각한다고 말했다”고 털어놨다. 지난 1월 멀베이니 대행에게 자리를 내어준 뒤 공개 발언을 자제해온 켈리 전 비서실장이 이례적으로 입을 연 것이다.
켈리 전 비서실장은 렉스 틸러슨 전 국무장관, 제임스 매티스 전 국방장관 등과 함께 취임 초기 트럼프 대통령의 충동적인 정책 결정을 견제한 ‘어른들의 축’(axis of adults)으로 불렸던 인물이다. 이날 그는 멀베이니 대행의 이름을 직접 거론하지는 않았지만 “현재 일어나는 일을 지켜보는 게 고통스럽다”면서 “내가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거나 나 같은 사람이 있다면 트럼프 대통령이 이렇게 엉망은 아니었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그는 현재 백악관에 정상적인 의사결정 시스템이 부재한 상태라고 꼬집었다. 켈리 전 비서실장은 “충고하고, 전문가들을 불러모으고, 논의를 통해 대통령이 충분한 정보를 숙지한 상태에서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하는 시스템이 자리잡고 있어야 하는데 지금은 분명히 없다”고 했다. 또 그는 “누군가는 대통령에게 권한이 있거나 혹은 없다고, 아니면 ‘대통령님 하지 마십시오’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면서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단한 생각이십니다, 대통령님’이라고만 하는 사람은 쓰지 말아야 한다”고 재차 강조했다.
이에 트럼프 대통령과 백악관은 켈리 전 비서실장이 그와 같은 충고를 한 적이 없다며 불쾌감을 드러냈다. 트럼프 대통령은 즉시 성명을 내고 “존 켈리가 내게 그런 충고를 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며 “만약 그런 얘기를 했다면 내가 사무실 밖으로 던져버렸을 것”이라고 반박했다. 스테파니 그리셤 백악관 대변인도 성명을 통해 “존 켈리는 트럼프 대통령과 같은 대단한 천재를 보좌하기에 턱없이 부족한 사람이었다”고 깎아내렸다.
이런 가운데 조만간 존 볼턴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트럼프 대통령의 탄핵조사를 이끌고 있는 하원 상임위원회에 나와 증언할 것이란 전망이 나왔다. CNN방송은 소식통을 인용해 “볼턴 전 보좌관을 대리하는 변호사들이 탄핵조사를 주도하는 하원 상임위원회와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고 전했다. 볼턴 전 보좌관이 증언대에 설 경우 그를 해고한 트럼프 대통령을 겨냥해 어떤 폭탄 발언이 나올지 관심이 주목된다.
강유빈 기자 yubi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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