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상 계절이 끝났다. 올해도 어김없이 노벨상 수상은 우리와 관계없는 일이었다. 이웃 일본은 올해도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해 모두 25명의 수상자를 자랑하게 됐다. 다른 노벨상 분야는 몰라도 우리나라 최고의 인재들이 의대에 몰리고 있는데 우리는 왜 노벨생리의학상에 후보자조차 제대로 내지 못하는 걸까. 적지 않은 의대 교수들은 “우리나라에서 그 동안 환자를 진료하는 임상의학 분야에만 집중했지 생리학 생화학 미생물학 약리학 등 기초의학 분야를 너무 등한시한 탓이 크다”고 입을 모은다. 기초의학을 전공한 한 의대 교수는 “의학 연구 인프라도 없고 제대로 된 기초연구를 하는 의사도 거의 없는 우리나라가 노벨생리의학상을 받기는 당최 글렀다”고 극언을 했다.
며칠 앞으로 대학수능시험이 다가왔다. 수능이 끝나면 성적 상위 0.05%의 최고 수재들은 전국 41개 의대로 몰려들 것이다. 수십 년간 이런 상황이 계속되면서 인재 블랙홀이 된 의대가 임상 분야에서는 어느 정도 세계적인 의사를 배출하면서도 기초의학 분야에서는 괄목할만한 성과를 내놓지 못하는 이유는 뭘까.
기초의학이 고사 위기에 처한 데는 미미한 정부 지원 탓이 크다. 10년도 되지 않은 정부의 의학 연구비 지원은 여전히 다른 분야 지원보다 빈약한데다 그마저도 임상의학에 중심을 둔 채 단기 성과에 집착하고 있는 실정이다. 한 기초의학 교수는 “많지 않은 정부의 연구비를 지원받아도 빨리 상용화하기 힘들다는 이유로 끊기기 일쑤”라고 말했다.
이처럼 생명과학의 뿌리인 기초의학이 꾸어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외면당하니 의대 내에서도 기초의학을 전공하는 의사를 찾기가 힘들다. 의대에서 6년을 공부하고 의사 면허를 딴 뒤 99%는 환자를 진료하는 임상의학 분야로 전공을 택한다. 의사 면허를 가진 기초의학 연구자가 갈수록 줄어 41개 의대에 총 30여 명밖에 되지 않는 게 현실이다. 20년 후에는 의사 면허를 가진 기초의학 교수가 단 한 명도 없는 의대가 절반을 넘어설 것이라는 우울한 전망까지 나온다. “기초의학을 전공해 봤자 취직도 잘 되지 않고 수입도 환자를 진료하는 임상 의사들에 비해 훨씬 적은데 누가 선뜻 전공하려고 하겠느냐”는 말에 고개가 절로 끄덕여진다. 기초의학을 전공하는 의사를 ‘천연기념물’이라고 하는 우스갯소리까지 있을 정도다.
그럼 고사 위기에 처한 기초의학을 누가 살려야 하나. 의료계에서는 ‘대한민국 대표 병원’인 서울대병원의 역할을 주문한다. 다행히 서울대병원을 이끌고 있는 김연수 신임 병원장이 새로운 깃발을 내세웠다. 김 병원장은 최근 간담회에서 “서울대병원은 다른 병원과의 경쟁을 넘어 대한민국 의료 발전을 선도하는 4차 병원의 역할을 수행하겠다”며 “진료ㆍ교육ㆍ연구 등에서 도약하는 새로운 개념의 4차 병원이 되겠다”고 다짐했다. 공공 의료기관인 서울대병원이 외래 진료 중심 관행에서 벗어나 희귀난치 질환 중심의 치료와 기초의학 등을 강화하겠다는 것이다. 서울대병원이 다른 병원으로 환자를 보내는 환자 회송률이 현재 3%대에 불과한데 10% 이상으로 크게 높여 중증 환자 진료와 연구에 집중하겠다는 뜻도 밝혔다. 특히 서울대병원 내에 ‘의료발전위원회’와 ‘미래위원회’를 만들어 의학 연구와 미래 인재 양성 등에 선제적으로 투자하겠다고 했다. 늦었지만 다행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날은 저물고 갈 길은 멀다(日暮途遠). 서울대병원은 고혈압이나 당뇨병 등 일반 환자를 돌보는데 그치지 말고 연구와 관련된 환자만 받는 진정한 ‘연구 중심 병원’으로 거듭나야 한다. 욕 먹을 각오로 환골탈태의 노력을 기울여야 발전을 기대할 수 있다. 서울대병원이 서울아산병원 세브란스병원 삼성서울병원 서울성모병원 등 ‘빅 5 병원’ 간 몸집 불리기 경쟁에서 벗어나 진정한 의학 발전에 천착하겠다는 다짐이 구두선(口頭禪)에 그치지 않기를 바란다.
권대익 의학전문기자 dkw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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