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한 도소매업 회사에서 일하는 강하연(가명)씨는 입사 1년이 넘도록 임금을 제때 받아본 적이 없다. 적어도 보름에서 길게는 한달 반 늦게 월급을 받는 일이 반복됐다. 퇴사 후 다른 직장을 알아보고 싶지만 ‘자진 퇴사를 하면 실업급여도 받을 수 없다’는 사실을 듣고는 사표쓰기가 두려워졌다. 강씨는 “2개월 이상 임금체불인 경우는 자진 퇴사해도 실업급여를 지급한다더라”며 “한달 반씩 임금이 밀린 날이 1년에 절반은 되는데, 이런 나는 실업급여를 못 받는다는 게 이해가 안 된다”고 토로했다.
27일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실업급여는 실직 후 재취업 준비 기간 동안 주는 생계안정급여로, 현행 고용보험법 상 자발적으로 퇴직하면 받을 수 없다. 고용보험법 시행규칙은 일부 예외사례를 허용하는데, ‘수급자격이 제한되지 않는 정당한 이직 사유’로 △임금체불ㆍ최저임금 미달ㆍ연장근로 제한 위반 등이 이직일 전 1년 이내 2개월 이상 발생한 경우 △사업장에서 종교ㆍ성별ㆍ신체장애ㆍ노조활동 등으로 불합리한 차별대우를 받은 경우 △사업장에서 성희롱ㆍ성폭력ㆍ그 밖의 성적인 괴롭힘을 당한 경우를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강씨처럼 상습적인 임금체불 피해를 입었더라도 ‘2개월 이상’ 발생하지 않았다면 실업급여를 받을 수 없어 퇴사를 망설이는 요인이 된다.
노동계는 고질적인 임금체불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서라도 피해 노동자가 체불 사업장을 벗어날 수 있게 적극적으로 실업급여를 지원하도록 수급 요건을 완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지난해 임금체불 피해 노동자는 35만2,000명이고 체불액은 1조6,472억원에 달한다. 이동훈 한국노총 부천상담소 부장은 “가장 기초적인 근로기준법 위반 상황에서도 피해 노동자가 실업급여 수급을 위해 그 피해를 감수하는 역설적인 상황이 벌어진다”고 지적했다.
직장 내 괴롭힘이나 감정노동피해를 견디면서도 자발적 퇴사라는 이유로 실업급여를 못 받고 생계가 곤란해질까 봐 망설이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성희롱이나 성폭력 피해를 당한 것과 마찬가지로 사실상 ‘비자발적’ 이직으로 볼 수 있지만 예외사항에 포함돼 있지 않고, 피해를 입증하는 과정도 쉽지 않아 실업급여를 받기 어렵다.
전문가들은 중장기적으로 자발적 이직자도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게 수급요건을 완화해야 한다고 말한다. 일부 사례만 예외적으로 지급하는 식으로는 사각지대가 계속 발생할 수밖에 없고, 실업자의 안정적인 구직활동을 돕는다는 고용보험 취지에도 맞지 않아서다. 2017년 기준 전체 이직자의 3분의 2(63.6%)가 자발적 이직자로, 거의 대부분이 실업급여 수급대상에서 제외됐다.
자발적 이직자를 실업급여 수급 대상자로 포함하자는 논의가 국회나 정부에서 그간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재정부담을 이유로 진척되지 못했다. 장인성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고용보험의 취지를 고려하면 자산ㆍ소득 수준과 관계없이 모든 실업자가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는 방향으로 수급자격 요건은 완화돼야 한다”고 말했다.
진달래 기자 az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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