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단체 “우리 농업을 미국 손에 갖다 바치는 조치” 반발
정부는 25일 세계무역기구(WTO) 개발도상국 지위 포기를 선언하면서 이번 결정으로 피해가 우려되는 농업 분야에 대해 선제적 지원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쌀 등 민감품목을 최대한 보호하고 피해 보전안을 마련하는 한편 농업의 미래를 위한 투자도 늘리겠다는 것이 핵심이다. 그러나 농업계는 즉각 정부 결정 철회를 요구하는 대규모 서울 도심 시위를 진행하는 등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홍남기 부총리는 이날 대외경제장관회의에서 개도국 지위 포기 방침을 발표하면서 “이번 결정은 미래에 WTO 협상이 전개될 때 우리 농업의 민감 분야는 최대한 보호한다는 전제 하에 이뤄졌다”며 “국내 농업에 영향이 발생할 경우 보전 대책도 반드시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정부는 먼저 작물 종류ㆍ가격에 상관없이 경지면적당 일정액을 지급하는 ‘공익형 직불제’를 도입하고 관련 예산도 크게 늘렸다는 점을 강조했다. 공익형 직불제는 WTO의 보조금 규제 대상에 해당하지 않는 지원책으로, 내년 예산안에는 공익형 직불제 전환을 전제로 직불금 예산이 올해(1조4,000억원)보다 57%(8,000억원) 늘어난 2조2,000억원으로 책정됐다. 정부는 또 재해를 입은 농업인에겐 재해복구비 지원단가를 현실화하고 농업재해보험 품목과 보장범위를 확대하기로 했다.
국산 농산물의 수요 기반을 넓혀 판매를 촉진하고 수급조절 기능을 강화해 농가소득을 보전하는 대책도 제시됐다. 배추 무 마늘 양파 고추 등 주요 채소류에 대한 가격안정제를 지속적으로 확대하는 방안이 대표적이다. 아울러 농업의 지속가능성과 경쟁력 향상을 위한 청년ㆍ후계농 육성도 적극 추진된다. 정부는 이를 위해 한국농수산대학교의 기능과 역할 강화 방안을 마련하기로 했다.
이날 정부가 제시한 방안들은 농업계의 요구사항 가운데 수용 가능한 부분을 추린 것으로 풀이된다. 앞서 농민단체들은 △농업예산을 전체 예산의 4% 이상으로 확대 △공익형 직불제 도입 △한국농수산대 정원 확대 등 인력 지원 △소득 보장 △수요 확대 및 경영 안정화 △국무총리를 위원장으로 한 특별위원회 설치 등 6개 요구사항을 정부에 전달했다.
그러나 이번 대책이 성난 농심을 달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당장 이날 전국농민회총연맹(전농),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등 33개 단체로 구성된 ‘WTO 개도국 지위 유지 관철을 위한 농민공동행동’은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개도국 지위를 포기한다는 것은 한국 농업을 미국의 손아귀에 갖다 바치겠다는 것”이라며 철회를 촉구했다. 이들은 특히 “개도국 지위를 포기하면 감축대상보조금(AMS)을 지금의 절반 수준으로 삭감해야 하고 미국은 농산물 추가 개방 압력을 가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들은 정부가 장담한 것처럼 WTO 차원의 농업협상이 당분간 열리지 않더라도, 미국이 양자협상을 요구하거나 새로운 무역규범을 형성할 경우 이번 개도국 지위 포기가 우리 농업에 독이 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세종=이대혁 기자 selected@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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