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를 했다. 갑자기 결정된 일이었다. 새 공간을 알아보고 이사까지 하는 데 주어진 시간은 일주일 남짓이었다. 얼마나 분주했던지, 6년 남짓 그 동네에 머무는 동안 많이 사랑했던 선유도공원을 산책할 겨를조차 없었다. 그곳의 가을 풍경이 아주 근사한데 말이지. 인터넷을 뒤지고 발품을 팔아 이틀 만에 내가 원하는 동네에 자리 잡은 맞춤한 곳을 정해 계약을 마쳤다.
다만 기존 사무실의 35%에 불과한 공간으로 이동해야 한다는 난제가 가로막고 있었다. 멘탈 어디쯤에 있는지조차 모를 투지를 끌어 모아야 할 차례였다. 제일 먼저 한 일은 마스크를 쓰고 창고에 묵혀 두었던 4톤 분량의 책들을 꺼내는 작업이었다. 그들 중 여전히 상품 가치를 지닌 애들을 골라 물류대행사로 입고했다. 애석하게도 그런 책들은 얼마 되지 않았다. 저작권 계약이 만료돼 판매할 수 없거나 물류센터로 보내도 재고가 많아 현실적으로 보관료만 축낼 게 빤한 책들. 거의 다 내 손을 거쳐 세상에 나왔고, 스스로 명작이라 자부했건만 끝내 시장으로부터 외면당한 거대한 책 무더기가 눈앞에 쌓였다. 저들이 먼저 작별을 통지하듯 누렇게 변색된 책들도 보였다. 친환경 재생지로 만든 미스터리 스릴러 군단이었다.
폐기할 책에 드릴로 구멍을 내고 빨간색 래커를 뿌렸다. 애써 만든 책을 필요한 곳에 기증할 일이지 왜 그리 처참하게 작살냈느냐고 지청구할 분들이 계실지 모르겠다. 나도 수천 권을 여러 단체와 도서관에 기증했었다. 어느 해인가, 물류회사 반품창고에 쌓인 책들의 실상을 확인하러 갔던 나는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따로 도장까지 만들어 마음을 전했던 증정본 중 적잖은 양이 내가 알지 못하는 어떤 경로를 거쳐 그곳으로 들어와 있었다. 그로 인해 감내한 경제적 손실도 만만찮았지만 선의를 배반당했다는 설움은 오랫동안 사람을 아프게 했다.
사흘에 걸쳐서 고물상 리어카를 빌려 폐지를 실어 날랐다. 3톤 넘는 분량이었다. 자학에 가까운 중노동으로 온몸의 관절이 아팠지만, 그런 육체노동을 통해서라도 책 만드는 자세를 대차게 고쳐 잡고 싶은 마음이 절실했다. 직접 체험한 결과를 두고 말하자면 그나마 이 나이였으니 망정이지, 나와 동료가 몇 살만 더 늙었더라도 육체적ㆍ심리적 타격을 감당하지 못했을 것이다.
사흘째야 알았다. 하루 서너 번씩 리어카 가득 무거운 책 덩이를 실어 나르는 우리는 어느새 폐지 줍는 동네 노인들의 워너비스타가 되어 있었다. 당연했다. 할머니들은 작은 캐리어를, 할아버지들은 리어카를 끌고 박스며 전단지를 모아 매일 한두 차례 팔고 있었다. 한 번 고물상에 갈 때 손에 쥐는 돈이 할머니들은 3,000원, 할아버지들은 1만원 내외라고 했다. 그런데 책 무더기를 넘칠 듯 실은 리어카가 불쑥 나타나 한 번에 3만~4만원씩 수금하는 상황이 빚어졌다. 그이들이 다가와 은근하게 물었다. “어디에 가면 이런 거 구할 수 있어요?” 진작 안면을 텄으면 더 좋았을 텐데. 안타깝게도 사무실에 남은 폐지는 책 10여덩이와 5년 넘은 서류박스들, 그리고 오랜 시간 차곡차곡 쌓아 뒀으나 더 이상 보관하는 게 무망하다고 판단한 편지며 메모, 다이어리 같은 개인물품이었다.
고물상에 있던 세 분에게 두 시간 후 우리 회사 건물 주차장 입구로 오시라고 했다. 걱정과 달리 그이들의 리어카와 캐리어를 채우고도 남는 물량이었다. 흥감한 표정의 노인이 전진하는 순간, 리어카에서 종이 쪽지 하나가 나풀나풀 날렸다. 달려가 그것을 주웠다. 이름조차 가물가물한 사람으로부터 20년도 더 전에 받은 편지의 일부였다. ‘당신을 만나고 돌아오면서 어쩌면 운명이란 게 있을지도 모른다는….’ 잘려 나간 종이를 쓰레기장에 던져넣지 못하고 주머니에 조용히 구겨 넣는 이 심리는 또 뭐란 말인가.
지평님 황소자리 출판사 대표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