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음란물 소지 1년 이하 징역 vs. 미국, 5~20년 징역
“법정형 기준, 법 체계 차이 감안해도 지나치게 약할 처벌” 지적 나와

◇무슨 일이냐고요?
얼마 전 한국, 미국 등 32개국 수사기관이 공조해 폐쇄형 비밀 사이트 ‘다크웹’에 개설된 아동 음란물 사이트 이용자 300여명을 검거했습니다. 그 중 223명이 한국인으로 밝혀져 큰 충격을 안겨주기도 했는데요. 이 사이트의 운영자도 한국인이었습니다.
운영자 손모(23)씨는 지난해 검거돼 1심에서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 판결이 내려졌다가, 2심에서 징역 1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 받아 현재 복역 중이라고 합니다. 손씨는 2015년 7월부터 지난해 3월까지 다크웹에 ‘웰컴 투 비디오’ 사이트를 개설해 아동이 등장하는 음란물 동영상 22만여건을 유통하면서 이용자들로부터 415비트코인(약 4억원)을 챙긴 것으로 조사됐다고 합니다. 이번 공조 수사도 지난해 손씨가 구속되면서 이뤄진 후속 수사였다고 하네요.
◇그래서요?
같은 날 미국 법무부도 워싱턴D.C 연방검사실에서 이번 공조수사 결과를 발표했는데요, 미국의 수사 결과가 공개되면서 논란이 일었습니다. 각국의 이용자들이 받은 형량 때문이었습니다. 음란물 이용자들의 형량이 사이트 운영자였던 손씨에 비해 무거웠던 겁니다.
미국이 공개한 수사 명단에 따르면 텍사스주에서 검거된 A씨는 아동 음란물에 1회 접속하고 1회 다운로드한 혐의로 징역 5년 10개월에 보호관찰 10년형을 선고 받았다고 합니다. 또 B씨와 C씨는 아동 음란물을 입수하고 소지한 혐의로 매사추세츠주에서 각각 5년 징역형을 받았습니다.

같은 사건인데도 더 중한 범죄로 인식되는 한국인 사이트 운영자보다 해외의 단순 이용자가 더 무거운 형량을 받자 우리나라 사법부가 ‘솜방망이 처벌’을 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습니다. 21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아동포르노 사이트를 운영한 손모씨와 이용자들의 합당한 처벌을 원합니다’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오기도 했습니다. 이 청원은 25일 오전 11시 기준 동의자 24만명을 넘어섰습니다.
청원인은 “미국에서는 영상을 한 번 다운로드 한 사람이 15년형을 선고 받았는데, 한국에서는 사이트 운영자가 고작 18개월형을 선고 받았다”며 “아동을 성적 대상으로 학대하며 이윤을 만들었다는 반인륜적 범죄가 어째서 한국에서는 별 것 아닌 것처럼 여겨지며 범죄자가 솜방망이 처벌을 받는 것인가”라고 강하게 비판했습니다.
물론 청원인이 말한 미국 사례는 단순히 사이트를 이용한 것 외에 다른 혐의가 추가된 이용자일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실제로 미국이 공개한 명단에 따르면 워싱턴주에 사는 D씨는 아동 음란물을 입수하고 돈을 세탁한 혐의로 징역 15년형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다른 혐의가 포함됐다 해도 한국에선 아동 음란물 소지ㆍ운영자가 약한 처벌을 받는다는 지적이 나올 법도 합니다. 앞서 말했듯, 미국에선 단순히 아동 음란물을 소지한 사람들이 5년의 징역형을 받았을 정도이니까요.
◇한국과 미국, 왜 이렇게 다른 건가요?
징역 1년 6개월을 받은 사이트 운영자와 징역 5년을 받은 사이트 이용자. 왜 이렇게 큰 차이가 나는 걸까요.
먼저 한국과 미국은 법 체계가 달라 단적으로 비교하긴 어렵습니다. 그래도 따져보자면, 우선 법정형 문제를 꼽을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미국이나 영국에 비해 법정형 기준 자체가 낮기 때문입니다. 우선 ‘아동ㆍ청소년의 성 보호에 관한 법률’(아청법)에 근거해 영리를 목적으로 아동ㆍ청소년이용음란물을 판매ㆍ대여ㆍ배포ㆍ제공하거나 이를 목적으로 소지ㆍ운반하거나 공연히 전시 또는 상영한 자를 1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고 있습니다. 또 아동ㆍ청소년 음란물을 소지할 경우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벌금에 처합니다. 여기에 각종 감형 요소까지 더해지면 실제로 받는 형량은 이보다 더 줄어들 가능성이 높습니다.

반면 미국은 아동 음란물을 소지만 해도 주마다 5~20년의 징역형을 선고하고 영국은 26주~3년의 구금형을 선고한다고 합니다. 손씨만 따져봐도 미국에서 재판을 받았다면 형량이 더 높아졌을 수 있습니다. 실제로 CNN은 “손씨는 한국에서 18개월 형을 선고 받았지만, 미국에서 아동 포르노 광고 혐의 등으로 미국에서 기소됐고, 이는 최대 30년형 선고가 가능한 범죄”라고 지적하기도 했습니다.
법 체계가 다른 것도 원인 중 하나로 분석됩니다. 우리나라의 법 체계는 주로 대륙법계를 따르고 있습니다. 대륙법이란 독일과 프랑스를 중심으로 하는 유럽대륙의 법 체계로, 영미법과 함께 양대 법체계를 이루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와 같은 대륙법계는 통상적으로 여러 개의 죄를 저질렀다 하더라도 가장 중한 죄의 형량에 2분의 1까지만 가중할 수 있는 ‘가중주의’를 따르고 있습니다. 또 형을 최대한 가중한다 하더라도 그 가중한 형량에도 최대 50년이라는 일종의 상한선이 있습니다. 반면 미국과 영국 등 영미법계는 여러 개의 죄를 저지른 경우, 각 죄에 따른 형량을 합산하는 ‘병과주의’를 채택해 별도의 상한선 없이 징역형을 선고할 수 있습니다. 미국에서 징역 100년, 200년형 선고가 가능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아무리 법정형 기준, 법 체계 등이 미국이나 영국과 다르더라도 지나치게 낮은 형은 쉽게 납득하기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이에 법조계에서도 아동 음란물 범죄 관련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습니다. 서혜진 한국여성변호사회 인권이사는 23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 전화 인터뷰에서 “음란물 유통으로 엄청난 수익을 얻는 구조를 끊어야 하는데 솜방망이 처벌이나 법정형에 비해 지나치게 감형이 남발되면 결코 이 범죄는 근절되기 어렵다”며 “고작 징역 1년 6개월이라는 것은 범죄의 심각성을 전혀 고려하지 못한 경미한 처벌”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윤한슬 기자 1seul@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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