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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레터] 그 해 ‘촛불 계엄령 문건’ 누가, 왜 만들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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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레터] 그 해 ‘촛불 계엄령 문건’ 누가, 왜 만들었을까

입력
2019.10.26 13:00
수정
2019.10.26 1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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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2월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앞두고 작성된 기무사 계엄령 문건

황교안ㆍ윤석열도 거론…”군부의 시대착오 구상 재수사 필요” 목소리도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이 21일 국회에서 계엄령 문건 원본 ‘현 시국 관련 대비계획’ 폭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시스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이 21일 국회에서 계엄령 문건 원본 ‘현 시국 관련 대비계획’ 폭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시스

지난해 국군기무사(기무사ㆍ현 안보지원사) 개혁의 발단이 된 ‘촛불집회 계엄령 문건’이 다시 정치권 논란의 핵으로 떠올랐습니다. 2017년 2월 이 문건 작성 당시 국무총리 겸 대통령 권한대행이었던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 지난해 7월 문건이 처음 공개되고 수사를 하던 시기 서울중앙지검장이었던 윤석열 검찰총장이 함께 거론되면서죠. 촛불 계엄령 문건, 대체 무슨 내용이길래 문제가 되고 또 누가 연루됐길래 이슈로 부상했을까요.

◇‘촛불 계엄령 문건’은 왜 논란이 됐나요?

지난해 7월 공개된 촛불 계엄령 문건. 한국일보 자료사진
지난해 7월 공개된 촛불 계엄령 문건. 한국일보 자료사진

‘촛불 계엄령 문건’은 박근혜 전 대통령 국정농단 촛불집회와 탄핵 심판이 이어지던 2017년 2월 당시 기무사가 작성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당시 기무사의 논리는 ‘촛불집회로 불거진 각종 시위가 폭력 양상을 띠면서 국가 비상사태로 번질 것으로 예측되기 때문에 이를 빠르게 안정화하려면 비상계엄 필요성을 분석해야 한다’는 것이었어요.

지난해 7월 공개된 내용은 ‘촛불집회 계엄령 검토 문건’에 딸린 67쪽짜리 ‘대비계획 세부자료’ 문건입니다. 국방부가 국회 요구에 따라 공개한 이 문건에는 계엄 선포 시 조치 사항이 적혀 있었습니다.

특히 박 전 대통령의 탄핵 심판 결과가 어떻게 되든 사회 혼란이 증가할 것이라는 예상 시나리오가 문제였죠. “혼란한 시기를 틈타 약탈ㆍ방화, 사재기 강력범죄 증가”, “언론에서 경찰의 시위대 강력 진압 편파ㆍ왜곡 보도로 국민들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을 통해 유언비어를 확산하여 민심이 흉흉”, “북한에서 우리 정부를 비방하는 대남방송이 증가하고, 지령 하달로 추정되는 간첩통신 출현” 등의 예상을 적은 내용입니다.

이번에 공개된 ‘현 시국 관련 대비계획’ 문건은 지난해 7월 언론에 공개된 기무사 계엄령 문건인 ‘전시 계엄 및 합수 업무 수행 방안’의 원본입니다. 군인권센터는 지난 21일 이 문건을 공개하며 “새로 입수한 문건에는 지난해 공개한 문건보다 계엄령 시행 계획이 더 구체적으로 담겨있다”고 밝혔는데요. 기무사는 문건에서 계엄 준비, 선포, 시행, 해제 등 네 단계로 나누며 계엄 선포 분위기 조성부터 어떻게 시행할지 자세히 적어뒀습니다.

◇계엄령, 과거에도 있었죠?

합수부 측이 1979년 12월 13일 정승화 전 육군참모총장을 체포한 뒤 비상계엄령 하에 동원된 장갑차와 군인들이 중앙청 앞을 삼엄하게 경비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합수부 측이 1979년 12월 13일 정승화 전 육군참모총장을 체포한 뒤 비상계엄령 하에 동원된 장갑차와 군인들이 중앙청 앞을 삼엄하게 경비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계엄령 발령 요건인 ‘전시·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 비상사태’가 흔히 일어나진 않죠. 하지만 1960년대 이후만 세어봐도 모두 7차례나 계엄이 선포됐습니다.

1961년 5ㆍ16 군사 쿠데타를 시작으로 박정희 대통령 집권기에 특히 많이 선포됐어요. 1964년 6ㆍ3사태, 1972년 10월 유신에 이어 박 전 대통령이 급작스레 서거한 1979년 10ㆍ26 사태 직후까지, 모두 4번에 이릅니다.

전두환 정권은 시작이 계엄령과 함께였습니다. 신군부 쿠데타인 1979년 12ㆍ12사태 다음날인 12월 13일 계엄령을 선포하고 당시 최규하 정부를 접수해 군사독재를 시작했어요. 전 전 대통령은 재임 중인 1980년 5월 17일 전국적으로 일어난 학생 시위로 인한 혼란을 막겠다며 계엄령을 내렸는데요. 이튿날인 18일 광주, 전남지역 학생들이 이에 반발해 시위를 하자 계엄군이 학생들과 시민들을 유혈 진압하는 5ㆍ18 광주 민주화운동으로 이어졌습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서거하고 비상계엄령이 내려져 한산한 1979년 서울 거리 모습. 한국일보 자료사진
박정희 전 대통령이 서거하고 비상계엄령이 내려져 한산한 1979년 서울 거리 모습. 한국일보 자료사진

◇촛불 계엄령 문건은 왜 논란이 된 건가요?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촉구하고 비선실세 최순실씨의 국정농단을 규탄하는 촛불집회가 2016년 10월 29일부터 이듬해 3월 3일까지 서울 광화문광장을 비롯한 전국 각지에서 열렸다. 사진은 촛불집회가 열린 광장을 장시간 노출 기법으로 촬영한 것. 한국일보 자료사진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촉구하고 비선실세 최순실씨의 국정농단을 규탄하는 촛불집회가 2016년 10월 29일부터 이듬해 3월 3일까지 서울 광화문광장을 비롯한 전국 각지에서 열렸다. 사진은 촛불집회가 열린 광장을 장시간 노출 기법으로 촬영한 것. 한국일보 자료사진

2016년 가을부터 이어진 촛불집회를 기억하시나요. 당시 집회에 참여한 시민들은 비폭력 정신을 유지하며 평화 시위를 벌여 독일의 공익재단으로부터 ‘2017 에버트 인권상’을 받기도 했습니다. 그런데도 기무사가 촛불집회를 포함한 시민단체들의 집회가 과격화할 것이라고 ‘예상’하고 계엄령 선포를 준비하며 문건을 작성했다? 어떤 의도가 있던 것은 아닌지 의문이 든다는 겁니다. 군인권센터가 공개한 ‘현 시국 관련 대비계획’ 문건에서 기무사는 “(박 전 대통령 탄핵 심판) 결과에 따라 보수세력 또는 진보(종북)세력 준동, 대립 격화”라며 “양측 모두 탄핵 심판 결과에 불복해 헌법재판소 점거 등 사법기능 무력화 시도”라고 예상하기도 했습니다. 특히 1960년대부터 80년대 당시 군사정권이 툭 하면 군을 동원하고 계엄을 선포해 권력을 지켜왔던 역사도 있었던 터라 박근혜 정부 군부의 의도가 무엇이었나 따져봐야 한다는 지적도 많았습니다.

군이 국회의 계엄해제 가결 시도 상황을 가정한 대목도 계엄령을 실제 준비했다는 구체적인 정황 중 하나로 해석되고 있습니다. 문건에 따르면 군은 당시 국회를 두고 “진보 성향 의원 160여명, 보수 성향 의원 130여명”, “여소야대 정국으로 의결 정족수를 충족해 계엄 해제 가능”이라고 묘사했는데요. 이에 군은 “국회가 임시회의를 소집해 재적의원 과반수 찬성으로 계엄해제 가결을 시도”할 경우, “당정 협의로 국회의원 설득 및 ‘해제 요구’ 직권 상정 원천 차단”, “국회의원 대상 현행법 사법처리로 의결 정족수 미달 유도”라며 계엄 해제를 막을 방법도 상세히 연구한 흔적이 보입니다.

◇황교안 대표ㆍ윤석열 총장은 왜 거론되는 거죠?

자유한국당 황교안(오른쪽 맨 앞) 대표, 나경원(가운데) 원내대표 등이 14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장에 입장하고 있다. 오대근기자
자유한국당 황교안(오른쪽 맨 앞) 대표, 나경원(가운데) 원내대표 등이 14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장에 입장하고 있다. 오대근기자

군인권센터는 기무사가 문건을 작성한 시기와 문건 원본 내용을 종합하면 당시 정부 핵심 인사들도 이 계엄령 시행 논의에 가담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주장을 펼칩니다. 여기서 거론되는 ‘정부 핵심 인사’ 중 한 명이 문건 작성 당시 대통령 권한대행 겸 국무총리였던 황 대표라는 건데요. 임태훈 소장은 “황 대표는 권한대행 직무가 개시된 후 2016년 12월 9일, 2017년 2월 15일과 20일 총 세 차례 NSC에 참석했다”며 “새로 입수한 문건에는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중심으로 정부 부처 내 군 개입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 형성’이란 내용이 적시돼 있다”고 연결 지었습니다. 이에 황 대표는 “터무니없는 가짜뉴스”라며 반박했습니다.

윤석열 검찰총장이 14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주차장에서 나와 퇴근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검찰총장이 14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주차장에서 나와 퇴근하고 있다. 연합뉴스

군인권센터가 제기한 의혹은 이뿐만이 아닙니다. 지난해 계엄령 검토 문건 의혹을 수사한 민군 합동수사단의 수사가 부실했다는 주장도 펼치고 있는데요. 임태훈 소장은 “시기상 황 대표가 개입했을 가능성이 충분히 의심되는데도 검찰은 황 대표를 한 차례도 소환해 조사하지 않았다”며 “사실상 수사를 덮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언급된 인물이 윤 총장입니다.

윤 총장은 당시 서울중앙지검장을 맡고 있었는데, 군인권센터는 윤 총장이 합수단장의 상급자로서 수사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논리입니다. 대검찰청은 이에 “합수단은 기존 검찰조직과 별개의 독립수사단이고 윤 당시 서울지검장은 지휘 보고 라인이 아니어서 관련 수사 진행 및 결정에 관여한 바가 없음을 알린다”고 해명했어요.

군인권센터는 즉각 반박했습니다. 근거 중 하나는 불기소이유통지서 발신인이 서울중앙지검장이었고 직인도 찍혀있었다는 건데요. 임 소장은 “최종 수사 결과를 기재한 문건에 엄연히 윤석열 검찰총장 직인이 찍혀있는데, 관여한 바 없다고 한다면 합동수사단장이 지검장의 직인을 훔쳐다 찍었다는 말과 다를 게 없다”고 지적했어요. 물론 검찰은 임 소장이 공개한 불기소이유통지서 형태가 검찰이 갖고 있는 문서 형식과 다르다는 입장입니다. 검찰 관계자는 “최종 수사 결과가 기재된 ‘불기소결정문’에는 검사장 직인이 찍힌 바 없고, 결정 내용을 사후 통지하는 ‘불기소이유통지서’에 기관장 직인이 자동으로 찍힌 것에 불과하다”며 “’불기소결정문’이 판결문이라면 ‘불기소이유통지서’는 판결문을 넣어 민원인에게 발송하는 봉투라고 보면 된다. 누가 판결했는지를 보려면 판결문의 판사 이름을 보는 것처럼, 누가 결정하였는지를 보려면 ‘불기소결정문’의 검사 이름을 보는 것은 상식”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촛불 계엄령 문건 논란은 앞으로 어떻게 될까요?

국군기무사령부가 작성한 ‘촛불시위 계엄령’ 문건과 세월호 민간사찰 의혹을 수사 중인 특별수사단이 설치된 지난해 7월 서울 용산구 국방부 별관의 모습. 배우한 기자
국군기무사령부가 작성한 ‘촛불시위 계엄령’ 문건과 세월호 민간사찰 의혹을 수사 중인 특별수사단이 설치된 지난해 7월 서울 용산구 국방부 별관의 모습. 배우한 기자

우선 국방부는 말을 아끼는 듯합니다. 논란이 불거진 직후 “관련 내용을 확인하겠다”던 국방부는 최근 수사 중인 사안이라는 이유로 뚜렷한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는데요. 최현수 국방부 대변인은 24일 정례브리핑에서 촛불 계엄령 문건 조사 계획을 묻는 말에 “그 사항에 대해서는 수사가 진행될 예정이기 때문에 답변이 제한된다”고만 말했습니다.

문건 작성자로 지목된 기무사는 현재 존재하지 않는 조직인데요. 기무사 폐지 후 만들어진 군사안보지원사는 “문건에 대한 자제 조사 또는 진위 확인 사실이 전혀 없다”며 사안과 거리를 두고 있습니다.

황 대표는 한국당 차원에서 임 소장을 명예훼손,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위반 등의 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 지난 22일 고발했어요. 더불어민주당은 “사실이라면 매우 중대한 문제”라며 진위 여부 파악이 우선이라는 입장을 보이면서도 상황을 은근히 즐기고 있습니다. 검찰은 군인권센터의 주장이 나오는 대로 반박하고 있고요. 군인권센터도 한 치의 물러섬 없이 검찰의 반박에 맞서는 추가 근거 자료를 내놓고 있죠. 한국당과 군인권센터의 법적 다툼도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요. 이렇게 여러 플레이어가 움직이는 상황이라 촛불 계엄령 문건을 둘러싼 공방은 더욱 거세질 전망입니다.

☞여기서 잠깐, ‘계엄령’이 뭔가요?

계엄령: 대한민국 헌법 제77조에 있는 내용으로 대통령의 고유 권한이자 국가 긴급권. 국가 비상사태 시 법에 따라 헌법 일부 효력을 일시 중지하고 군사권을 발동해 치안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한다. 전시·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 비상사태가 발생할 때 해당 지역 내 행정권 또는 사법권을 군에 이관하고, 헌법에 보장된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할 수 있다. 대통령은 계엄 선포 시 국회에 바로 통보를 해야 하고, 국회가 과반수 찬성으로 해제를 요구하면 이를 따라야 한다.

경비계엄: 전시·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비상사태로 인하여 질서가 교란된 지역에 선포.

비상계엄: 전쟁이나 전쟁에 준하는 사태에서 적의 포위, 공격으로 인해 사회 질서가 교란된 지역에 선포.

이정은 기자 4tmr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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