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낙연 총리-아베 회담… 징용판결 후 한일 최고위급 대화
징용 배상 문제 안 풀리면 일 수출규제 철회 가능성 낮아
24일 이낙연 국무총리와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의 회담은 지난 7월 4일 일본의 보복성 수출 규제 조치 이후 성사된 양국 최고위급 대화였다. 100여일간 악화일로를 거듭했던 양국 관계를 돌이켜보면, 일단 두 총리가 “중요 이웃국가로서 한일관계의 어려운 상태를 이대로 방치할 수 없다”는 공감대를 확인한 것만으로도 성과라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하지만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ㆍ지소미아) 종료, 화이트리스트(수출심사 우대국) 배제, 강제동원 배상 문제 등 한일관계를 꼬이게 한 근원 문제를 해결하기까지 아직 갈 길이 여전히 멀다는 지적이 나온다.
일단 총리 회담을 계기로 외교당국을 포함한 다양한 소통과 교류가 재개될 것으로 보인다. 정부 고위관계자는 “정계 등 다양한 채널과 수면 아래에서 오고 간 대화들을 조금 더 공식적인 차원에서 교통정리를 하자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공식적인 대화의 장이 더 많아진다 하더라도 ‘서로 수용할 수 없는 것’에 대한 입장 차는 여전하다는 게 외교가의 대체적인 평가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이날 정부서울청사 외교부에서 내신 기자단을 대상으로 가진 브리핑에서 “외교당국 간 각 레벨에서 이어진 협의를 통해 서로 입장에 대한 이해도가 깊어지고, 간극이 좁혀진 면도 있다”면서도 “여전히 간극이 크다”고 밝혔다.
특히 이번 사태를 촉발시킨 대법원 일제 강점기 강제동원 배상 판결을 놓고 양국 사이에 온도 차가 크다는 점은 이번 회담에서도 드러났다. 이 총리는 이날 “한국은 1965년 청구권협정의 준수를 존중해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며 다소 유화적 태도를 보였지만, 일본 정부는 회담 후 징용 문제에 대한 자국의 입장을 명확하게 전했다며 기존 입장을 고수했다는 점을 부각시켰다. 오카다 나오키(岡田直樹) 관방부(副)장관도 기자들에게 “아베 총리가 ‘한국의 대법원 판결은 명확한 국제법 위반이며, 한일관계의 법적 기반을 근본적으로 뒤집고 있다’는 취지의 말을 했다”며 “이 총리는 ‘양측이 지혜를 짜내 문제를 해결하자’는 취지의 말을 했지만 우리는 국제법을 뒤집는 부정적인 움직임이 한국 측에 있다는 입장으로 조금 인식의 차이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밝혔다. 일본 언론들도 “핵심 이슈인 징용배상 소송을 놓고 평행선을 달렸다”는 평가를 내놨다.
물론 우리 정부도 각론으로 들어가서는 대법원 강제동원 배상 문제는 민사 소송이기 때문에 정부가 개입할 수 없고, 판결을 존중하려면 일본 기업이 배상금을 지불해야 한다는 기본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강 장관은 이날 “판결을 존중한다는 건 판결이 이행돼야 한다는 것이고, 그래야 원고, 즉 피해자들의 권리도 충족될 것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문제는 일본 정부가 강제동원 배상 문제 해결 없이는 수출규제를 철회할 가능성이 극히 낮다는 점이다. 현재로서는 산업통상자원부와 일본 경제산업성 차원에서 다뤄지고 있는 수출규제 문제와 청와대 의지가 강한 지소미아 종료 문제에 대해 양국 외교 채널이 권한을 갖고 협의할 경우 연쇄 해결을 타진해볼 수 있다는 기대가 유일한 출구로 거론된다. 조진구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일본의 수출규제 완화를 명분 삼아 지소미아 종료 결정을 철회하고, 추가 협의로 완전히 원상복귀하는 방향으로 가는 게 최선의 시나리오”라면서 “한일 정상이 의지를 갖고 결단해야 하는 부분”이라고 말했다.
다만 이날 회담에서 강제징용 문제를 둘러싼 구체적인 해법이나 대안을 논의하는 단계까지 갔던 것은 아닌 만큼 한일관계의 미래를 미리 예단할 필요는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실제로 외교가에서는 ‘일본의 사과를 전제로 한국 측이 위자료를 지급한다’거나 ‘일본 기업이 먼저 위자료를 지급하고 한국 측이 보전한다’ 등의 중재안이 거론되고 있다.
양진하 기자 realha@hankookilbo.com
권경성 기자 ficcione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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