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3일(현지시간) 온실가스 배출 절감을 위한 국제사회의 약속인 파리기후변화협약(이하 파리협약)을 탈퇴하겠다는 의사를 다시 한번 확인했다. 취임 4개월여 만에 ‘파리협약 무효화’를 선포했던 만큼 새삼스러울 게 없는 발언이지만, 이제 10여일 후면 실제로 관련 절차를 밟을 수 있는 상황이 된다는 점에 비춰 볼 때, ‘공식 탈퇴 준비를 하고 있다’는 선언이나 마찬가지다. 이날 시리아 주둔 미군 철수와 관련해 “세계 치안유지가 미군의 과제는 아니다”라고 말한 데 이어 트럼프 대통령은 거듭 ‘고립주의’ 외교 노선을 굳건히 한 것이다.
로이터통신과 뉴욕타임스(NYT) 등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펜실베이니아주 피츠버그에서 열린 한 에너지 콘퍼런스에 참석해 이 같은 방침을 밝혔다. 그는 “파리협약은 미국의 생산업체를 과도하게 규제한 반면, 외국 기업에 의한 환경 오염은 처벌도 않고 허용해 왔다”면서 “나는 미국에겐 완전한 재앙이고, 끔찍하며, 일방적인 파리협약에서 우리나라를 빼낼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것이 자랑스러운 아메리카 퍼스트(미국 우선주의)”라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앞서 지난 2016년 대선 후보 시절부터 파리협약을 ‘사기’라고 몰아붙였던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이후인 2017년 6월 결국 ‘협약 탈퇴’ 방침을 공식화했다. 다만 협정 규정상 다음달 3일까지는 탈퇴 통보가 불가능하며, 그 다음날부터 유엔에 탈퇴 서한을 낼 수 있다. 실제 효력은 이때로부터 1년 후 발생한다. 트럼프 정부가 올해 11월 4일 탈퇴 서한을 제출한다면, 공교롭게도 내년 미국 대선(2020년 11월 3일) 이튿날부터 미국은 ‘파리협약 미가입국’이 되는 셈이다.
하지만 미국이 탈퇴 절차에 공식 착수할 경우, 이는 거센 논란을 불러올 게 뻔하다. 미국은 중국에 이어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두 번째로 많은 ‘온난화의 주범’이다. 미 청소년 환경단체인 ‘기후동원’의 말릭 러셀은 NYT와의 인터뷰에서 “파리협약 탈퇴 결정은 여론과는 동떨어진 ‘광기’이자, 다음 세대에 대한 진정한 배신”이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아울러 국제 무대에서 미국의 영향력, 곧 ‘도덕적 헤게모니’를 약화시킬 공산도 크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의 국무부 관리였던 앤드루 라이트는 “파리협약 공식 탈퇴는 미국 외교관들을 국제 회의에서 어려움에 빠트릴 것”이라며 “난파선 처지가 된 미국의 외교를 회복하는 데에도 시간이 한참 걸릴 것”이라고 지적했다. 진보 성향 싱크탱크 ‘아메리카 진보센터’의 니라 탄덴 회장도 “기후변화 문제 등에 대한 리더십을 러시아나 중국에 넘겨주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김정우 기자 woo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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