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시간 노동과 무급 야근에 시달리며 괴로워하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IT업계 노동자의 ‘과로 자살’이 산재로 인정받았다. 주52시간 근로시간제 시행 이후 일부 IT기업이 장시간 노동을 부추기는 포괄임금제를 폐지하기도 했지만, 정부의 실질적 제도 개선이 뒤따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에스티유니타스 웹디자이너인 장모(사망당시 36)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을 근로복지공단 서울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가 지난 16일 업무상 재해로 인정한 사실이 24일 뒤늦게 알려졌다. 장씨는 2015~2017년 12월 에스티유니타스에서 웹디자이너로 일했다. 그는 에스티유니타스에 근무한 129주 중 1년에 가까운 48주를 연장근로 제한 한도를 초과한 채 근무했고, 하루 12시간 이상 압축노동을 한 날도 전체 근무일의 17.9%(104일)나 됐다.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는 △과중한 업무 △야근 △직장 내 괴롭힘 △근로감독 요청이 좌절된 일 등 일련의 사건이 장씨에게 스트레스로 작용했다고 봤다. 또 장씨에게 우울증 이력이 있긴 했지만 업무량 증가와 직장 상사의 모욕이 업무상 스트레스로 가중돼, 기존 질환이 악화되는 데 직접적인 영향을 미쳐 자살에 이른 것으로 판단했다. 과로자살이 장시간 노동이나 괴롭힘이 누적된 사회적 문제라는 점이 인정된 것이다.
그 동안 장씨의 산재 인정과 회사의 사과, 정부의 재발방지 대책 마련을 촉구해왔던 언니 향미(40)씨는 “동생과 같은 죽음을 막으려면 IT업계는 더 나은 일터로 바뀌어야 한다”며 “동생은 장시간 노동을 부추기는 포괄임금제 틀 속에서 고통을 받았는데 IT업계엔 아직도 포괄임금제가 만연하다”고 지적했다. 장씨 유족과 에스티유니타스 과로자살 대책위원회는 장시간 노동을 막기 위해 고용노동부에 △포괄임금제 폐지 △출퇴근시간 기록 의무화 등을 요구해왔다.
특히 포괄임금제는 근로자가 일정 시간 연장 근로를 하는 것을 가정해 야근수당 등을 급여에 기본 포함하는 것으로, 야근과 연장근무를 당연시하도록 부추기는 제도라는 비판을 받아왔다. IT업계에는 포괄임금 방식으로 근로계약을 맺은 뒤, 계약 상 규정한 연장근무 시간보다 훨씬 늦게까지 장시간 노동을 하는 경우가 흔하다. 고용부는 지난해 포괄임금제 관련 연구용역을 진행했고, 올해 상반기까지 새로운 가이드라인을 발표할 예정이었으나 줄곧 미뤄지고 있다. 이에 대해 고용부 관계자는 “현장 혼란을 방지하기 위해 업종별 단체 노사, 전문가들과 의견 수렴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지현 기자 hyun1620@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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