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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C] 쓰레기 더미 위에서의 발전

입력
2019.10.24 18:00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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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6.5˚C’는 한국일보 중견기자들이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게, 사람의 온기로 써 내려가는 세상 이야기입니다.

서울 영등포구의 한 빌라 앞에 있는 분리수거함. 비닐과 음식물이 묻은 컵라면 용기 등이 뒤섞인 채 쌓여있다. 연합뉴스
서울 영등포구의 한 빌라 앞에 있는 분리수거함. 비닐과 음식물이 묻은 컵라면 용기 등이 뒤섞인 채 쌓여있다. 연합뉴스

쓰레기를 버리는 순간은 자신의 효용성에 대해 철학적으로 접근해볼 수 있는 때다. 물건 몇 개만 사도 가득 차는 ‘쓰레기 봉투’를 보면, 이것들이 혹시 어느 바다로 흘러가 거북이의 목을 조를지 걱정된다. 개인의 재능이 세상에 긍정적 기여를 하는 플러스(+) 요인은, 그가 만들어내는 쓰레기 총량이라는 마이너스(-) 요인을 넘기 어려운 것 같다. 재능이 아인슈타인 급이 아니라면 말이다.

스웨덴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16)가 유엔 연설에서 “돈과 끝없는 경제 성장의 신화에 대한 이야기만 한다. 도대체 어떻게 그럴 수 있나”라고 세계 정상들을 비난했듯, 산업혁명 이후 경제성장률의 노예로 살아온 지구인들의 규모ㆍ성장 집착은 박제수준이다.

미세먼지로 숨을 쉬기 어렵게 만들어 놓은 뒤 공기청정기를 만들어 팔면서 우리는 이것을 ‘성장’이라 부른다. 국내총생산(GDP) 등 경제적 의미에서 그렇다. 깨끗했던 물을 오염시켜 놓고 생수를 만들어서 팔면 이것도 ‘성장’이다. 각자 입지 않은 옷을 이웃간 교환해서 입으면 경제성장에 저해가 되지만, 미련 없이 버려서 쓰레기를 만들고 새로 사 입으면 경제성장에 일조하게 된다.

요즘은 경제성장률보다 고용률, 즉 일자리 규모에 대한 집착이 더 크기도 하다. ‘고용 없는 성장’이 상위 1%를 위한 향연일 뿐이라는 점에서 경제문제의 논의가 고용률에 집중되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그런데 여기에도 고정관념이 지배한다. 무엇인가를 생산하고 팔고 버리고 또 생산하는 것만이 ‘진짜 일자리’라는 고정관념. 이 때문에 국립대 빈 강의실 불끄기, 숲 가장자리 덩굴 제거하기, 폐비닐 등 농촌 폐기물 수거ㆍ처리하기와 같은 정부의 공공일자리는 지속적인 비난을 받고 있다. 의미 없고, 질 낮은 단기 일자리에 ‘혈세’를 퍼붓고 있다는 게 비판의 핵심이다.

그러나 아무것도 생산하지 않는 일자리는, 플라스틱을 만드는 일자리보다 과연 더 가치가 없을까. 지구 도처의 쓰레기 산들과 물고기보다 플라스틱이 많아진 어느 바닷속 풍경은 인간들에게 묻고 있다.

생태주의 문학의 불멸의 고전인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월든’(1854년 출간)에는 소로가 남들이 일자리로 보지 않은 일을 열심히 하는 대목이 나온다. 그는 “여러 해 동안 나는 눈보라와 폭풍우의 관찰자로 스스로를 임명하고 내 직무를 충실히 수행했다. 그리고 측량기사로서 큰길은 아니더라도 숲길이나 지름길들을 답사하여 그것들이 막히는 일이 없도록 했으며…(중략) 나는 빨간허클베리, 샌드벚나무, 팽나무, 폰데로사소나무, 검정물푸레나무, 흰포도나무와 노랑오랑캐꽃에도 물을 주었다. 그러지 않았더라면 그것들은 가문 날씨에 말라 죽었을지도 모른다”고 썼다. 현재 한국의 공공일자리와 닮은 ‘자연돌봄’ 활동이다. 그는 이런 ‘열심’에 보상이 없다는 데에 의문을 표시한다. 소로는 “마을 사람들이 나를 공직자의 대열에 끼워주거나 약간의 보수가 있는 한직 하나 주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 점점 명백해졌다”며 “내가 충실하게 적어온 장부는 한번도 감사를 받거나 재가를 받은 적이 없었으며, 지불 정산된 일은 더더욱 없었다”고 했다.

‘생산성’ 중심의 시각에서, 이런 일자리는 무의미하게 보일 것이다. 그러나 창의적 기업가 정신이 강물처럼 흘러서 완전고용에 도달한 ‘자본주의 이상국가’는 지구상에 도래할 리 없다. 경제학에서는 ‘무의미한 일자리’도 다른 관점에선 의미가 있다. 존 메이너드 케인스도 “빈 병을 땅에다 파묻고 정부가 사람을 고용해 빈 병을 파내라”며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 낫다”고 했다. 수요(소비)가 있어야 경제가 성장하는 만큼 온갖 명목으로 국민들의 소비여력(소득)을 높여줘야 경제가 순환한다는 논리다. 땅 파는 것 대신, 에너지ㆍ자연 돌봄은 왜 안되겠나. 실제 각종 돌봄 행위에 급여를 지급하는 것은 자동화ㆍ인공지능(AI) 시대의 일자리 문제 해결을 위해 오늘날 경제학자들이 검토하고 있는 방안이기도 하다.

이진희 기획취재부 차장 river@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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