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 아빠' 김준영 대한수의사회 정무부회장

 김준영 대한수의사회 부회장 
김준영 대한수의사회 부회장은 "11월들어 산속에 먹이가 부족해지면 야생멧돼지가 인가로 내려오는 경우가 부쩍 늘어날 것이라며 그 이전에 야생멧돼지로 인한 아프라카돼지열병의 추가 확산을 막아야 한다"고 우려했다./배우한 기자 /2019-10-22(한국일보)

전국 돼지 농가를 공포에 떨게 하고 있는 아프리카돼지열병(ASF)은 9일 경기 연천군 농가에서 14번째 발병이 확진된 후 2주 이상 추가 발병이 없는 소강 상태다. 지금까지 보고된 최장 잠복 기간이 21일인 만큼 아직 안심하기엔 이르다. 특히 ASF에 감염된 야생 멧돼지 발견 건수가 계속 늘고 있어 불안감을 키우고 있다. 김준영 대한수의사회 정무부회장을 만나 ASF 유입 경위와 현재 방역 상황, 향후 대책 등에 대해 물어봤다. 김 부회장은 돼지 질병 퇴치에 집중해 왔으며, 북한에 돼지 축산 기술을 가르치기도 했던 자칭 ‘돼지 아빠’다.

-아프리카돼지열병(ASF)이 그렇게 무서운 전염병인가. 우리나라까지 전염된 경로가 궁금하다.

“ASF는 1920년대 처음 수의학계에 질병으로 보고됐다. 아프리카 중부 지역의 풍토병이다. 처음 ASF 바이러스가 전염되면 치사율이 100%지만, 이 지역은 이미 만성화돼 치사율이 30% 내외다. 그런데 아프리카의 많은 지역은 돼지고기를 금기시하는 무슬림들이 살고 있고, 타 종교 지역의 돼지 사육도 소규모라 아프리카 내에서는 빠르게 확산하지 않았다. 이 와중에 아프리카와 가깝고 교류가 활발한 스페인과 이탈리아를 통해 ASF 바이러스가 유럽으로 건너왔다. ASF는 바이러스 중에서 상대적으로 무겁고 커 공기 전염이 거의 불가능하고, 주로 혈액 등 체액을 통해 전염된다. ASF에 감염된 돼지 고기를 음식찌꺼기(잔반)에 섞어 돼지 사료로 쓰는 것이 주요 감염 통로다.

서유럽이 축산 돼지 감염 확산을 막는데 성공한 것은 사육과 도축 과정에서 감염을 막는 시스템을 잘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ASF에 감염된 야생 멧돼지는 퇴치하기 힘들다. 첫 감염 30여년 만에 청정국을 선언한 스페인만 예외적 경우다. 이렇게 멧돼지를 매개체로 한 ASF가 동부 유럽을 거쳐 10여년 전 러시아와 국경을 맞댄 조지아까지 도달했다. 이후 조지아 인근 러시아에 확산이 보고됐다. 다행히 유라시아 대륙 한 가운데 있는 중앙아시아는 무슬림 문화권이고 인구도 적어 ASF가 동아시아까지 확산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지난해 3, 4월경 중국ㆍ북한과 맞닿은 러시아 연해주에서 ASF 전염 징후가 나타났다. 누군가 조지아 인근 감염 지역 돼지를 연해주로 옮겨 사육했을 가능성이 높다. 아직 공식 보고되지는 않았지만 당시 연해주 사육 돼지 상당수가 폐사했다고 한다. 당시 연해주 양돈 농장에서 일했던 중국인 노동자들을 통해 바이러스가 중국으로 옮겨간 것으로 짐작된다. 중국은 사육ᆞ도축 과정에서 검역 시스템이 허술하고, 위생 관념도 부족해 일단 유입된 ASF는 걷잡을 수 없이 중국 전역으로 빠르게 확산했을 것이다. 게다가 중국의 돼지 전염병 예방은 백신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는데 ASF는 백신이 없어 방역 당국도 속수무책이었다. 작년 8월 중국 당국이 북부 랴오닝성에서 ASF 발병을 공식 보고했을 때 상황을 보면 이미 2, 3개월 전인 5, 6월부터 전염됐을 것이라는 점을 짐작할 수 있다. 발병 첫 보고 후 중국 전역으로 확산하는 데는 3개월이 채 걸리지 않았다. 이후 몽골과 북한으로 확산됐다.”

-북한에 유입된 것은 언제인가. 결국 국내 ASF 바이러스도 북한에서 유입된 것인가.

“올해 2월 중순 북한 노동신문이 ‘아프리카돼지열병이 아시아 지역에 유행하니 조심해야 한다’는 사설을 게재했다. 이때는 이미 중국 접경 북측 지역에 광범위하게 ASF가 확산하는 시기였다. 개인적으로 입수한 정보에 따르면 올 3~5월 이미 평안북도 전역에 전염됐고, 빠르게 남하해 5~7월에는 개성시까지 퍼졌다. 장마당을 통해 감염된 돼지고기가 유통되며 빠르게 확산했으며, 9월 이전 휴전선 인근까지 도달했을 것이다. 접경 지역에 방치된 감염 돼지 및 멧돼지 사체가 9월 8일 북한을 휩쓴 태풍 ‘링링’으로 범람한 하천을 통해 남쪽으로 대량 들어왔고, 이 사체와 접촉한 작은 동물이나 해충 같은 매개체를 통해 국내에 ASF 바이러스가 유입됐을 것이란 시나리오가 현재로서는 가장 유력하다.“

-국내 축산 농가의 확산은 지난 9일 이후 보고되지 않았다. 초기 대응에 성공했다고 봐도 되나.

“지금까지 보고된 ASF의 최장 잠복 기간이 21일이니까 아직 안심하기는 이르지만, 초기 대응은 잘된 편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첫 번째 발병 농장의 신고가 매우 신속했다. 모돈(母豚)이 유산하고 고열 현상을 보인 직후 신고해 다음날 확진 판단을 내린 것이다. 관련 진단은 현재 우리나라가 가장 빠른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오후에 신고하고 혈액을 제출하면 다음 날 아침 6시에 확진 하고 인근 이동제한 조치를 내린다. 이런 점에 주목한 일본 NHK가 최근 제게 한국 축산 방역체계에 대한 인터뷰를 요청했을 정도다. 일본은 현재 돼지 콜레라로 불리는 돼지열병(CSF)이 창궐해 골치를 앓고 있는데, 한국은 백신 접종으로 거의 박멸 상태다. 돼지 방역 수준은 우리가 일본에 앞서있는 측면도 있다.”

-하지만 감염 야생 멧돼지가 걱정이다. 야생 멧돼지가 확산 매개체가 되지 않을까.

“발생 농장 중 잔반을 사료로 사용했던 소규모 농가를 제외한 대부분 대규모 사육장에서 감염 돼지가 모돈이었다는 점에서 볼 때 야생 멧돼지가 직접 병을 옮겼을 가능성은 아직 낮다. 외부의 멧돼지와 접촉해 감염됐다면 상대적으로 관리가 상대적으로 허술한 비육돈이 먼저 감염됐을 것이다. 모돈의 감염 근원지는 모돈의 탯줄 등을 처리하는 퇴비장일 가능성이 높다. 휴전선 인근에서 ASF에 감염된 멧돼지의 사체와 접촉한 야생 조류나 해충 등 2차 매개체가 돼지 축사 퇴비장을 오염시키고 이곳을 왕래하는 축사 직원을 통해 돼지에게 옮겨졌을 것으로 보인다. 북한의 ASF를 근절하지 않는 한 언제든 ASF가 국내에서 다시 유행할 가능성이 높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물론 감염 야생 멧돼지도 그대로 방치하면 사육 돼지에게 ASF를 옮길 수 있다. 그래서 접경지역 멧돼지의 신속한 사살이 중요한데 농림축산식품부와 환경부 간의 이견으로 신속하게 추진되지 못해 안타깝다. 접경지역 야생 멧돼지 관리 권한만큼은 농림축산식품부로 위임해야 한다. 11월이 되면 산에 먹이가 줄어들어 멧돼지들의 민가 접근이 더 늘어나게 되는 만큼 시간이 별로 없다. 많은 축산 농가가 애써 키운 돼지는 살처분하면서 야생 멧돼지는 보호하는 정부의 이율배반적 정책에 불만이 적지 않다.“

-북한의 ASF를 막지 못해 결국 국내 방역 대책에 큰 구멍이 뚫린다면 농림축산식품부와 환경부 간의 공조만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닌 것 같다.

“그렇다. 북한과 공동 방역 문제를 협의하려면 통일부도 참여해야 하고 민통선 내 야생 멧돼지 처리 등을 담당할 국방부도 협조해야 한다. 결국 국무총리실 산하에 관련 부처가 참여하는 ASF 공동대책기구를 만들어야 할 것이다. 세계동물보건기구(OIF)도 최근 북한에 ASF 발병 실태를 공식 보고할 것을 촉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은 5월30일 첫 ASF 발생을 OIE에 즉시 통보한 이후 아직 추가 정보를 제출하지 않고 있다. 이에 대해 OIE는 ASF가 한 건 이상 감지된 나라는 전염병 확산을 막고 접경 국가 보호 차원에서도 가능한 한 빨리 적절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며 남북이 ‘방역 공조’하라고 강조했다. 북한 정권 입장에서도 사육 돼지의 멸종을 더 이상 외면할 수 없는 상황일 것이다. 우리나라 국민의 연간 평균 육류 소비량이 60㎏인데 반해 북한은 6~10㎏ 내외에 불과하다. 그리고 이 중 1~3㎏이 돼지고기다. 가뜩이나 부족한 육류 소비량이 갑자기 더 줄어들면서 북한 주민의 민심 동요도 적지 않을 것이다. 우리의 앞선 방역기술과 사육ᆞ도축 시스템을 북한에 적극 전파하는 과정에서 경색된 남북관계를 뚫을 길이 생길 수도 있다.”

- ASF에 이어 연례행사처럼 돼버린 구제역과 조류인플루엔자 발병 시기도 다가오고 있다. 생산 효율성만을 추구하는 과밀하고 비위생적인 축사가 사라지지 않는 한 이런 유행병 발병은 피하기 힘들어 보인다.

“동감이다. 국민소득이 3만달러를 넘어선 만큼 가축 복지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다소 비싸지만 건강하게 자란 동물의 고기와 계란을 구입하는 소비자들이 늘어난다면 축산업계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 것이다. 농림축산식품부도 동물복지 인증농장을 관리하며 이런 변화를 유도하고 있다. 돼지 농가 중에도 동물복지 인증을 받고 고품질 돼지고기를 생산해 성공한 사례들이 늘어가고 있다.“

인터뷰=정영오 논설위원 young5@hankookilbo.com

정리=변한나(논설위원실)

 
 ●김준영(53) 대한수의사회 정무부회장은 

서울대 수의대 졸업 후 농민운동에 투신했다가 뒤늦게 수의사 면허증을 땄다. 이후 육가공ᆞ동물용의약품ᆞ사료 기업 등에서 근무하다 돼지를 주전공으로 선택했다. 20년 전부터 돼지 질병 박멸을 목표로 전국과 북한, 러시아 등 전세계를 돌아다녔다. 이 과정에서 북한 금강산 지역에 돼지를 보내기도 하고 러시아 연해주에서 돼지 사업을 하기도 했다. 지금은 축산에서 농업, 농촌환경개선으로 시야를 넓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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