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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삽질’ 감독 “4대강에 여전히 혈세 낭비…책임 묻기 위해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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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삽질’ 감독 “4대강에 여전히 혈세 낭비…책임 묻기 위해 기록”

입력
2019.10.24 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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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조로 뒤덮인 금강의 모습. 엣나인필름 제공
녹조로 뒤덮인 금강의 모습. 엣나인필름 제공

“기록하지 않으면 기억할 수 없고, 기억하지 않으면 책임을 물을 수 없습니다. 책임을 묻지 않으면 제2, 제3의 4대강 사업이 벌어질 수 있다는 위기의식으로 영화를 만들었습니다.”

다큐멘터리 영화 ‘삽질’(11월 14일 개봉)은 집념으로 기록한 4대강 실태 보고서이자 그 책임자에게 보내는 고발장이다. 국가 예산 22조2,000억원을 투입해서 우리 사회가 얻은 건 ‘물은 가두면 썩는다’는 당연한 상식뿐이었다는 뼈아픈 진실을 드러내 보이며, 이명박 정부 주도 아래 국가기관과 건설사, 전문가 집단이 어떻게 담합하고 이권을 교환했는지 추적한다. 23일 서울 동대문구 한 멀티플렉스 극장에서 열린 ‘삽질’ 언론시사회에서 연출자 김병기 감독은 “해마다 5,000억원에서 1조원가량 국민 세금이 4대강 관리를 위해 낭비되고 있다”며 “더 많은 사람들이 4대강 문제에 목소리를 내 주길 바란다”고 힘주어 말했다.

온라인매체 오마이뉴스 선임기자인 김 감독은 12년 넘게 4대강 사업의 진실을 파헤쳐 왔다. 2006년 당시 이명박 대통령 후보의 대선 공약 검증하기 위한 취재가 그 시작이었다. 한반도 대운하 사업을 첫 번째 공약으로 내건 만큼 당선 이후 실현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 당시 이 후보가 대운하 사업의 실효성을 주장하기 위해 방문했던 독일 마인-도나우 운하를 현장 검증 차 찾아갔다. 김 감독은 “당시 이 후보가 주장한 것처럼 운하가 만들어지면 수질이 개선되고 국운이 융성하냐고 현장 관계자들에게 물었더니 오히려 수질이 악화되고 지역 경제가 죽었다고 하더라”며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탐사보도를 하고 10년간 1,000개 넘는 댐을 부순 미국 등 해외 사례를 취재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영화에는 4대강 사업에 온몸으로 저항한 활동가들이 등장한다. 그 중 한 명이 충남 공주 지역 언론인인 김종술 시민기자다. 그는 금강에서 젤리 같이 생긴 괴생물체 큰빗이끼벌레를 처음 발견해 세상에 알렸고, 4급수종인 붉은 깔다구와 실지렁이도 찾아냈다. 김 기자는 협박과 폭행에 시달리면서도 1년에 340일가량 금강에 나가서 관련 기사를 1,700건 썼다고 한다. 그는 “4대강 사업의 가장 큰 문제는 지역 공동체 파괴”라고 지적했다. 4대강 사업이 시작되면서 강변 인근 지역민에게 막대한 보상금이 주어졌고 돈 문제로 갈등이 생기면서 가정 파탄, 자살, 이혼 등을 겪은 사람이 많다는 것이다. 그는 “지금도 마을 주민들이 갈라져서 소송을 벌이고 있는 곳도 있다”며 “4대강 사업이 지역민의 농지를 빼앗고 작은 마을까지 공동체를 무너뜨렸다”고 말했다.

4대강 사업의 총책임자인 이명박 전 대통령. 엣나인필름 제공
4대강 사업의 총책임자인 이명박 전 대통령. 엣나인필름 제공

영화는 4대강 사업을 적극 찬동한 인사들을 직접 찾아가 책임을 따져 묻는다. 이명박 전 대통령부터 이재오 2010년 특임장관, 권도엽 2012년 국토해양부 장관, 심명필 4대강 살리기 추진본부장은 물론, 당시 4대강 사업을 지지한 대가로 수십억원대 국책 연구 용역을 받은 학자들에게도 카메라를 비춘다. 4대강 사업을 잘했다고 생각하냐는 질문에 이들은 모두 황급히 도망치거나 궤변만 늘어놓는다. 블랙코미디의 한 장면처럼 우스꽝스럽기까지 하다. 이 과정에서 이 전 대통령이 직접 4대강 사업을 진두지휘한 정황이 담긴 국가 문서와 여론 조작 및 반대 세력 제압 계획이 담긴 문서 등이 공개된다. 건설사들이 담합해 국가 예산을 나눠먹고, 그중 일부를 비자금으로 조성해 윗선에 건넸다는 증언도 확보한다.

김 감독은 “4대강 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검찰, 국정원, 기무사, 언론까지 총동원됐다”며 “이명박 정부는 강을 망치기에 앞서 민주주의를 먼저 허물었다”고 비판했다. 김 감독은 “탐욕의 거대한 톱니바퀴 안에서 돈 잔치를 벌인 이들이 고작 몇 안 되는 관련자들뿐이었을까 사회적 화두를 던지고 싶다”며 “우리 안에는 이명박이라는 탐욕이 도사리고 있지는 않은지 되새겨 봐야 한다”고도 짚었다.

4대강이 회복될 때까지 ‘삽질’의 카메라는 꺼지지 않는다. 김종술 시민기자는 “수문을 개방한 금강의 일부 구간에서 모래톱이 다시 생기고 물고기와 야생동물이 돌아왔다”며 “이 영화를 알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많은 분들이 가까운 4대강을 찾아가 직접 현장을 봐 줬으면 한다”고 바랐다. 김 감독도 “우리 사회가 22조2,000억원이라는 교육비를 지출하고도 거기서 한 줄도 배우지 못했다고 생각해 영화를 만들었다”며 “대가 없이 묵묵히 4대강을 지키고 있는 분들과 함께 앞으로도 계속 4대강을 지켜보고 기록하겠다”고 말했다.

김표향 기자 suza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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