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업인단체가 22일 대한상의에서 열린 정부와 농업인단체 간 간담회에서 'WTO 개도국 포기 방침 철회' 피켓을 들고 정부에 농업인단체의 입장을 전달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가 세계무역기구(WTO) 내 개발도상국 지위를 내려놓기로 방침을 정하면서 농업계와의 갈등이 본격화될 조짐이다. 정부로선 최대한 당근을 제시하며 농심을 달래야 할 상황이지만, 농업계가 1차로 제시한 요구 사항과도 정부 입장은 간극이 크다.

23일 농업계에 따르면 한국농축산연합회, 한국농업인단체연합 등 농축산 단체는 전날 열린 민관합동 농업계 간담회에 앞서 △공익형 직불제 도입 △안정적인 농업 재정지원 △인력 지원 방안 △소득 보장 방안 △수요 확대 및 경영 안정화 방안 △국무총리를 위원장으로 한 특별위원회 설치 등 6개 요구사항을 정부에 전달했다. 구체적으로는 △전체 예산 중 농업예산 비중 4% 이상으로 확대 △농어촌상생협력기금 활성화 △농지은행 사업 활성화 △한국농수산대 정원 확대 등을 내세운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는 24일 농민단체와 추가 간담회를 갖는다는 방침이지만, 요구사항을 그대로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우선 내년도 농림축산식품부 예산ㆍ기금안 총지출 규모는 15조2,990억원으로 전체 예산(513조5,000억원)의 2.98% 수준이다. 이를 전체 예산의 4%(20조5,400억원)로 끌어올리려면 현 농업예산 규모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5조2,410억원을 증액해야 한다는 뜻이다. 최근 5년 간 농업예산 증가율은 연평균 1.5%에 불과했던만큼 현실성이 낮아 보인다. 다만 한 농민단체 관계자는 “구체적인 금액을 약속하라는 것보다, 농업에 대한 정부의 지원 의지를 보여달라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저작권 한국일보] 농림축산식품부 예산 기금 - 송정근 기자/2019-10-23(한국일보)

농어촌상생협력기금 활성화도 정부 역할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해당 기금은 지난 2015년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국회 비준 당시 피해를 볼 우려가 있는 농어업인을 보호하기 위해 조성됐다. 민간기업과 공기업, 농ㆍ수협이 2017년부터 매년 1,000억원씩 10년에 걸쳐 기부금 총 1조원을 출연해 농어촌 자녀장학사업, 농수산물 상품권 사업 등에 사용하는 것이 목표였다. 하지만 지난 3년 간 모인 금액은 목표액 3,000억원의 21%인 643억원에 불과했다. 기금 출연도 대부분 공기업이 담당하고 있는 상황이다.

공익형 직불제 도입은 정부가 적극 추진 의지를 갖고 있지만 국회에 막혀 있다. 공익형 직불제는 기존 쌀 직불과 밭 직불을 통합해 작물ㆍ가격에 상관없이 면적당 일정액을 지급하는 개념이다. 관련 법안은 지난해 11월 발의됐지만 국회 공전으로 논의가 진척되지 못하고 있다. 농민단체 관계자는 “여야 모두 공익형 직불제 도입에 공감하고 있지만 금액 차이가 큰 데다, 문재인 대통령의 핵심 공약이라는 점에서 정치화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농업단체들은 “대책 없이는 대화도 없다”는 입장이어서, 갈등은 장기화될 가능성도 높다. 전날 간담회는 비공개 진행과 대책 부재에 대한 농민들의 반발 속에 파행으로 끝났다. 김용범 기획재정부 1차관은 회의 후 “(농업인 단체 요구 사업은) 단기간에 확정적으로 정부 입장을 말하기엔 부처 간 조율과 논의가 필요한 사항”이라며 정부 차원에서 논의해보겠다고 말했다.

세종=손영하 기자 froze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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