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은 22일 국회 시정연설에서 “우리나라 재정과 경제는 매우 건전하다”고 말했다. 경제활력 회복 등을 위해 전년 대비 증가율 9%, 총 513조원으로 편성된 ‘슈퍼 예산안’이 무리하지 않다는 얘기다. 하지만 가파른 재정지출 증가세와 재정건전성을 우려하는 전문가들의 경고가 잇따르고 있다. 23일에는 국책 한국개발연구원(KDI)에서조차 “중기적 관점에서는 재정 여력이 불충분하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이태석 KDI 공공경제연구부장은 이날 소득주도성장위원회 주최 토론회에서 “현 재정 상황은 경기 대응 목적의 단기적 지출 확대까지는 감당할 여력이 있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2021년 이후엔 건전성에 문제가 발생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 부장은 2019~2023년 국가재정운용계획을 토대로 재정수지 적자비율이 내년에 3% 중반에 이른 뒤 2023년까지 3% 후반 수준까지 높아질 것으로 봤다. 국가채무비율도 2021년 40%대에 도달한 후 2023년까지 40%대 중반 수준으로 계속 증가할 것으로 우려했다.
우려 배경은 세수 악화 가능성이다. 이 부장은 “2021년 이후 재정수입 증가율은 연 5% 수준으로 전망되지만, 경기에 따라 세수가 훨씬 줄어들 수 있다”고 지적했다. 앞서 21일 ‘건전재정포럼’에서는 한국조세재정연구원장을 지낸 박형수 서울시립대 교수가 “재정이 위험 상태로 진입하고 있다”는 경고를 냈다. 박 교수에 따르면 우리나라 총재정지출 증가율은 2015~2017년 평균 4%를 기록해 경상성장률 5.5%보다 낮았다. 하지만 지난해엔 7.1%로 경상성장률(3.1%)의 2.2배였고, 올해와 내년 배율도 각각 3.6배, 2.1배에 이른다.
성장을 훨씬 초과하는 재정지출 증가는 재정 위기 위험을 높일 수밖에 없다. 박 교수가 유럽연합(EU)의 측정 모형을 적용해 평가한 우리나라 재정위기 위험지수는 지난해 0.31에서 올해 0.38로 올라간다. 재정위험 임계치인 0.46에서 멀지 않은 수준이다. 단기 확장예산이 불가피해도, 경기 부진으로 세수 여건이 불확실한 상황에서 ‘일단 쓰고 보자’는 식의 재정정책은 위험하다. 중장기 재정 우려에 대해 정부는 신뢰할 만한 답변을 내놔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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