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이름이 또 한 번 지워졌다. 트럼프 일가의 부동산 개발업체인 ‘트럼프 그룹’이 운영하는 미국 뉴욕 센트럴파크의 아이스링크에서 그의 이름을 없애기 시작한 것이다. 대통령 취임 후 이미 몇 차례 호텔과 주택 등에서 ‘트럼프 지우기’가 벌어졌지만, 이들 아이스링크는 트럼프 대통령 개인의 성공신화가 담긴 곳이라서 그 상징적인 타격이 더 크다.
23일(현지시간) 미 일간 워싱턴포스트(WP)는 몇 주 전부터 센트럴파크의 남쪽 울먼 링크와 북쪽 끝 래스커 링크에서 대통령의 이름이 없어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영업 성수기가 얼마 남지 않은 시점, 큼지막한 붉은색 이름들은 얇고 자그마한 글씨들로 대체됐다. 아직 차마 지우지 못한 트럼프 글자 위로는 흰 방수포가 덮였고, 옆으로 ‘T’자만 덩그러니 삐져나와 있었다고 WP는 전했다. 지난해 겨울까지만 해도 이 두 업체는 대통령의 이름을 홍보에 적극 활용해왔다. 그러나 올 8월 트럼프 그룹은 돌연 뉴욕시 당국에 상호 변경 계획을 먼저 알려왔다.
트럼프 그룹은 상호 변경의 이유를 밝힌 바 없다. 다만 익명을 요구한 한 아이스링크 직원은 “(트럼프라는 이름이) 사업에 타격을 주고 있다고 본다”고 WP에 말했다. 실제로 지난 2017년 뉴욕의 유명 사립학교 달튼스쿨이 울먼 링크에서 스케이트 파티를 열려고 했다가, 일부 학부모가 ‘트럼프라는 이름이 새겨진 아이스링크에는 아이를 보낼 수 없다’고 항의해 파티가 취소됐다는 뉴욕타임스(NYT) 보도가 나온 바 있다.
업체 이미지와 매출에 악재로 작용하면서, 트럼프라는 이름은 이미 여러 곳에서 자취를 감췄다. WP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 취임 후 파나마와 캐나다 토론토의 ‘트럼프 인터내셔널 호텔’ 등 호텔 3곳, 맨해튼 주택 6곳이 그의 이름을 지웠다. 올 5월 CNN 등 미 언론들은 ‘트럼프’ 이름을 포기하는 업체가 늘면서, 지난해 트럼프 그룹의 독립형 호텔 부문 수익이 전년(2017년)에 비해 20% 줄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새삼스러울 게 없는 ‘트럼프 지우기’이지만, 이번 아이스링크 사건은 남다른 구석이 있다고 WP는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사업가로서의 명성을 세운 장소이기 때문이다. 1980년대 당시 부동산 개발업자였던 트럼프는 지지부진하던 뉴욕시의 도시 정비 사업을 인수해 예정보다 일찍, 더 적은 예산으로 아이스링크 건설을 성공적으로 마쳤다. WP는 “그 대가로 트럼프는 귀한 링크 운영권을 얻었으며, 큰소리를 치면서 수완도 내는 사업가로서 전국적 명성을 얻었다”고 설명했다.
최나실 기자 verit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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