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 선고 이틀 전 TF 가동해 언론ㆍ시민단체ㆍ정부부처 동원, 분위기 조성”
준비작업 극비리에 진행, 계엄 반대 국회의원 대거 사법처리 계획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판결 전 계엄을 준비했던 국군기무사령부의 소위 ‘계엄 문건’이 논란이다. 당시 국무총리 겸 대통령 권한대행이었던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문건 작성에 연루됐다는 주장을 둘러싼 정치권 공방이 가열되면서다. 하지만 일단 확인되는 것은 당시 군 수뇌부가 계엄에 대단히 적극적이었다는 점이다. 극비리에 계엄이 필요하다는 분위기를 조성하고, 계엄을 해제하라는 국회의원은 대거 사법처리한다는 계획까지 문건에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2017년 2월 작성된 것으로 표시된 8장짜리 ‘현 시국 관련 대비계획’ 문건은 ‘현상 진단’으로 시작한다. ‘탄핵심판 선고 이후 전망’에서 “결과에 따라 보수세력 또는 진보(종북)세력 준동, 폭력투쟁”이 예상된다며 “국가비상사태 조기 안정화를 위한 비상계엄 선포 필요성 대두”라고 적고 있다. 탄핵 가결로 보수세력이 들고 일어나든 반대로 탄핵이 기각돼 진보세력이 극렬 시위를 벌이든 비상계엄 선포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어 ‘계엄 준비 단계’에서 군의 적극적인 행태는 더욱 선명하게 드러난다. 문건에 따르면 탄핵심판 선고일 이틀 전인 2017년 3월 8일 ‘계엄준비TF(태스크포스)’를 가동해 이 기구를 중심으로 언론, 보수시민단체, 행정안전부, 외교부 등을 동원해 계엄이 필요하다는 분위기를 만들어가려고 했다. 구체적으로 문건은 “△보수언론에서 계엄선포 필요성 제언, 보수층 및 경제단체에서 동조 △행자부(현 행정안전부) 등 정부 부처에서 군 개입을 요청하는 분위기 조성 △한반도 안정을 위한 군사적 조치 필요성에 미국ㆍ중국ㆍ일본 사전 교감”이라고 적고 있다.
군은 이 모든 일을 은밀하게 진행시키려 했다. ‘계엄 준비 단계 - 보안 조치’에서 “계엄준비TF는 합참 통제구역 내 위치, 외부인 및 출입기자 접촉 원천 차단. 정부 부처 간 협의 시 대북 상황 및 시국 안정화 논의로 위장” 등이라고 문건에 명시돼 있다.
계엄이 선포, 시행되면 이후에는 계엄을 비판하는 일체의 활동이 금지되고 이를 어겼을 경우 계엄군사법원에 넘겨져 처벌을 받게 된다. 모든 권력은 최고기구인 계엄사령부로 집중돼 이 기구에서 발령하는 훈령에 따라 국가를 운영한다. 일반 시민은 물론 정치인, 언론인도 예외일 수 없다.
문건은 특히 국회가 임시회의를 소집해 재적의원 과반수 찬성으로 계엄을 해제시키는 상황에도 대비하려 했다. 문건에 딸린 참고자료를 보면 당시 여소야대 정국에 대해 “국회의원 총 299명 중 진보 성향 의원 160여명, 보수 성향 의원 130여명”이라고 명시돼 있다. 계엄 해제를 막기 위해 문건은 ‘국회의원 대상 현행범 사법처리로 의결 정족수 미달 유도’라는 제목에서 “불법시위 참석 및 반정부 정치활동 의원 집중검거 후 사법처리”라는 대응책을 밝혔다. 진보 성향 의원을 30명 이상 잡아들여 계엄 해제 의원이 절반을 넘지 못하게 하겠다는 뜻이다.
이에 대해 국회 국방위 소속 김종대 정의당 의원은 23일 CBS 라디오 인터뷰를 통해 “(문건 내용은) 탄핵 심판이 가결이든 부결이든 인용이든 상관 없다. 어쨌든 혼란은 발생한다는 전제로 계엄을 선포해야 될 필요성이 있다는 것”이라면서 “비상 상황에 대비한다고 하더라도 다 주무부서, 법적 절차가 있는데 이 문건은 그런 게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김 의원은 “계엄을 선포하려면 국무회의 의결을 거쳐야 하는데 국무총리실, 외교ㆍ안보 부처 장관들만 따로 모이는 국가안전보장회의(NSC)에서 먼저 계엄 불가피 여론을 만들어놓고 국무회의에서 추인 받는 형식으로 하자는 부분도 문제”라고 강조했다.
허정헌 기자 xscop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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