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 사태로 드러난 집권세력의 민낯
문재인 정부에 기대 접은 국민도 많아
취임사로 돌아가는 초심의 자세 필요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부인 정경심 동양대 교수가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23일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으로 들어서고 있다. 서재훈 기자

법원의 최종 판단이 나오면 좀 더 명확해질 것이다. 물론 법원의 판단이 모두 진실일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퇴진이 잘못됐다는 건 아니다. 의혹 제기만으로도 고위공직 후보자에서 사퇴했던 숱한 관행을 감안하면 그에게 장관직에 앉았다가 퇴진하는 모양새를 갖춰준 건 과분했다. 정파적 이익이 국민 감정을 앞섰던 탓일게다. 조국과의 의리를 지키려고 대통령이 정의를 잠시 보류한 것으로 기억될지 모르겠다.

공은 법원으로 넘어갔지만 조국 사태는 우리 사회에 여러 문제를 드러냈다. 국민ㆍ국론 분열이 대표적이다. 불쾌했던 건 정치권 전체가 국민이라는 이름을 더럽힌 것이다. 국민의 이름으로 조국 수호 혹은 조국 퇴진을 외친 것 말이다. 조국에 대한 찬반 시위가 격돌하자 대통령이 “검찰 개혁에 대한 조국 장관의 뜨거운 의지”를 거론하며 “국민에게 공감을 불러일으켰다”고 말한 것이 한 사례다. 문맥상 모든 국민은 아니었고 국민 절반은 안중에 없었다. 협치의 중심을 잡아야 할 대통령은 물론 여야 모두 정파적 공감을 부추기고 세몰이 하는데 ‘국민’을 들이댔다. "저를 지지하지 않았던 한 분 한 분도 국민으로 섬기겠다"던 취임사는 휴지조각이 된 지 오래다. 이분법으로 과도하게 진영을 편가르고, 상대 진영을 타협보다는 타도의 대상으로 규정하는 프레임이 문제였다.

비아냥거릴 생각은 추호도 없지만 조국 사태의 긍정적 측면을 꼽아본다면 집권 세력의 민낯, 특히 몰(沒)도덕성이 드러난 점이다. 그래서 ‘좌파’나 ‘진보’라는 개념을 더 이상 쓰기가 부끄러울 것이다. 패트릭 드닌의 저서 ‘ 왜 자유주의는 실패했는가’에 따르면 원론적으로 “좌파의 특징은 변화와 개혁을 선호하고, 자유와 평등을 약속하고, 진보와 미래를 지향하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지금 정권의 행태에 해당하는 특징을 찾기가 어렵다. 평등ㆍ공정ㆍ정의는 조국 사태로 혼미해졌다. 되레 과거사에 집착하고 적폐청산에 몰두하며 진보는커녕 퇴보의 길로 접어든 것은 아닐까 싶다.

문재인 정부도 11월이면 반환점을 돌지만 뚜렷한 성과는 없고 위기의식만 커지고 있다. 정권의 위기는 늘 소문과 의혹으로 시작했다. 힘이 있을 때는 소문과 의혹에 머물지만 정권이 반환점을 돌면 실상이 점점 드러난다. 이명박은 다스, 박근혜는 최순실이었다. 일단 반환점을 돌면 검찰은 전 정권보다 현 정권을 겨냥한다. 검찰의 생존 본능이다. 이번엔 반환점을 돌기도 전에 검찰이 정권 핵심부를 건드렸다. 대통령이 직접 검찰개혁을 챙기려는 것도 그런 두려움 때문일 것이다. 검찰은 정권 말기가 되면 대통령과 주변 세력을 뒤지는 것을 관행처럼 이어왔다. 우리는 또 어떤 다스, 어떤 최순실과 마주칠지 모른다.

평등ㆍ공정ㆍ정의를 조국의 장관 임명과 맞바꾼 터라 집권세력에 수오지심(羞惡之心)이 조금이라도 남아있다면 이런 용어를 입에 올리기가 껄끄러울 것이다. 그럼에도 대통령은 22일 내년도 예산안 시정연설에서 공정ㆍ혁신ㆍ포용ㆍ평화를 강조했다. 공정이라는 단어를 무려 27번 언급했지만 공허한 메아리처럼 들린다. 이제 남은 용어는 개혁뿐이다. 이미 개혁 구호가 각 분야에서 남발되고 있지만 진정성을 의심받는 지경이다.

검찰개혁에 대한 집착에서 보듯, 개혁이 국민 전체가 아니라 정권 유지를 위한 것이라는 의심 말이다. 정권 스스로 개혁 대상은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는 충고가 뜨끔할 것이다. 이미 이번 정부에 기대를 접은 사람들이 많다. 특히 경제 인식에서 민심과 동떨어진 얘기를 하거나 남의 탓과 통계 마사지에 집착하는 습관에 넌더리를 낸다. ‘제발 경제가 망하지 않게만 했으면 좋겠다’는 참담한 희망은 김영삼 정권 말년의 외환위기를 연상시킨다.

‘원론으로 돌아가라’는 얘기가 있다. ‘교과서로 돌아가라’는 말과 유사한 의미겠다. 국가고시나 수능시험 등 중요한 시험에 앞서 막바지에 실력을 최종 점검하는 요령이다. 대통령에게 ‘취임사로 돌아가라’고 하고 싶다. 거기에 많은 해결책이 있다. 지금은 취임사에서 너무 멀리 왔다.

조재우 논설위원 josus62@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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