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의회는 지난달 24일 ‘제주 제2공항 관련 도민 공론화 등을 요구하는 청원의 건’을 통과시켰다. 해당 청원은 ‘제2공항 강행 저지를 위한 비상도민회의’가 도민 1만2,000여명의 서명을 받아 지난달 18일 도의회에 제출했다. 1만명의 넘는 도민들의 뜻을 도의회가 수용한 셈이다. 하지만 도의회의 공론조사 요구를 제주도는 거부했다. 이미 상당한 절차를 거쳐 국토교통부의 ‘제2공항 기본계획’ 고시를 앞둔 시점에서, 원점으로 다시 돌아가 제2공항 추진 여부를 묻는 공론조사를 실시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결국 도의회가 공론조사를 추진하겠다고 나섰지만, 넘어야 할 산이 만만치 않다. ‘제2공항 건설 갈등 해소를 위한 도민 공론화 지원 특별위원회 구성 결의안’(이하 공론화 결의안)을 공동 발의한 김태석 도의회 의장을 만나 공론조사의 필요성과 추진 계획 등에 대해 물었다.
△공론화 결의안 대표 발의했는데 제2공항 공론조사의 필요성과 도의회가 직접 나서야 하는 이유는.
=공론화라는 것은 공익적인 가치와 부합된다. 공론화 과정에는 여론조사와 달리 모든 정보를 공개해 토론을 거쳐 최종 결론을 도출하는 숙의절차가 반드시 들어간다. 제2공항에 대한 정확한 정보가 전달되면 도민들이 상식적인 견해로 판단할 것이다. 도민들 스스로가 자기 주체적으로, 자기 의지대로 결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공익적인 가치에 가장 부합되는 결론이 제시될 것이다. 이 때문에 올해 초부터 제2공항에 대한 공론조사 필요성을 여러 차례 언급했고, 제주도에 요구했었다. 제2공항을 놓고 찬반 의견이 팽팽히 맞서고 있는 만큼 더욱 공론화가 필요하다. 제2공항 관련 용역을 한 전문가 집단이 제주의 미래를 결정하는 것은 맞지 않다. 정책을 결정하면 누구를 위한 것인지, 무언을 위한 것인지 답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그 답을 하는 게 행정과 정치의 역할이다. 도가 공론화를 거부하고 있기 때문에 도민의 대의기관인 도의회가 나서 해답을 제시해야 한다.
△제주도는 공론조사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어떻게 생각하나.
=2012년에는 도의회가 앞장서서 신공항 건설 촉구 결의안을 채택했고, 그 과정에 적극 참여했었다. 당시 신공항을 조속히 건설하라는 요구는 했지만, 전문가 몇명이 모여 결정하라는 것은 아니었다. 전문가 몇명이 어떻게 제주의 미래를 결정할 수 있나. 제2공항 결정 후 모든 갈등은 제주도민들이 떠안고 있다. 전문가들은 기술적인 측면만 제시하지, 도민들의 고통에 대해서는 알지 못한다.
특히 정의라는 관점에서 제2공항 문제를 봐야 한다. 제2공항 예정부지에 포합된 성산 주민들에게 도민 전체를 희생하라고 강요하는 것이 맞나. 전체 도민의 편익을 위해 그 땅에서 나가라고 할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고 본다. 그렇다면 정책결정으로 피해를 보게 된 주민들의 의견을 최대한 존중하는 것이 정의로운 사회다. 피해 집단을 더 존중해야 기울어진 운동장이 평평한 운동장이 될 것이다. 원희룡 제주지사는 전문가 집단이 결정한 것이기 때문에 도민들의 의사는 배제한 채 무조건 따르라고 한다. 넌센스고, 독선이다.
△ 김현미 국토부장관이 지난 21일 국감에서 제2공항과 관련해 주민투표 등 제주도가 결정하면 따르겠다고 밝혔는데. 이에 대한 생각은.
=도에 공론조사를 요구했지만 거부했다. 국책사업이기 때문에 국토부가 결정할 일이라는 이유에서다. 지난 21일 국감에서 정동영 국회의원이 “제주도민들의 자기 결정권을 가져야 한다”는 질의에 대해 김현미 국토부 장관이 주민투표 등에 관련해서는 제주도가 결정하면 따르겠다고 밝혔다. 도와 국토부가 도민을 인질로 삼고 핑퐁게임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하더라도 장관이 도의 결정에 따르겠다고 공식적으로 밝혔기 때문에 지금이라도 원 지사가 공론조사에 나서야 한다. 도가 추진하면 도의회는 쌍수를 들고 환영하고, 적극적으로 협조할 용의가 있다. 이에 대해 조만간 도에 공식적으로 의사타진을 할 예정이다.
△공론조사 놓고 도의회 내부에서도 찬반 갈등이 있다. 이유와 해법은.
=도의회 내부 갈등을 제대로 봉합하지 못한 점에 대해서는 의원들에게 미안하고, 도민들에게도 죄송스럽다. 제2공항을 바라보는 관점이 의원들간에 서로 틀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강제할 수 있는 사안도 아니다. 하지만 공론화를 무시하는 것도 아니라고 본다. 무엇보다 제2공항과 연계해 공군기지 문제도 가시화되고 있다는 점을 짚고 넘어가야 한다. 현재 공군기지에 대한 용역비 등이 제시된 상태다. 이 정도면 정부가 공군기지를 추진한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장소를 정확하게 밝히지 않았지만 제2공항까지 건설되면 도내에 공항이 2곳이 되는데, 따로 공군기지를 만들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제2공항밖에 더 있겠나. 이런 시점에서 지방정치권에서 (공군기지 문제를) 따지지 않고 제2공항을 건설하는 것이 후손들에게 바람직한 일인지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 그리고 원 지사도 제2공항과 공군기지가 겸용된다면 제2공항 건설을 반대하겠다고 했다. 이 문제에 대해 걸맞는 행동을 보여줘야 한다.
△ 제2공항 찬성 주민들이 공론조사 반대 청원을 제출한 것은 물론 의회 운영위 내부에서도 공론화 결의안에 대해 반대 의견이 만만치 않다. 운영위가 결의안을 부결할 경우 어떻게 할 것인가.
=공론조사 청원과 반대 청원은 동전의 양면이다. 오는 31일 운영위에서 공론조사 특위 구성 결의안을 처리할 예정이다. 미리 예상한다는 것이 적절하지 않지만 부결된다면, 그 결정에 따라야 한다. 또한 의장이 본회의에 결의안을 직권상정도 할 수 있지만, 향후 의회 운영 등을 고려하면 쉽게 꺼낼 수 있는 카드가 아니다. 다만 운영위에서 부결된다면 다른 대안을 모색할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지금 당장 밝힐 단계는 아니다.
△ 공론조사 특위 구성안이 통과되더라도 넘어야 할 산이 많다. 향후 계획은.
=공론조사 실시를 위한 예산 확보와 제2공항 찬성단체들의 공론조사 참여 여부가 가장 큰 문제라고 본다. 예산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공론조사위원회에 제2공항 찬반단체 모두가 들어와야 한다. 결과론적으로 봐서 어느 한쪽이라도 빠진다면 공론조사 결과가 나와도 또 다른 갈등이 야기될 수밖에 없다. 공론조사 결과에 대해 양측이 모두 승복할 수 있도록 공론조사를 설계해야 한다. 의회에서 공론화 결의안이 통과되면 찬성단체들을 직접 만나 설득할 것이다. 그분들도 도민이다. 설득해야 한다. 공론조사가 시작되면 빠르면 3개월에 마무릴 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공론조사는 도민들의 자기결정권을 확인하는 정치 행위로, 의미가 크다. 찬반을 떠나 국책사업에 대한 자기의사를 표현하고, 뜻을 하나로 모으는 획기적인 일이다. 앞으로 제주의 미래와 관련된 중요한 쟁점 사항이나 대립상황이 발생할 때, 이런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선례가 될 것이다. 다만 국토부장관이 제주도의 결정에 따르겠다고 했지만, 공론조사 결과가 제2공항 추진 여부를 결정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공론조사는 도민들의 의지를 국토부에 전달하는 것이다.
도지사나 도의회 의장 등 한 사람의 지혜보다 도민의 합치된 지혜를 믿는다. 도민이 만들어낸 지혜가 민주주의로 가는 밑거름이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김영헌 기자 taml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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