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혼인 중 출생 혈연 외 자녀… 아버지의 친자 거부 소송 최종 판단
23일 서초동 대법원에서 열린 전원합의체. 김명수(가운데) 대법원장과 대법관들이 자리에 앉아 시작을 기다리고 있다. 연합뉴스

남편이 인공수정에 동의했다면 타인의 정자로 태어난 자녀라도 친자식으로 봐야 한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부부가 동거하지 않은 기간에 태어난 자식에 대해서만 민법상 '친생자 추정 원칙'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취지의 판례를 그대로 유지한 것으로, 가족제도 유지에 방점을 둔 판결이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23일 A씨가 자녀들을 상대로 낸 친생자관계부존재 확인 소송 상고심에서 대법관 9명의 다수의견으로 “아내가 혼인 중 남편의 동의를 받아 제3자의 정자를 사용한 인공수정으로 자녀를 출산한 경우에도 그 자녀를 남편의 친생자로 추정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했다. 전원합의체는 이어 “아내가 혼인 중 임신하여 출산한 자녀라면, 유전자 검사 등을 통하여 남편과 혈연관계가 없다는 점이 밝혀졌더라도 여전히 남편의 자녀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대법원 판결의 의미는 민법의 ‘친생자 추정 원칙’을 재확인한 것이다. 민법 844조에 따르면 혼인 중 임신한 자녀는 남편의 친생자로 추정되고, 이를 부인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제척기간 2년 내 친생부인 소송을 제기하는 것이다. 다만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1983년 ‘부부 한쪽이 장기간 해외에 있거나 별거하고 있는 등 동거의 결여가 외관상 명백할 경우에는 추정이 미치지 않는다’면서 친생추정 예외 판례를 확립했다.

대법원은 기존 판례를 유지한 배경으로 가족제도의 보호와 유지를 강조했다. 재판부는 "혈연관계 없이 형성된 가족관계도 헌법과 민법이 보호하고자 하는 가족관계에 해당된다"며 "이러한 가족관계가 오랜 기간 유지되는 등 사회적으로 성숙해지고 견고해졌다면 그에 대한 신뢰를 보호할 필요성이 크다"고 밝혔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이 같은 판단을 근거로 A씨의 상고를 기각했다. 무정자증인 A씨는 1993년 부인의 동의를 얻어 다른 사람의 정자를 사용한 인공수정으로 첫째를 낳았고 4년 뒤 둘째 아이가 태어나자 무정자증이 치유된 것으로 알고 모두 친자식으로 출생신고를 했다. 하지만 2014년 부인과 이혼 소송을 하는 과정에서 둘째 아이가 혼외 관계로 태어났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A씨가 두 자녀를 상대로 친자식이 아니라며 소송을 냈다.

1ㆍ2심 판결도 대법원의 판단과 큰 틀에서 다르지 않았다. 1심은 친생추정 예외 요건은 ‘비동거 등 외관상 명백한 사정’에 한정된다면서 기존 판례를 강조하면서 A씨는 해당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2심은 첫째 자녀의 경우, 제3자 정자를 사용한 인공수정에 동의했기 때문에 친생자로 추정해야 한다고 봤다. 다만 둘째 자녀는 유전자형이 달라 친생자로 추정되진 않지만, A씨가 이 사실을 알고도 상당 기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기 때문에 입양 관계가 성립된다고 판단했다.

유환구 기자 redsu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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