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제가 선생님 기록 깰 겁니다.”
최근 독일 분데스리가 구단 초청행사에 참석한 차범근(66) 전 축구대표팀 감독은 손흥민(27ㆍ토트넘)이 독일 프로축구 분데스리가 레버쿠젠에서 뛰던 6년전, 자신을 앞에 두고 했던 당찬 다짐을 떠올렸다. “흥민이가 내 기록을 깨겠다고 했을 때 ‘그래, 한번 해봐라’라고 얘기는 했었다”라며 웃음 짓던 차범근은 “손흥민의 강한 의지를 다시 떠올리게 하는 장면이었다”며 당시 감흥을 전했다.
손흥민이 자신의 우상이자, 한국 축구 레전드 차범근의 대기록을 기어코 따라잡았다. 손흥민은 23일(한국시간) 영국 런던 토트넘 핫스퍼 스타디움에서 열린 츠르베나 즈베즈다(세르비아)와의 2019~20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조별리그 B조 3차전 홈 경기에서 두 골을 몰아넣으며 팀의 5-0 완승을 이끌었다. 손흥민은 이날 멀티골로 유럽 무대 통산 121번째 득점을 기록, 차범근이 보유했던 한국인 유럽무대 1부리그 최다골 기록과 동률을 이뤘다.
이날 손흥민은 전반 16분과 44분 연이어 득점포를 가동했다. 팀이 1-0으로 앞선 전반 16분 에릭 라멜라(27ㆍ아르헨티나)의 오른쪽 크로스를 이어받아 밀어 넣은 그는 전반 44분 속공 상황에서 빠른 질주로 좋은 위치를 선점한 뒤 탕기 은돔벨레(23ㆍ프랑스)의 공을 골 지역 왼쪽에서 이어받아 득점에 성공했다. 한국인 유럽무대 최다득점 동률을 기록한 순간이다.
1978년 독일 다름슈타트에서 유럽 무대에 데뷔했던 차범근은 이후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 바이어 레버쿠젠에서 1988~89시즌까지 총 372경기를 뛰며 121골을 쌓았다. 아시아 선수들의 유럽 진출이 거의 없었던 당시 기록과 가치가 똑같을 순 없지만, 손흥민은 총 364경기 만에 차범근의 기록과 어깨를 나란히 하면서 ‘21세기 축구영웅’으로 당당히 자리했다.
만 18세인 2010년 분데스리가 함부르크 1군에 합류해 2010~11시즌 프로 무대에 데뷔한 손흥민은 2010년 10월 말 쾰른을 상대로 첫 골을 터뜨린 이후 함부르크 유니폼을 입고 뛴 3시즌 동안 20골을 넣었다. 2013~14시즌부터 2시즌 동안 뛴 레버쿠젠에서 29골을 넣은 그는 2015~16시즌부터 몸담은 토트넘에서 총 72골째를 기록했다. 특히 최근 아시아 선수로는 유일하게 세계 축구 최고 권위의 상인 발롱도르 최종 후보 30명 명단에 이름을 올리면서 누구도 부정 못 할 ‘월드클래스’ 반열에 올랐다.
차범근은 손흥민을 두고 “아직 어리기 때문에 자기 관리만 잘 하면 지금보다 더 발전할 수 있는 선수”라며 칭찬했다. 특히 지난해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금메달로 병역 문제에서도 자유로워 현역 생활을 끝낼 무렵까진 전무후무한 대기록을 세울 가능성이 높다. 손흥민은 오는 28일 오전 리버풀과의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원정 경기를 앞두고 있다. 이날 득점포를 다시 가동한다면 차범근의 기록을 넘어서게 된다. 이제부터 터지는 그의 골은 매번 한국 축구 새 역사가 된다.
김형준 기자 mediabo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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