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5일 평양 김일성경기장에서 2022년 카타르 월드컵 예선 경기가 열렸다. 도시 이름에서 상상할 수 있듯이, 한편은 북한이었다. 입장 가능한 귀빈이었던 국제축구연맹 회장과 북한 주재 스웨덴 대사가 현장에서 소식을 전했다. 북한 주재 영국대사는 남한에서는 구할 수 없었던 입장권을 인터넷에 올리기도 했다. 어떤 상황이었기에 외교관들이 중계를 자임했을까. 무관중ᆞ무중계 경기의 상대는, 불행히도 남한이었다.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킬 수 있었던 한반도 축제가 남북관계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비극으로 끝났다. 경기 결과는, 다행히도 무승부였다.
2018년 4월과 5월 판문점에서, 9월에는 평양에서 남북한 정상이 만났다. 북한은 2018년 2월 평창동계올림픽에 참가하면서 한반도 평화 과정의 재개를 알린 바 있다. 무관중 경기를, 응원단을 보낼 수 없었던 남한에 대한 배려로 해석할 수도 있다. 그 와중에도 2023년 여자축구 월드컵의 남북 공동개최가 평양에서 논의되었다. 그럼에도 한반도 평화 과정이 진행 중임에도 왜 이상한 축구경기를 했는지 물을 수밖에 없다. 긴 평화 여정에서 우연히 발생한 사건이라 치부하기에는 불협화음의 울림이 깊다.
남북관계에서 교류 없음은 2019년 2월 하노이 북미정상회담 이후부터였다. 미국은 핵시설 밀집 장소인 북한의 영변과 영변 이외 지역 핵시설의 해체를 요구했고, 북한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 제재 가운데 민수경제 관련 부분의 해제를 원했지만 교환은 성사되지 않았다. 하노이 회담이 합의문 발표 없이 종료된 직후 북한 외무성 관료들은 기자회견에서 “미국이 유엔 제재의 일부, 즉 민수경제와 인민생활에 지장을 주는 항목의 제재를 해제하면 우리는 영변 핵의 플루토늄과 우라늄을 포함한 모든 핵물질 생산시설을 미국 전문가들의 입회하에 두 나라 기술자의 공동 작업으로 영구적으로 완전히 폐기할 것임을 제안했다”고 밝혔다.
하노이의 합의 없음은, 2018년 9월 남북 정상의 평양공동선언을 다시 읽게 한다. 사건들의 인과관계 규명을 위해서다. 합의문 5항에는 “북측은 미국이 6ᆞ12 북미공동성명의 정신에 따라 상응 조치를 취하면 영변 핵시설의 영구적 폐기와 같은 추가적인 조치를 계속 취해나갈 용의가 있음을 표명하였다”고 적혀 있다. 2항의 ②에는 “남과 북은 조건이 마련되는 데 따라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 사업을 우선 정상화하고, 서해경제공동특구 및 동해관광공동특구를 조성하는 문제를 협의해 나가기로 하였다”고 돼있다. 그러나 평양에서 만들어진 남북 합의는 하노이에서 작동하지 않았다. 미국은 상응 조치보다는 ‘영변+α’의 폐기에 관심을 보였고, 미국의 한 언론이 예상했던 개성과 금강산 사업의 재개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럼에도 한국의 중개로 2019년 6월에는 판문점에서 남북미 정상이 회동했다. 그러나 평양공동선언 1항에 있는, 남북 사이의 “근본적인 적대관계의 해소”로 가는 길도 막힌 상태다. 남북한은 군비경쟁을 계속하고 있다. 하노이 이후, 국제관계로부터 자율적인 남북관계의 형성이 어떻게 가능할까를 생각하게 한다. 2019년 10월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북미가 만났지만, 하노이를 반복했다. 2019년 10월 축구 사건이, 중계권료 지불이 대북 제재 위반이었기 때문에 발생했다고 한다면, 다시금 제재의 목적이 무엇인지를 물을 수밖에 없다. 북한은 남한에 “의존”했던 금강산 관광사업을 “잘못된 일”로까지 규정하며, 남북관계의 자율성 가능 여부를 한미에 묻고 있다. 제재의 목적은, 강압적 방식이지만 제재 대상과의 협력을 도출하는 것이다. 미국의 대북 제재는 핵문제와 달리 한국전쟁 시기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만약 남북미가 적대관계의 청산을 서로 원한다면, 전쟁으로 시작된 미국의 대북 제재의 해제가 한 출발점이 될 수 있다.
구갑우 북한대학원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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