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가 오는 31일까지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를 완수하기 위한 마지막 카드로 EU 탈퇴 협정 법안(Withdrawal Agreement BillㆍWAB)을 추진했지만 이마저 하원의 벽에 가로막혀 좌절됐다. 브렉시트 연기가 불가피해지자 존슨 총리는 조기 총선을 추진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영국 하원은 22일(현지시간) 정부가 전날 공개한 WAB를 오는 24일까지 신속하게 처리한다는 내용의 의사일정 계획안(programme motion)을 찬성 308표, 반대 322표로 14표차 부결했다. 통상 영국 하원에서 법안을 통과시키는 데는 수 주일이 걸리지만 정부ㆍ여당은 브렉시트 기한이 열흘도 채 남지 않은 점을 고려해 토론 시간을 제한하고 밤샘 심사를 벌여 사흘 안에 처리하자는 계획안을 제안했다.
WAB는 EU와 합의한 브렉시트 협정에 영국법상 효력을 부여하는 법안으로 EU 법률의 국내법 대체, 브렉시트 전환기간, 상대국 주민의 거주권한 등에 대한 구체적 이행조항이 방대하게 담겼다. 이날 WAB 법안 자체는 하원 제2독회 표결을 찬성 329표, 반대 299표로 통과했으나, 곧바로 이어진 계획안 표결이 부결되면서 처리에 제동이 걸렸다. 노동당 등 범야권에선 본문만 110쪽에 달하는 데다 향후 영국의 운명을 좌우할 중요 법안을 사흘 안에 제대로 검증할 수 없다며 반대 의사를 명확히 했다.
브렉시트 합의안에 대한 승인투표 개최 시도가 잇달아 무산되고 마지막 승부수였던 WAB 처리까지 불투명해지면서 존슨 총리가 염원하던 기한 내 브렉시트는 어려워졌다. 이날 계획안 통과가 좌절되자 존슨 총리는 EU 측이 브렉시트 추가 연기에 대해 입장을 밝힐 때까지 WAB 상정을 잠정 중단한다고 선언했다. 그는 하원이 사실상 브렉시트 연기에 투표한 데 대해 “매우 실망했다”며 “영국이 더 큰 불확실성에 직면하게 됐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조기 총선 개최 가능성도 커졌다. 존슨 총리가 표결 전 법안 토론 과정에서 하원이 계획안을 부결시킬 경우 법안 자체를 취소하고 조기 총선을 추진하겠다는 뜻을 밝혔기 때문이다. 그는 “의회가 브렉시트 단행을 거부하고 내년 1월이나 그 이후로 이를 연기하려 한다면 정부는 이를 더 이상 지속할 수 없다”며 “그렇게 될 경우 매우 유감스럽게도 나는 법안을 취소하고 총선으로 나아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강유빈 기자 yubi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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