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농민단체 간담회 파행… “비공개 진행 반대” 회의 중단 
 농업예산 4% 상향ㆍ인력지원 등 농민단체들 6개 요구사업 제출 
 정부 “부처간 조율ㆍ논의 필요”… “포기” 발표 땐 역풍 거셀 듯 
농업인단체가 22일 대한상의에서 열린 정부와 농업인단체 간 간담회에서 'WTO 개도국 포기 방침 철회' 피켓을 들고 정부에 농업인단체의 입장을 전달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가 우리나라의 세계무역기구(WTO) 내 개발도상국 지위를 내놓기로 방침을 정하면서(본보 21일자 1면ㆍ정부 ‘WTO 개도국 지위’ 내놓는다) 농업계의 반발이 본격화되고 있다. 정부가 22일 개최한 농민단체와의 간담회는 농민들의 반발 속에 파행으로 끝났다. 정부가 개도국 지위 포기를 공식 발표하면 농민 반발은 더욱 거세질 전망이다.

기획재정부는 22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김용범 1차관 주재로 민관합동 농업계 간담회를 개최했다. 논의 주제는 ‘우리 농업 현실 및 정부 농업정책에 대한 농민 의견 수렴’이었으나, 사실상 WTO 개도국 지위 포기를 발표하기에 앞서 농업 지원책을 건의 받기 위한 자리였다.

이날 회의에는 △한국농축산연합회 △한국농업인단체연합 △한국쌀전업농중앙연합회 등 농축산 단체 대표들과 기재부, 산업통상자원부, 농림축산식품부 등이 자리를 함께 했다.

김용범 차관은 모두 발언에서 “예전보다 한국의 경제 위상이 크게 높아졌고, WTO 내에서도 개도국 이슈가 본격 논의됨에 따라 미래에 전개될 WTO 협상에서도 개도국 특혜를 유지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사실상 WTO 개도국 졸업을 고민할 시점이라는 의미로 풀이된다.

그러나 간담회는 김 차관의 모두발언 이후 더 이상 진행되지 못했다. 농민단체들이 비공개 진행을 강력 반대했고, 고성과 실랑이가 오갔다. 농축산업단체 대표들은 “정부가 이미 WTO 개도국 지위 포기를 결정해 놓은 반면, 대응책이나 지원책은 전혀 없이 형식적인 간담회를 개최한다”는 불만을 내비쳤다. 김 차관이 “공개 회의가 되면 자유롭게 토론하기 어렵고 논의가 더 실질적으로 이뤄지지 않는다는 것이 제 경험”이라고 설득해 간담회가 비공개로 진행되는 듯 했으나 참석 단체장 중 일부 농민단체 대표가 퇴장하고 나가면서 회의가 중단, 재개되지 못했다.

간담회에 앞서 농민단체들은 정부에 △총예산 중 농업예산 4%로 상향 △농업 인력 지원 △농산물 소비 촉진 △농지은행 사업 활용 활성화 △농업 관련 정책자금 금리 인하 △국무총리를 위원장으로 한 특별 대책 위원회 설립 등 6개항의 요구사업을 제출했다. 한 농민단체 관계자는 “오늘 간담회 파행 배경은 외형상 회의 공개 여부였지만, 본질적으로는 이런 농업계의 요구에 정부 대책이 전혀 없었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김 차관은 회의 후 “(농업인단체 요구 사업은) 단기간에 확정적으로 정부 입장을 말하기엔 부처 간 조율과 논의가 필요한 사항”이라며 정부 차원에서 논의해보겠다고 밝혔다.

정부는 이르면 오는 25일 홍남기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 주재로 대외경제장관회의를 개최해 차기 WTO 협상 때부터 개도국 지위를 주장하지 않는다는 방침을 정할 것으로 알려졌다. 농민단체 관계자는 “우리의 요구사항에 대한 정부 답변을 듣기 위해 추가 간담회를 요청했지만 거절당했다”며 “아무런 준비 없이 개도국 지위를 포기했을 경우 농민 반발은 더 거세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세종=이대혁 기자 selected@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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