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공은 北에 넘어갔다” 입장
지난 5일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7개월 만에 재개된 북미 실무협상에서 양측은 ‘의견’ 교환보다는 기본적인 ‘입장’만 주고받고 돌아온 것으로 전해졌다. 협상장에서 미국은 지난해 싱가포르 공동선언에서 합의한 △새로운 북미관계 수립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 △전쟁포로 및 실종자 송환 4개항에 대한 진전 방안을 설명하며 세부적 협의를 이어갈 수 있는 워킹그룹을 만들고 싶어했다. 반면 북한은 이에 대한 구체적 반응 없이 사전에 준비된 입장만 던져놓고 돌아간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양측은 사전 협의를 제외하고 6시간 30분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 동안 대화를 나눴다. 특히 미국은 협상장에서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모두 꺼내 놓았다고 한다. 미 국무부는 협상 직후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가져갔고 좋은 대화를 가졌다”는 성명을 내기도 했다.
다만 서로의 의견을 교환하며 반박과 재반박이 이뤄지는 일반적인 협상의 모습이 아니라, 기본 입장만 주고받는 정도에서 그쳤던 것으로 전해졌다. 실무협상 현장에서 북측이 밝힌 내용은 김명길 외무성 순회대사가 발표한 성명문과 유사하다고 한다. “미국과의 협상이 우리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고 결렬돼 매우 불쾌하다”는 북측 반응이 나온 뒤에도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대북특별대표 등이 당황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던 것도 이 때문이다.
미국은 공이 북한에게로 넘어갔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북미 실무협상이 결렬된 후 현재까지 북한은 대화 재개 시점에 대해 입장을 표명하지 않고 있지만, 미국이 제시한 내용에 대한 내부 입장을 정리하기까지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보고 있다.
북측도 미국에 “연말까지 숙고할 것을 권고”하는 등 대화 재개의 가능성은 열어둔 상태다. 실제로 여러 채널을 통해 북미 간 물밑 대화가 이뤄지고 있다는 정황이 드러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1일(현지시간) 북한과 관련해 “매우 흥미로운 정보가 있다. 많은 일이 진행되고 있다”고 밝힌 것도 이러한 물밑 작업을 시사한 발언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특히 북한이 성명을 통해 밝힌 ‘생존권과 발전권을 저해하는 대북적대시 정책을 철회하라’는 요구는 협상 테이블에서 구체적으로 논의되지는 않았지만, 미국도 생존권과 발전권의 개념을 구체화 해보겠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양진하 기자 realh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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