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회> 새로운 도전에 나선 브라질 커피농가
너무나 아름다웠던 카파라오를 떠나 다시 서쪽으로 이동했다. 두 시간쯤 지나 미나스 제하이스 주의 마누아수(Manhuaçu)란 이름의 지역에 도착했다. 이곳은 스페셜티 커피를 많이 생산하는 마타스 지 미나스 커피 산지의 중심에 위치해 있다. 5대째 커피 농사를 짓고 있는 비센치 파리아씨가 마을 입구까지 나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산길을 오르기 위해 그의 사륜구동 차로 갈아타고 곧장 농장으로 향했다.
유칼립투스가 빽빽이 들어차 있는 숲 속으로 비교적 키가 큰 편인 버번 종의 커피 나무들이 대오를 이루고 서있다. 비센치씨는 반대편 능선을 가리키며 17년 전 자신이 직접 산 언덕을 오르내리며 유칼립투스 묘목을 손수 심었다고 자랑했다. 나무들은 당장 재목으로 써도 손색없을 만큼 아름드리 나무로 자랐다. 유칼립투스가 그늘을 드리워서 인지 커피나무들이 유난히 짙푸르게 보였다.
차에서 내린 후 무릎까지 올라오는 고무 보호대를 찼다. 뱀에 물리지 않기 위한 보호장구다. 비센치씨가 성큼 밭으로 들어가 커피나무의 가지를 들어올리자 잎사귀 아래 숨어있던 붉은 색 커피 체리들이 드러났다. 탐스럽게 익은 카투아이 종이다. 주변에서 커피 수확이 한창인지 손 수확기 소리가 요란하다. 큰 기계가 오르기 힘든 산비탈이라 작업자들은 손 모양의 작은 전동 수확 기계로 커피를 털어낸다. 농장의 규모는 조금 큰 편이지만, 재배 방식은 카파라오의 작은 농장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많은 부분을 수작업에 의존하고 있고, 나무 그늘 등을 이용해 친환경적으로 커피를 재배하고 있다.
차가 들어가기 어려운 곳까지 좀 더 걸어 올랐다. 고도계는 1,300m를 가리킨다. 상당히 높은 위치다. 물론 적도가 지나는 콜롬비아나 케냐의 커피 농장이라면 이 높이는 꽤 낮은 편에 속할 것이다. 이들 나라에서는 1,200m 이하의 고도에서는 아라비카 커피 재배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남위 17~25도 사이에 위치한 브라질에서는 1,400m 이상의 높이에서는 커피가 자랄 수 없다. 그래서 이 높이라면 가장 높은 곳에서 수확하는 브라질 커피라 해도 무방하다.
고도와 커피 품질의 상관관계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다.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고도에 따른 기압의 영향은 크지 않다고 본다. 대신 같은 위도인 경우 고도에 따른 기온의 차이가 있고, 이로 인해 커피 조직의 밀도와 특성이 달라진다는 주장이 우세하다. 대체로 고도가 높을수록 좀 더 산미가 강하거나, 복합적인 풍미가 나타나고, 낮을수록 향미는 묵직하고 강해진다. 같은 산지라도 고도에 따른 뉘앙스의 차이가 있기 때문에 한 농장 안에서도 재배 구역의 위치에 따라 가격이 다르게 거래되기도 한다.
생산 가능 고도의 한계인 1,400m 부근에서 자라는 커피는 마셔보지 않아도 부드러우면서 너티한 브라질 커피의 특징과 다소 거리가 멀 것이라 짐작할 수 있다. 고도가 높은 만큼 기온이 낮아 과일의 산미와 초콜릿의 단맛이 잘 어우러진 좋은 커피일 테고, 그만큼 가격도 높을 것이다.
남들이 외면하는 높은 산을 매입해 농장으로 확장시킨 억척스러움을 보여온 비센치씨는 일찌감치 COE(Cup Of Excellence) 대회에서 브라질 최고 커피를 생산한 농장주의 반열에 이름을 올렸지만, 여전히 새로운 커피 품종과 가공 처리 방식에 대한 관심과 열의가 넘쳐 보였다. 물론 이는 비센치씨 뿐 아니라, 브라질의 모든 커피 생산자들에게 도전이자, 기회이기도 한 변화다.
스페셜티 커피에 대한 관심이 소비국에서 생산지로 옮겨가면서 새로운 커피에 대한 커피 생산국과 재배 농가들의 관심이 급격히 높아지고 있다. 아울러 종자학과 유전학의 발전으로 각 나라마다 경쟁적으로 품종 개발에 나서면서 국가별 커피의 전형성이 사라지고 있다. 특히 이런 추세는 브라질을 비롯한 중남미 국가들에서 두드러지고 있고, 종자 개량 등으로 새로운 품종이 개발되면 금세 이웃한 나라들로 전파되고 있다. 특히 에티오피아의 게샤(Gesha) 숲에서 자라던 야생종이 탄자니아와 코스타리카를 거쳐 파나마에서 화려한 게이샤(Geisha) 커피의 꽃을 피운 것은 국가를 넘나드는 품종 개량의 서막을 알리는 신호탄이 됐다.
전통적인 커피 품종인 티피카, 버번, 카투아이, 카투라 등은 새로운 관심 대상이 아니다. 지난 세기 게이샤를 비롯해 수단 루메, 파카마라, 파체, 빌라사치 등 많은 변종들이 야생에서 발견되거나, 인위적으로 개량돼 왔다.
21세기 들어서도 콜롬비아의 카스틸로, 케냐의 바티안 등 새로운 품종들이 커피 명부에 이름을 올리는가 하면, 인도네시아의 자바와 니카라과 품종이 이종 교배해 자바니카로 재탄생하거나, 에티오피아의 수단 루메와 사치모르를 교잡시킨 센트로아메리카노 품종이 중남미 국가에서 재배되는 등 커피는 더욱 복잡하고 현란해졌다. 커피 생산 국가의 커피 연구소들은 종자 교환 등 상호 협력을 통해 수많은 하이브리드 품종에 대한 실험을 계속하고 있어 커피의 복잡성은 더욱 빠르게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내추럴(태양 건조)과 워시드(수세식), 또는 허니 프로세싱(반 수세식) 등 몇 가지로 설명되던 커피 가공 처리 방식에 있어서도 최근 다양한 변화들이 나타나고 있다. 호주의 바리스타인 사사 세스틱이 보졸레누보 와인을 만드는 기술인 카르보니크 마세라시옹 방식으로 가공 처리한 커피로 2015년 월드 바리스타 챔피언십(WBC) 대회 우승을 거머쥔 이후, 발효를 이용한 가공 기법은 커피의 다양성과 가능성을 무한대로 바꿔놓았다.
커피를 채운 탱크에 탄소를 넣어 밀폐한 후 유산균의 생성을 촉진해 발효시키는 이 방법과 함께, 산소를 제거해 독특한 향미를 생성하는 에네로빅(무산소) 발효법, 커피 체리를 천연 효모(이스트)와 함께 탱크에 넣거나, 오렌지 등의 과일과 함께 넣어 발효시킨 커피까지 새로운 발효 처리 실험들이 우후죽순 쏟아지고 있다.
특히 지난해 WBC 대회에서 1위부터 6위까지 입상한 바리스타들이 모두 발효 방식의 커피를 들고 나오면서 발효는 커피 업계의 가장 뜨거운 이슈로 부상했다.
대를 이어 전통적인 농법으로 커피를 재배하던 농부들은 급변하는 시장의 트렌드에 귀를 기울이지 않을 수 없게 됐고, 새로운 품종과 가공처리 기술을 도입하고 익혀야 하는 불가피한 변화에 직면하게 됐다. 물론 새로운 변화가 늘 성공적이지는 않기 때문에 농부들은 여러 차례 시행착오와 실패를 경험하기도 한다. 하지만 비센치씨처럼 이를 도전이나 위기로 보며 외면하기보다 새로운 기회나 가능성으로 보는 농부들은 남들보다 먼저 움직이고 실천한다.
커피는 빠르게 진화 중이다. 우리나라의 커피 산업이 양적으로 팽창하면서도 질적으로는 느리게 움직이는 동안 주요 선진국을 비롯한 커피 소비국들은 새로운 커피에 열광하고 있다. 아울러 소비자들의 변화하는 취향을 예상하고 품종 개량과 가공 처리 기술을 발전시키고 있는 커피 생산지의 변화는 더욱 빠르다.
우리가 오늘 맛있다고 느끼는 커피는 10년 전의 커피와 분명 다르다. 마찬가지로 앞으로 우리가 경험하게 될 커피의 세계는 전혀 새로운 맛과 향으로 다가올 것이다. 불교에 만화방창(萬化方暢)이란 말이 있다. 따뜻한 봄날에 온갖 생물이 나서 자라고 흐드러지듯이 지금 우리가 마시는 커피는 수 만년 이어온 인류의 차(茶) 문화에 있어 절정의 화려함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이런 진화와 발전은 앞으로도 더욱 가파르게 이어질 것이다. 그 변화의 앞머리에는 열정 가득한 브라질 커피 농가들이 있다.
최상기 커피프로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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