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정연설 33분간 신경전]
“청년 고용률 12년 만에 최고치” 文대통령 발언에 한국당서 고함
두손으로 X자 그리며 맞서기도… 민주당, 고성 덮으려 박수치며 엄호
“공정과 개혁에 대한 국민의 열망을 다시 한 번 절감했습니다.”(문재인 대통령) “조국! 조국!”(자유한국당 의원들)
문재인 대통령과 한국당 의원들은 22일 문 대통령이 국회 본회의장에서 내년도 예산안 시정연설문을 읽은 33분 내내 팽팽한 기싸움을 벌였다. 문 대통령은 연설 중에 수시로 한국당 의원들을 응시했고, 한국당 의원들은 두 손으로 ‘엑스(X)’자를 그리거나 고함을 지르며 맞섰다.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은 28차례 박수를 치며 문 대통령을 엄호했다.
신경전은 문 대통령의 본회의장 입장과 함께 시작됐다. 오전 10시 문희상 국회의장의 본회의 개회 선언에 맞춰 문 대통령이 모습을 보이자, 민주당과 일부 야당 의원들 자리에선 박수가 쏟아졌다. 한국당 의원들은 침묵으로 문 대통령을 맞았다.
한국당 의원들은 문 대통령이 ‘청년 고용’을 언급한 대목에서 동요하기 시작했다. 문 대통령이 “청년 고용률도 12년 만에 최고치를 보였다”고 하자 한국당 의원들 쪽에서 “말도 안 된다!” “아닙니다!” 같은 고함이 터져 나왔다. 민주당 의원들은 박수를 치며 문 대통령을 응원했다.
문 대통령이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불 지핀 이슈인 ‘공정’을 입에 올리자 본회의장은 극도로 소란스러워졌다. “국민의 요구는 사회지도층일수록 더 높은 공정성을 발휘하라는 것이었습니다. 대통령으로서 무거운 책임감을 갖겠습니다”라는 문 대통령의 발언이 본회의장에 기름을 부었다. “사과부터 하세요!” “협치 하세요!” 등의 야유가 쏟아졌다. 민주당 의원들은 한국당 의원들의 고성을 덮기 위해 박수 소리를 높였다. 송언석 한국당 의원은 두 손으로 귀를 막고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문 대통령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제스처였다.
한국당 의원들은 문 대통령 연설이 끝나자 마자 자리에서 일어나 문 대통령에게 등을 돌린 채 본회의장 출구로 향했다. 문 대통령은 빠른 걸음으로 한국당 의원들을 따라가 악수를 청했고, 한국당 의원들은 굳은 표정으로 악수에 응했다. 나경원 원내대표를 비롯한 한국당 지도부는 문 대통령을 기다리다 인사하는 등 최소한의 예우를 갖췄다.
문 대통령과 한국당 인사들은 시정연설에 앞서 국회의장 접견실 만난 자리에서도 뼈 있는 농담을 주고 받았다. 황교안 한국당 대표가 “조국 전 장관이 사퇴하게 해주신 부분은 아주 잘하셨다”고 하자, 문 대통령은 답변하지 않은 채 고개만 끄덕였다. 한국당 소속 이주영 국회부의장은 "평소 야당에서 나오는 목소리를 귀담아 들어주면 대통령의 인기가 더 올라갈 것"이라고 했고, 문 대통령은 "그런데 뭐 워낙 전천후로 비난들을 하셔서…"라고 응수했다.
류호 기자 h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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