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이 먼저 간 지 1년 반이 지났는데, 아무도 사과하는 사람이 없어요. 누군가 문제제기를 해야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을 것 같아요.”
최근 서울 서초동에서 만난 구설희(28)씨는 여전히 괴로운 표정이었다. 동생 고(故) 구민회씨는 항해사, 기관사 면허를 지는 사람에게 군 복무 대신 배를 타게 하는 승선근무예비역 제도의 희생자였다. 지난해 3월 동생은 ‘괴롭힘을 참기 힘들다’는 유서를 남기고 배 위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하지만 동생의 죽음에 대해 책임지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동생이 죽은 뒤 반년여가 지난 지난해 10월에는 가해자들 모두 증거 불충분으로 불기소 처분을 받았다. 동생이 죽었지만 승선근무예비역들의 근무조건은 가혹했고 성추행이나 갑질도 여전한 것(본보 10월 21일자 13면)으로 드러났다.
그래서 구씨는 지난해 회사와 가해자들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냈다. 동생의 죽음에 대해 누군가 책임지는 모습을 보기 위해서다. 쉽지 않다는 건 너무 잘 안다. 동생의 죽음 이후 무슨 일들이 일어났는지, 직접 두 눈으로 봐왔기 때문이다.
우선 회사 대응이라는 게 ‘비공상 사망에 따른 보험금 2억원을 지급할 것’이란 말이 전부였다. 회사 측은 물론, 동생의 배에 함께 탔던 이들 중 그 어느 누구도 장례식장을 찾거나, 별도로 사과하거나, 재발방지책을 마련하겠다는 다짐을 하거나 하는 일들을 하지 않았다. 동생이 죽었지만 구씨는 “같은 배에 탄 사람들 얼굴, 이름, 연락처 어느 것 하나 아는 게 없다”고 했다.
정부 대응도 마찬가지였다. 동생의 죽음은 지난해 병무청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논란이 됐다. 그 때 병무청은 ‘해운업체와 유족간 합의가 진행 중’이라 밝혔다. 하지만 구씨는 그런 사실이 없다고 딱 잘라 말했다. “회사의 공식적인 사과와 재발방지책 없이는 합의할 수 없다”는 게 유족의 입장이었고 그 때문에 단 한 번도 합의에 나선 적이 없다는 설명이었다.
병무청이 내놓은 대책이란 것도 구씨 눈엔 형식적인 것들뿐이다. 가령 병무청은 승선근무예비역에 대한 ‘인권침해 전수조사’를 하겠다 했다. 구씨는 “전수조사가 아니라 카카오톡 메시지를 통한 안내에 불과했다”고 지적했다. 구씨는 이어 “동생이 남긴 기록을 보면 휴대폰으로 읽은 기사, 검색 내역 하나 하나를 검열했었다”며 “이런 환경에서 그런 정도의 안내만 받고 어느 누가 솔직한 얘기들을 털어놓겠느냐”고 반문했다.
지난해 국정감사 뒤 유가족을 만나고 싶다던 부산병무청장의 요청을 끝까지 거부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구씨는 “병무청에서 승선근무예비역 제도개선을 위한 태스크포스(TF)라도 만들면 기꺼이 함께 할 수 있겠지만 제도개선에 대한 이야기는 전혀 없었다”고 말했다.
아이디어는 많다. 구씨는 “선내 폐쇄회로(CC)TV 설치 의무화, 배를 탈 때마다 비정규직 형태로 계약서를 써야 하는 승선근무예비역의 취약한 구조 개선 등 하려면 할 수 있는 일들이 너무 많다”고 강조했다. 본보 보도를 접한 시민사회단체 군인권센터도 △인권침해 발생 업체를 승선근무예비역 배정 대상에서 제외하는 ‘원 아웃 제도’ 도입 △인권 실태 전수조사 등을 병무청과 해양수산부 등에 요구했다.
“정신과 가야 할 것 같아요” “진짜 힘들다” “자살할까” “하선할까” “윗사람에게 말했더니 역정만 낸다”던, 동생이 주변 사람들에게 보낸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면 지금도 구씨는 숨이 멎을 것만 같다. 구씨의 호소는 간절했다. “승선근무예비역 제도가 계속 유지돼야 할 정도로 그렇게 중요하다면, 그만큼 그 아이들을 소중히 여겨주세요.”
조소진 기자 soji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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