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7월 20대 후반기 국회의장에 당선된 문희상은 취임 일성으로 “대화와 타협, 협치를 통한 국정 운영은 20대 국회의 태생적 숙명”이라며 “남은 2년은 첫째도 협치, 둘째도 협치, 셋째도 협치가 최우선이 될 것”이라고 천명했다. 그는 특히 “새 정부 1년 차는 청와대의 계절이었지만 2년차부터는 국회의 계절이 돼야 국정이 선순환한다”며 야당 탓보다 정부ㆍ여당의 책임을 각별히 강조해 눈길을 끌었다. 야당의 몽니를 상수(常數)로 두고, 끊임없이 설득하고 달래며 국정을 끌어가야 한다는 지론이다.
▦ 김대중계로 정치에 입문한 문 의장은 정치적으로 산전수전 다 겪은 6선 중진이다. ‘장비의 탈을 쓴 조조’라는 별명에 걸맞은 뚝심과 지략을 자랑한다. 노무현 정부 초대 대통령 비서실장으로 당시 문재인 민정수석과 막역하게 지낸 인연도 있으니 기대가 컸다. 여의도 정치에 익숙하지 않은 문 대통령과 소통하며 당청 586 그룹의 과속을 견제할 수 있는 ‘포청천 어른’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올해 말이면 사실상 임기가 끝나는 20대 국회 성적표는 ‘사상 최악’의 오명과 함께 적대와 배타로 점철됐다. 협치를 강조했던 문 의장도 잘 보이지 않았다.
▦ 울분과 회한이 쌓여서일까. 문 의장이 동유럽 순방 동행 기자단에게 “(내년 총선에서) 과반이 아니라 3분의 2를 어느 당이든 몰아줬으면 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의회주의자를 자처하며 ‘협치의 미학’을 설파해온 문 의장의 언급이라고 믿기 힘들다. 더구나 “광장에서 떠드는 대신 촛불 민심을 제도화하고 헌법을 고치고 검찰개혁 등 개혁입법을 할 사람을 눈 부릅뜨고 뽑아야 한다”고 얘기했다니 야당이 발끈할 만하다. 의장실은 “국회선진화법 문제를 지적하는 취지”라고 해명했으나, 민감한 시기에 나온 부적절한 발언인 것은 분명하다.
▦ 문 대통령이 21일 종교지도자들을 만나 국회의 정치 공방에 갈등과 분열의 책임을 돌려 또 다른 논란을 낳고 있다. “국민통합 차원에서 나름대로 협치 노력도 하고 많은 분야에서 통합적인 정책을 시행했으나 진척이 없고, 검찰개혁 등 국민의 공감이 모아진 사안도 정치 공방으로 이어지며 갈등을 낳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야당은 “아전인수식 해석과 유체이탈 화법으로 책임을 외부로 돌리며 남 탓만 한다”고 다그쳤다. 22일 문 대통령은 국회 시정연설에서 실용과 경청을 강조하며 “나부터 성찰하겠다”고 했다. 너무 늦은 건 아닐까.
이유식 논설고문 jtino57@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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