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셔츠단’은 이탈리아 파시스트 준군사조직으로, 검은 셔츠 유니폼에서 유래한 명칭이다. 1923년 베니토 무솔리니가 총리가 되면서 검은셔츠단은 ‘국가안보의용민병대(MVSN, Milizia Volontaria per la Sicurezza Nazionale )’라는 이름을 얻었지만, 이후로도 그들은 검은셔츠단으로 더 널리 알려졌다. 나치 갈색셔츠단 외 유럽 거의 대다수 국가와 미국의 파시즘 집단들이 저마다 이런저런 색깔의 ‘셔츠단’을 만들어 자기들끼리 우쭐대곤 했다. 그들은 형식적ㆍ실질적으로, 이념이나 정당이 아니라 무솔리니 개인에게 충성을 맹세한 사병집단이었고, 무솔리니의 집권을 가능케 한 주력군이었다.
검은 셔츠단은 1919년 3월, 무솔리니가 밀라노에서 최초의 파시즘 집단인 ‘일 파르시 이탈리아니 디 콤바티멘토’를 창립한 직후, 심복인 이탈로 발보(Italo Balbo)에 의해 결성됐다. 1차대전 승전국이면서 전후 배상에서 소외된 데서 비롯된 상실감과 전후 불황, 당장 생계를 걱정하게 된 군인들의 불만이 팽배하던 때였다. 사회주의가 성장하면서 농민ㆍ노동운동이 활발해졌고, 지주와 자본가 계급은 공포에 휩싸여갔다. 왕실과 정부는 무능했다. 파시즘이 내건 반공과 부흥의 깃발 아래 지주와 자본가들이 결집했고, 검은 셔츠 제복에 전쟁 베테랑과 청년들이 집결했다. 검은셔츠단의 입단 절차에는 말 그대로, 두체(Duce, 우두머리)에 대한 충성 서약이 있었다. 그들은 사람에게 충성하는 집단이었다.
로마 군단 편제를 본떠 지역별 조직을 구축한 검은 셔츠단은 출범 2년여 만에 약 20만명의 무장 준군사조직으로 성장, 반대파에 대한 테러와 린치를 일삼으며 공포분위기를 주도했다. 1922년 10월 24일 나폴리에서 열린 파시스트 대표자회의 결의에 따라 그들은 무솔리니의 국가 지도자 옹립을 주장하며 수도로 진군, 28일 로마에 입성했다. 내전 위기에 겁먹은 당시 수상은 곧장 사임했고, 국왕(빅토르 엠마누엘 3세)는 29일 무솔리니에게 후임을 맡아달라고 청했다. 30일 밀라노에서 기차로 로마로 들어온 무솔리니는 검은셔츠단의 환호 속에 승리의 퍼레이드를 펼쳤다. 그는 자신은 권력을 찬탈한 게 아니라 이양받았노라고 말하곤 했다. 최윤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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