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기증법 시행 19년 만에… 정부, 임상경과 분석 나서
기증 후 건강관리 등 법률 없고 친족 기증 땐 검진비 지원 안돼
게티이미지뱅크

대학원생 최모(29)씨는 2016년 간 경화 말기인 어머니에게 자신의 간 우엽의 70%를 기증했다. 최씨의 기증 덕분에 어머니는 건강을 되찾았지만, 정작 최씨는 수술 후 줄곧 후유증을 겪고 있다. 면역력이 저하되면서 감기를 달고 사는데다 일상생활에서조차 쉽게 피로를 느낄 정도로 체력이 떨어졌다. 운동을 좋아해 체육지도자를 꿈꿀 정도였던 최씨로선 상상도 못한 일이다. 원인 모를 손발 저림도 그를 괴롭힌다. 최씨는 “허리통증도 수술 1년 뒤까지 계속돼 주치의에게 호소했지만 ‘대부분 그런 통증을 겪는다’며 진통제만 처방해줬다”고 말했다.

정부가 최씨와 같은 생존 장기기증자 전원을 대상으로 기증 후 임상경과 조사에 나섰다. 그동안 특정 장기 기증자 일부에 대한 설문이나 추적조사는 있었지만, 생존 기증자 전부를 대상으로 한 건강연구는 이번이 처음이다. 국내 장기기증의 80% 이상이 생존자 기증임에도, 그간 정부는 기증자에게 나타날 건강상 후유증이 알려지면 기증 기피 현상이 생길까 우려해 공개적인 조사를 꺼려왔다. 하지만 6개월 혹은 1년마다 정부가 경과를 관리하는 장기 이식자와 비교해 기증자의 건강권을 보호할 대책은 사실상 전무하다는 문제제기가 이어지면서 이를 위한 기초연구에 착수한 것이다.

21일 질병관리본부와 의료계에 따르면 질본은 최근‘살아있는 장기기증자 및 이식자들의 전반적 임상경과 평가’ 연구에 착수했다. 조사 대상은 장기 등 이식에 관한 법률(장기기증법)이 시행된 2000년 2월부터 현재까지의 생존 장기기증자 약 3만여명이며, 이들의 수술 후 진료, 병력 등 임상데이터를 분석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그간 정부차원 조사는 2016년 보건복지부 산하 국가생명윤리정책연구원이 2010~2015년 간ㆍ신장을 이식한 생존 기증자 1만여명대상 설문(응답자 729명)이 전부다.

기증 후 경험한 신체적 증상. 그래픽=박구원기자

연구는 살아있는 장기기증자의 수술 후 병력 분석을 비롯해 일반인 대비 △대사성 질환 △악성 종양 이환(병에 걸림) △간부전ㆍ신부전 이환 등 위험도 분석 등으로 진행될 예정이다. 서명용 질본 장기이식관리과장은 “장기기증 후 신체적 변화는 물론 정신ㆍ심리적 영향에 대한 연구를 통해 장기이식 안정성 확보 및 기증자 권익 보호를 위한 정책을 마련하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국내 장기 이식은 생존 기증자 의존도가 매우 높다. 장기기증법 시행 이후 올해 10월까지 생존기증자는 3만1,378명으로 전체 장기기증의 82.0%다. 같은 기간 뇌사기증자 5,483명의 6배, 심장사기증자 1,376명의 22배다. 특히 생존기증자 10명중 9명이 친족에게 장기를 나누는 ‘지정기증자’이지만 이들에 대한 지원은 없는 것과 다름없는 실정이다. 생존 장기기증자에게는 수술 후 1년 간 정기검진비가 지원되는데 그마저도 지정 기증자는 대상에서 제외되기 때문이다. 반면 뇌사자 장기 기증자의 유족에게는 장례ㆍ진료비 명목으로 최대 540만원을 지급된다. 생존 기증자의 사후 건강관리나 추적조사를 명시한 법률도 없다. 수술 후 2년간 기증자의 건강을 추적 조사하는 미국, 기증으로 인한 수입 손실 비용을 일부 보상하는 영국 등과는 대조적이다.

때문에 상당수의 기증자는 적절한 건강관리를 받지 못하고 있다고 호소한다. 2016년 생명윤리정책연구원 조사에서 간장기증자의 34.6%, 신장기증자의 27.0%가 이전과 동일한 신체상태로 회복하지 못했다고 답했다. 하지만 ‘기증 이후 증상에 대해 자세히 들었다’고 한 응답자는 간장 52.5%, 신장 50.8%에 그쳤다. ‘기증 후 적절한 건강관리를 받았다’는 경우도 간장 39.9%, 신장 47.7%에 불과했다. 하대청 광주과학기술원 기초교육학부 조교수는 “의료윤리의 차원에서 정부가 조사를 통해 생존 기증자들의 정보부족을 해소하고, 기증 후 진료비 면제나 심리치료 등 지원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신혜정 기자 aret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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