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1년 ‘청주 여학생 성폭행·살해’ 범인 몰린 박모씨 
 “9일간 잠 안 재우고 폭행… 무죄 났지만 억울한 옥살이” 
 당시 검경, 진범 잡기 포기한 듯 경찰 서고 ‘해결 사건’ 분류 
[저작권 한국일보] 지난 20일 충북 청주의 한 카페에서 만난 박모씨. 1991년 강간치사 용의자로 체포돼 구속됐으나 1심에서 무죄로 풀려났다. 최근 이춘재는 이 범행이 자신의 소행이었다고 자백했다. 오지혜 기자

화성연쇄살인사건의 진범 이춘재의 자백으로 당시 경찰의 강압수사 정황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8차 사건 범인으로 지목돼 억울한 옥살이를 했던 윤모(62)씨가 재심 청구를 준비하고 있는 가운데, 이번엔 박모(47)씨가 ‘이춘재 사건’을 뒤집어 쓰고 억울한 옥살이를 한 것으로 나타났다. 연쇄살인과는 별개의 사건이다.

지난 20일 청주의 한 카페에서 만난 박씨는 “당시 경찰이 8,9일간 잠을 재우지 않고 폭행하는 등 강압수사를 하는 바람에 이를 이기지 못하고 거짓 자백을 했다”고 주장했다. 박씨는 그 때 기억을 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은지 “별로 말하고 싶지 않은데”라면서도 자신의 젊은 시절을 지배했던 그 사건에 대한 억울함은 숨기지 않았다

박씨가 엮인 것은 1991년 1월16일 발생한 강간치사 사건이다. 1990년 11월15일 9차사건 이후 두 달 지난 시점이었다. 청주 가경동 택지조성공사장 하수구에서 박모(당시 17세)양이 성폭행 당하고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은 현장 인근에 살던 박씨를 범인으로 지목했다. 열아홉살 고등학교 중퇴자였던 박씨는 수사기관의 좋은 먹잇감이기도 했거니와, 하필이면 그 때 박씨는 별개의 절도 사건에 휘말렸다. 경찰은 박씨를 몰아세웠다. 잠을 재우지 않았고, 계속 때리고, 나중엔 거꾸로 매달아 얼굴에 수건을 씌운 채 짬뽕 국물을 붓는 고문을 가하기도 했다는 게 박씨 주장이다. ‘강간치사로 들어가서 몇 년 살다 나오면 된다’는 회유도 있었다. 박씨는 “잠을 자고 싶었고, 그만 괴롭힘을 당하고 싶었다”며 “자포자기 심정으로 범행을 다 시인했다”고 말했다.

박씨는 교도소를 찾아온 어머니가 ‘정말 네가 한 일이냐’며 울자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 그나마 다행스럽게 무죄 판결을 받았다. 하지만 꼬리표는 따라다녔다. 박씨는 “처음에는 주변에 억울하다 했지만 점점 말을 안 하게 됐다”며 “무죄를 받은 뒤에도 소문은 이미 다 퍼진 뒤라 사람들을 피해 다니며 살았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았지만 이 사실은 비밀로 했다. ‘누명 쓴 적 있다더라’는 정도만 알던 아내는 최근에야 그 일을 알게 됐다. 박씨의 누나는 “그 사건 당시 ‘19세 박모군이 누명을 썼다’는 뉴스를 보고 소름이 돋으면서 눈물이 펑펑 쏟아졌다”고 말했다.

박씨는 “이미 30년이 지난 일”이라면서도 “그 때 당한 가혹행위에 대해선 사과라도 받고 싶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돌아가신 부모님 생각이 간절했다. “이렇게 오해가 풀리는 모습을 볼 수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싶다”며 말끝을 흐렸다. 박씨는 8차사건 범인으로 지목됐던 윤씨와는 경우가 다르다. 무죄 판결을 받았으니 재심청구는 어렵다. 구금보상신청도 있지만, 시효가 3년이라 한참 전에 지났다.

박씨 사건은 마무리도 기이했다. 1ㆍ2심 모두 무죄를 선고하자 검찰은 상고를 포기했다. 하지만 진범을 잡기 위한 추가 수사는 이뤄지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이는 최근까지도 이 사건이 ‘해결된 사건’으로 분류됐다는 사실에서 잘 드러난다. 충북경찰청 관계자는 “이춘재의 자백을 받은 뒤 확인해본 결과 경찰 서고에는 박씨를 송치했다는 서류만 있어 해결된 사건으로 분류됐고 박씨가 무죄로 석방된 지 몰랐다”고 말했다. 이춘재의 자백이 아니었다면, 지금도 몰랐을 뻔한 사건이었던 셈이다.

청주=오지혜 기자 5g@hankookilbo.com

청주=조소진 기자 soji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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