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디 머레이가 21일 벨기에 앤트워프에서 열린 ATP 투어 유러피언 오픈 결승전에서 우승을 차지한 뒤 눈물을 흘리고 있다. 앤트워프=AP 연합뉴스

“지난 몇 년은 너무나 힘든 시간이었습니다.”

남자프로테니스(ATP) 투어 유러피언 오픈 단식 결승전이 열린 21일(한국시간) 벨기에 앤트워프의 로또 아레나 센터 코트. 스탄 바브린카(34ㆍ스위스ㆍ17위)의 마지막 회심의 포핸드가 라인 밖으로 나가자 우승을 확정 지은 앤디 머레이(32ㆍ영국ㆍ127위)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허공을 응시했다. 잠시 주저 앉은 머레이는 고개를 숙이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메이저 3승 포함 무려 45번이나 트로피를 들어올린 그였지만 이날 우승은 그 어느 대회 우승보다 더 값졌다. 로또 아레나를 가득 채운 5,200여명의 관중은 그에게 오랫동안 기립박수를 보냈다.

불과 6개월 전만 해도 은퇴설에 휩싸였던 머레이가 부활했다. 지난 3년간 3번의 수술과 오랜 공백기를 완전히 떨쳐낸 한 편의 드라마였다. 머레이는 이날 결승전에서 바브린카에 2-1(3-6 6-4 6-4) 역전승을 거두고 2017년 3월 두바이 챔피언십 이후 2년 7개월 만의 투어 대회 정상에 올랐다.

머레이는 ‘테니스 황제’ 로저 페더러(38ㆍ스위스ㆍ3위), ‘흙신’ 라파엘 나달(33ㆍ스페인ㆍ2위), 세계랭킹 1위 노박 조코비치(32ㆍ세르비아)와 함께 2010년대 중반까지 남자테니스의 ‘빅4’로 군림했던 최정상급 선수다. 네 명 중 그랜드슬램 우승 횟수는 가장 적었지만, 역대 최고 선수들의 틈바구니 속에서도 윔블던 2회, US오픈 1회 우승을 차지하며 ‘테니스 종주국’ 영국의 자존심을 세웠다.

하지만 191㎝ 82㎏이라는 거구에도 엄청난 활동량으로 코트를 커버하는 그의 플레이스타일이 문제가 됐다. 고질적인 허리와 고관절 부상이 그를 찾아왔다. 머레이는 2017년 윔블던 이후 2번의 수술을 받았고 무려 1년여 동안 경기에 나서지 못했다. 지난해 6월 가까스로 복귀에 성공했지만 부상이 다시 도졌다. 통증을 호소하던 머레이는 올해 1월 호주오픈 1회전 탈락 이후 엉덩이 수술을 받았고 또 다시 반년을 병상에서 보내야 했다. 당시 머레이는 “다시 코트로 돌아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며 은퇴를 암시하기도 했다.

앤디 머레이가 21일 벨기에 앤트워프에서 열린 ATP 투어 유러피언 오픈 결승에서 우승을 차지한 뒤 팬들과 사진을 찍고 있다. 앤트워프=AP 연합뉴스

하지만 “코트 위에서 다시 경쟁력 있는 선수가 되고 싶다”는 그의 의지는 꺾이지 않았다. 재기를 위해 포기하지 않고 회복에 전념한 머레이는 지난 6월 피터 트리 챔피언십에서 운동 강도가 덜한 복식으로 복귀, 첫 대회 만에 우승을 차지하며 건재를 알렸다.

복식에 비해 단식 도전은 만만치 않았다. 지난 8월 첫 단식 복귀전이었던 웨스턴 앤 서던 오픈, 두 번째 대회인 윈스턴 세일럼 오픈에서 모두 1승도 거두지 못하고 1회전에서 탈락했다. 하지만 지난 한달 간의 중국 대회 참가가 그의 자신감을 끌어올리는 데 큰 도움이 됐다. 머레이는 주하이 챔피언십과 차이나 오픈, 상하이 마스터스에서 도미니크 팀(26ㆍ오스트리아ㆍ5위), 마테오 베레티니(23ㆍ11위), 파비오 포니니(32ㆍ이상 이탈리아ㆍ32) 등 실력자들을 상대로 밀리지 않는 경기력을 보여줬다. 이후 유럽으로 돌아온 그는 첫 대회 만에 바브린카라는 난적을 꺾고 우승을 차지했다.

머레이는 “전날까지만 해도 너무 긴장돼 이길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들지 않았다”며 “예상치 못했던 우승이었고, 테니스는 내가 사랑하는 것이기에 저절로 눈물이 났다”는 소감을 전했다. 이어 “이제 내 엉덩이는 괜찮다. 하나도 아프지 않다”면서 “비로소 테니스를 즐길 수 있게 돼서 기쁘다”고 말했다. 머레이는 아내의 세 번째 출산을 함께 하기 위해 잠시 휴식기를 가진 뒤 47번째 우승에 도전할 계획이다.

이승엽 기자 sy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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