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한옥ㆍ상가를 레스토랑ㆍ주민쉼터 개조 ‘문화거리’로 변신 
 범죄차단ㆍ지역 활성화 한몫… 지자체 ‘도시재생 모델’로 확산 

전남 순천의 원도심인 향동과 중앙동은 몇 년 전만 해도 사람들의 발길이 뚝 끊겼던 잊혀진 거리였다. 요즘에는 문화의 거리로 탈바꿈하고 있다. 옥천(玉川)이 흐르는 강변이라고 해서 옥리단길이라는 이름도 붙었다. 이중에서도 ‘핫플레이스’로 첫손에 꼽으라고 하면 단연 유럽 가정식 레스토랑 ‘팡파르’다. 줄을 서서 기다려야 음식 맛을 볼 수 있는 정도다. 2017년 순천시가 만든 도시재생주민대학 1기 졸업생으로 이뤄진 협동조합 ‘고쳐드림’이 허름한 한옥을 개조해 지난해 6월 선보였다. 긴 세월의 흔적은 창호에 고스란히 남아있다. 적산가옥의 목재창호부터 1960년대 단창 유리창, 1970년대 방범창까지, 오히려 복고풍 감성으로 젊은이들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이렇게 수십 년 동안 방치됐던 낡은 한옥이 원도심 내 활력을 불어넣는 구심점이자 청년창업 공간으로 변모한 것이다. 도시재생주민대학 1기 졸업생인 김환욱 팡파르 대표는 “요즘 찾지 않는 공간을 재미있는 장소로 만들어보자는 취지로 시작했지만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찾아 힘이 난다”며 “청년창업자들을 조직화하고 이들의 창업을 지원하는 활동도 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이곳은 단순히 빈집을 개축해 다시 주택으로 공급하는 것을 넘어 청년들의 경제 활동을 통해 지역사회에 활력을 불어넣는 성공적인 도시재생 모델로 꼽힌다.

전남 순천시 원도심 내 버려진 한옥을 개조한 유럽 가정식 레스토랑 ‘팡파르’는 지역 최고 맛집이다. 지난해 6월 지역 청년들의 손에 의해 탈바꿈한 이곳은 쇠락한 원도심으로 젊은이들의 발길을 끌어모으는 일등공신이다. 하태민 기자

팡파르 인근 피부 관리 매장이었던 ‘에스테틱’ 역시 오랜 기간 방치됐던 대로변 상가를 리모델링해 주민 쉼터이자 창업 공간으로 활용하고 있는 경우다. 매장 입구 공간은 주민 쉼터로 항상 열려있다. 정기적으로 주민을 위한 피부 관리나 족욕 등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유흥주점이었다 버려진 지하를 개조해 지역 뮤지션들의 공연장이자 연주 연습장으로 재탄생한 곳(‘코워킹 커뮤니티 스페이스’)도 있다. 모두 침체된 원도심에 활력을 불어넣는 주역들이다.

빈집 살리기에 성공을 거두면서 순천시가 전국적으로 도시 재생 1번지로 거듭나고 있다. 지난해 10월 전국 최초로 빈집뱅크제를 도입했다. 빈집뱅크제는 6개월 이상 방치된 빈집을 활용해 주거, 창업, 공방, 주차장 등으로 다시 사용할 수 있도록 관련 정보를 공유ㆍ제공하는 시책이다. 2014년 일본에서 시작된 아키야(空き家ㆍ빈집)뱅크를 본떴다. 시는 빈집 중 활용이 가능한 곳을 찾아 은퇴자, 청년 등에게 연결해줬고, 이런 노력은 곧 결실을 맺었다. 원도심인 향동ㆍ중앙동 일대 빈집 수가 2014년 156채에서 최근 6채로 크게 줄어든 것이다. 동시에 이 지역에서 발생한 범죄도 2014년 100건에서 2018년 절반 수준(52건)으로 떨어졌다. 김홍두 시 재생기획팀장은 “도심의 빈집은 미관을 해치고 범죄에 이용되거나 지역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원인이 됐지만 빈집뱅크제 도입으로 범죄 우려가 줄어들고 부족한 주택을 저렴하게 마련할 수 있는 1석3조 효과를 내고 있다”고 말했다.

 깨진 유리창 고치기… 도시재생이 답이다 

일본이 먼저 빈집뱅크를 띄운 것은 빈집이 사회문제로 크게 떠올랐던 탓이다. 2013년 빈집이 820만채로 전체 주택의 13.5%에 달했다. 우리나라도 2015년 전국 빈집이 100만채를 넘어선 이래 매년 크게 늘고 있다. 머지않아 일본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윤관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통계청으로부터 받은 주택총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의 빈집은 약 142만호다. 전체 주택 1,763만호의 약 8% 정도. 일본의 ‘빈집 쇼크’ 수준은 아니지만 최근 3년간 빈집 증가율이 약 30%로 가파르게 늘고 있는 게 문제다. 조사 시점의 거주 유무로만 빈집을 판정해 미분양이나 이사 등으로 인해 잠시 동안 빈집도 모두 포함된 통계인 점을 고려해도 빈집 문제가 해가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는 실정이다. 한국국토정보공사(LX)는 2050년이면 전체 주택 열 채 중 한 곳(10%ㆍ302만 가구)이 빈집이고, 강원ㆍ전남 등 일부 지역에선 네 집 중 한 집에 사람이 살지 않을 것이란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빈집 문제에 대해 말할 때 ‘깨진 유리창 이론’이 자주 거론된다. 깨진 유리창 같은 사소한 허점도 그대로 두면 더 큰 병리로 진행된다는 얘기다. 지하철 벽면의 낙서를 지운 것만으로 범죄가 줄었던 미국 뉴욕 지하철 사례는 유명하다. 이 이론은 빈집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비어 있는 집이 관리되지 않고 오랫동안 방치되면 건물 붕괴 등 안전 사고는 물론 범죄 온상으로 주민의 안전을 위협한다. 이렇게 주거 환경이 나빠지면 빈집이 빈집을 낳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곧 지역 슬럼화로 이어진다. 이러한 이유로 빈집 대책은 결국 도시 재생과 맞닿을 수밖에 없다. 최근에는 폐가를 철거하는 것을 넘어 낙후한 지역의 활력을 되찾기 위한 재생사업이 곳곳에서 싹트고 있다.

젊은 작가 남진우ㆍ서웅주ㆍ신창용의 전시가 진행되고 있는 서울 금천구 ‘빈집 프로젝트 1가’에서 이 전시를 기획한 화가 이규원씨가 작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곳은 금천구와 금천문화재단이 비어있는 집을 재단장해 예술로 채운 ‘금천구 빈집 프로젝트’ 현장이다. 배우한 기자
 빈집을 예술로 채우다… 서울 금천구 ‘빈집 프로젝트’ 

16일 오후 7시 서울 금천구 가산로6에 위치한 3층짜리 건물. 입구엔 ‘빈집 프로젝트 2가(家)’라고 쓰인 작은 푯말이 붙어있다. 한쪽 외벽을 붉은 벽돌로 마감한, 세월이 느껴지는 건물의 좁은 계단을 올라 철물을 밀고 들어가니 딴 세상이 펼쳐진다. 서울 금천구와 금천문화재단이 비어 있는 공간을 청년 예술가들에게 내어주어 문화예술로 채우는 ‘금천구 빈집 프로젝트’ 현장이다. 예술가 창작 산실로 바뀐 빈집이 문화적 환경이 척박한 지역의 주민들에게 문화적 혜택을 나누는 거점이 된 것. 이른바 문화적 도시재생인 셈이다. 지난해 문 연 이곳은 온종일 미싱이 돌아가던 공장이 있던 자리다. 이제는 벽면에 젊은 작가 남진우ㆍ서웅주ㆍ신창용의 그림이 걸려 있다. 예술 작품을 전시하고, 주민들이 찾아와 그림을 그리는 아틀리에로 탈바꿈한 것이다. 이날도 무료로 운영되는 주민 참여 프로그램 ‘그리고 아트’가 한창이었다. 화가 이규원씨 주도로 금천구민이면 누구나 참여해 자신만의 작품을 완성할 수 있는 교육 프로그램이다.

16일 오후 서울 금천구 ‘빈집 프로젝트 2가’에서 열린 주민참여 프로그램 ‘그리다 아트’에서 금천구 주민들이 캔버스에 그림을 그리고 있다. 배우한 기자

독산2동에 사는 허정만(49)씨는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했지만 생업으로 그림을 그리는 게 여의치 않은 데다 집에선 그림을 그릴 공간이 여의치 않은데 집 가까이에 이런 곳이 있어 너무 좋다”고 말했다. 참가자들은 10대부터 50대까지, 직업도 학생부터 파티시에, 직장인 등 다양하다. 밑그림에 채색을 하고 있던 문서준(동일중 1)군은 “미술학원에서는 주제가 주어지고 그것만 그릴 수 있는데 여기 와서는 그리고 싶은 것을 아무거나 그릴 수 있어서 좋다”며 “앞으로도 시간이 되는 한 계속 참여하고 싶다”고 했다. 문군은 동생 문서연(금동초 5)군과 함께 매주 함께 와 마음껏 그림을 그리다 간다.

2017년 빈집 프로젝트 1가(오른쪽)로 재탄생하기 전 이곳은 외국인 대상 택배회사가 있다 문을 닫아 빈 공간이었다. 금천문화재단 제공ㆍ배우한기자

금천구에는 2017년 11월 개소한 1가를 비롯해 3가까지 3곳에서 빈집 프로젝트가 가동 중이다. 2가는 주로 주민들의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을 책임진다. 1가는 지역과 연계한 커뮤니티 프로그램이, 3가는 예술치유 프로그램이 주다. 그동안 총 36개 프로그램에 주민 3,000명 정도가 참여했다. 이 공간의 전시 기획을 맡은 이규원 작가는 “젊은 예술가들을 지원하는 작업실이자 마을 속 작은 미술관 역할을 하고 있다”며 “지역에 문화적 기반이 전무한데 골목을 지나가던 주민들이 한번씩 문 열고 들어와 작품을 보기도 한다”고 했다. 예술이라는 작은 씨앗으로 문화의 밭을 일궈 도시에 문화를 입히는 도시 재생 사업으로 뜻깊다.

 ’동네 꽃밭쉼터’로 변한 대전 판잣집 

대전 중구 용두동 언덕배기에 오르면 6~7명이 앉을 수 있는 소박한 정자를 만날 수 있다. 주변에는 노란색 메리골드, 나팔꽃을 닮은 보라색 사피니아 등 형형색색의 꽃들이 만개해 있다. 아담한 크기(87㎡)의 꽃밭쉼터다. 이 동네 최고 쉼터이자 명소다. 불과 2년 전까지만 해도 흉물스러운 빈 판잣집이 있던 자리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다. 한국전쟁 때 피난 온 주민들을 위해 대충 지은 판자집이었다. 수십 년 세월이 지나면서 주민들은 떠나고, 빈집은 거미줄과 주민들이 몰래 버린 쓰레기로 가득했다.

2017년 10월 대전 중구 용두동 꽃밭 쉼터 조성을 위해 빈 판자집을 철거하고 있는 모습. 대전 중구 제공

강선자(75) 할머니는 “바로 앞에 살다 보니 3년 전까지만 해도 역한 냄새와 섬찟한 분위기에 시달렸다”며 “특히나 쓰레기가 가득한 빈집에 불이라도 나면 큰일 날까 매일 조마조마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2017년 도심 속 빈집 정비 사업에 나선 대전 중구가 이곳을 서둘러 손본 결과 동네 분위기가 싹 바뀌었다. 강 할머니는 “지금은 집 앞에 세상에서 제일 좋은 꽃밭을 가지고 있는 기분”이라며 “여기서 동네 사람들하고 군것질을 하며 수다를 떠는 게 낙”이라고 웃었다.

대전 중구 용두동 언덕배기에 조성된 꽃밭 쉼터 모습. 2년 전까지만 해도 한국전쟁 당시 피난민을 위해 지었던 판자집이 오랫동안 빈 채 방치돼 있었다. 대전 중구 제공

대전 자치구 중 빈집 정비에 가장 적극적인 중구의 한 관계자는 “집주인이 흔쾌히 동의해 곧바로 정비사업을 할 수 있었다”며 “쉼터 주변에 아직 빈집이 좀 있는데 여건이 되면 꾸준히 정비해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중구는 2015년부터 지난해까지 빈집 총 44채의 정비를 마쳤다. 주로 공공텃밭이나 주차장, 주민쉼터 등으로 활용 중이다.

장남종 서울연구원 도시재생연구센터장은 지난해 펴낸 ‘마을 재생 위한 서울시 빈집의 실태와 관리방안’ 보고서에서 “빈집을 마을 재생 관점에서 대학생ㆍ사회초년생을 위한 부담 가능한 주택이나 마을 주민들이 필요로 하는 시설, 마을 활력을 높일 수 있는 시설 등으로 공급할 것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권영은 기자 you@hankookilbo.com

순천=하태민 기자 hamong@hankookilbo.com

대전=최두선 기자 balanced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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