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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베르테르 효과

입력
2019.10.22 04:40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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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약속 하나 하자. 만약 우리 중 누가 자살을 결심한다면 한강에 뛰어내리기 전 서로에게 전화를 하자. 그리고 어떤 일이 있어도 술 한 잔을 하자.” 사진은 마포대교 자살예방 생명의전화. 서재훈 기자
“우리 약속 하나 하자. 만약 우리 중 누가 자살을 결심한다면 한강에 뛰어내리기 전 서로에게 전화를 하자. 그리고 어떤 일이 있어도 술 한 잔을 하자.” 사진은 마포대교 자살예방 생명의전화. 서재훈 기자

베르테르 효과라는 말이 있다. 괴테의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서 유래된 말로 유명인이나 평소 선망하던 인물이 자살할 경우, 그 인물과 자신을 동일시해서 자살을 시도하는 현상을 말한다. 괴테가 자신의 실제 실연 경험을 바탕으로 쓴 소설로 주인공 베르테르는 로테라는 여인을 사랑하지만, 그녀가 자신의 사랑을 받아들이지 않자 깊은 실의에 빠진다. 결국 베르테르는 로테와의 추억이 깃든 옷을 입고 권총 자살을 한다. 그러자 유럽 청년들 사이에 베르테르의 열풍이 불었고, 심지어 모방한 자살 시도까지 하게 되었다. 과거 엘비스 프레슬리가 사망했을 때도 추모하는 자살 행렬이 이어졌고, 배우 장국영이 자살한 호텔에서 팬들이 뛰어내리는 경우도 있었다. 그 만큼 유명인의 자살은 일반인들에게 커다란 상처로 남는다.

얼마 전 유명 아이돌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슬픈 기사를 읽었다. 그녀의 나이 이제 스물다섯이었다. 그야말로 꽃같이 아름다운 나이였다. 평소 아이돌에게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있지 않던 나였지만 그녀의 죽음은 묘한 상처가 되어 온종일 우울했다. 그리고 그녀를 죽음에 이르게 한 이유를 찾아봤다. 우울증과 악성 댓글. 유명인의 자살이 일어날 때면 언제나 따라다니는 수식어. 비록 유명인은 아니지만 소설을 쓰는 나에게도 가끔 부정적인 댓글이 붙곤 한다. 하지만 격려의 댓글에 비하면 악성 댓글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하지만 놀랍게도 악성 댓글은 마치 인두로 살을 태운 듯 강렬한 고통을 동반하며 쉽게 잊히지 않는다. 그리고 그 여파는 상당 기간 이어진다. 때로는 몇 달 동안 글을 쓸 의욕이 나지 않는 경우도 있다. 그만큼 악성 댓글은 무시무시한 힘을 갖고 있는 게 사실이다. 어떤 이는 마치 원수라도 진 듯 집요하게 사이트를 돌아다니며 댓글을 남기기도 한다.

하루는 악성 댓글을 읽으며 곰곰이 생각을 해봤다. 대체 왜 이렇게까지 하는 걸까. 나이는 몇이고, 어떤 일에 종사하며, 가정 환경은 어떨까.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답이 나오질 않았다. 나는 결국 이 모든 게 나의 직업의 일부라는 사실을 받아들여야만 했다. 악성 댓글을 다는 사람 역시 결국은 내 책을 읽은 독자 중 한명이라는 사실을 인정해야만 했다. 그리고 스스로 댓글을 이겨낼 방법을 찾아야만 했다. 그 후 나는 여러 방법을 시도해 보았다. 댓글을 무시하려고도 했고, 댓글의 논리를 이성적으로 반박도 해봤다. 하지만 가장 좋은 방법은 결국 주변 사람들이었다. 나는 우울한 댓글이 붙을 때마다 친구들에게 털어놨다. 술을 마시며 울분을 토하기도 했고 화를 내기도 했다. 그러면 친구들은 저마다의 방법으로 위로를 해줬다. 어떤 친구는 같이 욕을 해줬고, 어떤 친구는 유머러스하게 넘기기도 했다. 하지만 결국 모두 내 등을 쓰다듬어줬고, 나는 조금씩 댓글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다. 친구 중 한명은 이런 말을 하기도 했다.

“우리 약속 하나 하자. 만약 우리 중 누가 자살을 결심한다면 한강에 뛰어내리기 전 서로에게 전화를 하자. 그리고 어떤 일이 있어도 술 한 잔을 하자.”

나는 이 말을 들으며 눈물을 흘렸다. 얼마나 고마운 말인가. 만약 내가 자살을 결심했을 때 전화를 받고 만사 제쳐두고 달려올 친구가 있다면 얼마나 든든할까. 그렇다. 사람은 사람 때문에 죽고 사람 때문에 살게 되는 것이다. 사람에게는 누구나 대나무 숲이 되어 어떤 얘기도 들어줄 친구가 필요한 것이다. 지금 한번 주변을 둘러보길 권한다. 과연 나에게는 비바람과 눈보라 속에도 달려와서 이야기를 들어줄 대나무 숲이 있는지. 끝으로 고인이 된 꽃다운 그녀의 명복을 빈다. 그리고 두 번 다시 이 같은 슬픈 일이 벌어지지 않길 빈다.

장용민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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