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전쟁은 백성을 부리는 장수의 능력에 따라 성패가 갈리곤 했다. 물론 그 능력이란 것이 복합적이라 한마디로 정의하긴 쉽지 않다. 부득이 하나만 고르라면, 장수와 병사들이 똘똘 뭉치게 하는 지도력이 아닌가 싶다. 모든 병사들이 결사의 각오로 전장에 임하게 만드는 것은 장수의 꿈이었다. ‘백 사람이 죽기를 각오하면 천하에 당해낼 자가 없다.(百人必死, 橫行天下)’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치 않았다. 왜냐하면 대부분 농민 출신이었던 당시의 병력 구성을 감안할 때, 자발적으로 목숨 걸고 싸우게 만들기는 힘들기 때문이다. 당시 민초들은 이 나라가 망하면 저 나라 백성이 되면 그만이었다. 이런 판국인데, 장수가 군대를 이끌고 가서 명령만 내리면, 병사들이 적진으로 돌격할 거라고 기대했다간 낭패를 보기 십상이었다. 사기를 북돋울 어떤 전기(轉機)가 필요했다. ‘육도(六韜)’에 이런 고민이 엿보이는 내용이 있다.
주(周)나라 무왕(武王)이 강태공에게 물었다. “나는 우리 병사들이 성을 공격할 때는 앞 다투어 성벽에 오르고, 들판에서 싸울 때는 앞 다투어 뛰쳐나가고, 퇴각하라는 징 소리를 들으면 성을 내고, 진격하라는 북소리를 들으면 기뻐하게 만들고 싶습니다. 어찌하면 되겠습니까.” 태공이 대답했다.
“장수가 겨울에 갖옷을 입지 않고, 여름에 부채를 잡지 않고, 비가 내려도 우산을 펴지 않습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병사가 느끼는 추위와 더위를 알 수 없습니다. 좁고 험한 길을 행군하거나 진창길 위를 지나가야 할 때 반드시 장수가 먼저 말에서 내려 걷습니다. 몸소 힘써보지 않으면 병사의 수고와 괴로움을 알 수 없습니다. 병사의 숙소가 마련된 후에 비로소 숙소에 들며, 병사의 밥이 다 지어진 뒤에야 식사하고, 병사들이 불을 지피지 못하고 있으면 장수도 불을 지피지 않아야 합니다. 이렇게 해봐야 병사들의 배고픔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럼으로써 모든 병사들은 진격하라는 북소리를 들으면 기뻐하고, 퇴각하라는 징 소리를 들으면 화를 내게 됩니다. 성벽이 높고 해자가 깊을지라도, 화살과 돌이 아무리 쏟아질지라도 병사들은 앞 다투어 성벽 위로 오르려 할 것입니다. 칼날이 서로 부딪쳐도 병사들은 앞 다투어 뛰어들 것입니다. 이는 병사가 죽기를 좋아하고 부상을 즐기기 때문이 아닙니다. 장수가 병사들이 추운지 더운지, 배고픈지 배부른지 세심히 살펴보고, 수고와 괴로움을 밝게 살폈기 때문입니다.”
성군이라는 무왕도 실전에서는 애로점이 많았다. 어떤 병사가 죽기를 좋아하겠는가. 장수와 병사의 강한 유대가 정예부대를 만든다. 요새 말로 공감 능력이 있어야 한다. 이렇게 해야 사람이 붙는다. 문제는 지행합일(知行合一). 가의(賈誼, BC200~168)의 ‘신서(新書)’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춘추시대 괵나라 임금 우공은 교만했다. 아첨하는 사람을 좋아하고 충간하는 신하를 배척했다. 민중이 따르지 않고 나라는 엉망진창인 판에 진나라가 쳐들어왔다. 백성들은 저항하지 않았고 괵나라는 망했다. 우공이 달아나다 쉬는데, 목이 마르다고 하자 마부가 술을 바쳤고, 배가 고프다 하자 마부가 먹을 것을 바쳤다. 우공이 기뻐하며 어디서 구했냐고 묻자, 준비한지 오래되었다는 것이 아닌가. 까닭을 묻자, 임금께서 도망가다 목마르고 배고프실 때를 위해서 마련해 두었다고 했다. 우공이 내가 도망치게 될 것을 알고 있었느냐고 묻자, 그렇다고 했다. 왜 미리 간하지 않았냐고 따지자 마부가 대답했다.
“임금께서 아첨을 좋아하시고 바른 말을 싫어하시어, 말하고 싶었지만 나라가 망하기 전에 제가 먼저 죽을까봐 겁이 나서 말을 못했습니다.” 우공이 불같이 화를 내자 마부는 자기가 틀렸다고 사죄했다. 우공이 다시 대답해보라고 재촉하자, 임금이 너무 현명해서 도망치게 됐다고 말한다. 마부의 답이 앞뒤가 안 맞는 것 같아서, 현명하다면 자리를 보존해야 하는데 왜 도망치는 신세가 된 것인지 캐물었다.
그러자 마부가 말했다. “천하의 임금들이 모두 못나고 어리석어, 그들이 우리 임금님이 홀로 뛰어난 것을 질투했기에 때문에 이런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우공이 기뻐서 웃으며 말했다. “아! 뛰어난 사람은 본래 이처럼 고생스럽다.” 결국 임금이 자는 사이에 마부마저 도망치고 남겨진 임금은 굶어죽어 짐승 밥이 되었다.
우공은 죽을 때까지 자신이 망한 이유를 몰랐다. 그야말로 인사불성(人事不省)하다가, 인사불성(人事不成)한 것이다.
‘삼략(三略)’의 말미에 이런 말이 있다. ‘원망 받는 자에게 원망하는 사람들을 다스리게 함은 하늘의 이치를 거스르는 짓이다. 임금이 한 사람을 이롭게 하고 백 사람을 해롭게 하면 백성은 성곽을 버리고 지키지 않는다. 임금이 한 사람을 이롭게 하고 만 사람을 해롭게 하면 모든 백성이 흩어져 다른 나라로 갈 것을 생각한다.’
문득 이런 말이 생각났다. ‘현인은 몸을 낮추고 성인은 마음을 낮춘다. 몸을 낮추면 시작을 도모할 수 있고 마음을 낮추면 끝을 보전할 수 있다.’
박성진 서울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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