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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시대의 마이너리티] 자립 걱정하던 화상 환자 은채씨, 화상재단 입사해 새 희망

입력
2019.10.29 04:40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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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0ㆍ끝> 편견과 싸우던 이들은 지금 

지난 8일 보도한 '우리시대의 마이너리티' 39회의 주인공은 시각장애인 학생 김경수(가명)씨였다. 서울의 한 사립대에 재학 중인 김씨는 고교 시절 시각장애인용 점역 EBS 교재를 구하는 데 애를 먹었던 경험을 털어놓으며 "시각장애인의 학습권을 존중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박형기 인턴기자
지난 8일 보도한 '우리시대의 마이너리티' 39회의 주인공은 시각장애인 학생 김경수(가명)씨였다. 서울의 한 사립대에 재학 중인 김씨는 고교 시절 시각장애인용 점역 EBS 교재를 구하는 데 애를 먹었던 경험을 털어놓으며 "시각장애인의 학습권을 존중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박형기 인턴기자

“화상을 입지 않았으면 사회복지대학원을 졸업하고 어린이집을 차려 원장님 소리 들으며 살았을지 모르죠. 하지만 화상 환자들은 용모 때문에 아무리 학력이 높아도 취직이 되지 않아요.”

지난 2월 26일 한국일보의 기획 ‘우리 시대의 마이너리티’ 에 소개됐던 화상 환자 김은채(48)씨의 말이다. 당시 “수술비는 계속 드는데 취직은 할 수 없으니 평생 자립하지 못한 채 기초생활수급자로 살까 봐 두렵다”며 울먹였던 김씨는 지난 7월부터 ‘직장인’이 됐다. 화상 사고 때 치료를 받았던 한림대한강성심병원에서 운영하는 사회복지법인인 한림화상재단의 사회기획팀에서 근무하게 된 것. 그는 “나처럼 중증화상을 입은 사람들에게 위로와 정보를 줄 수 있는 일을 하게 돼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한국일보가 ‘누구나 어떤 면에서는 소수자’라는 취지로 우리 주변의 소수자를 찾아 가 이야기를 들어보는 기획 ‘우리 시대의 마이너리티’를 연재한 지 1년 반이 넘었다. 40회 가까운 연재 기간 동안 한국일보 기자들은 장애인, 난민, 성소수자, 외국인 노동자 같이 통상 소수자로 여겨지는 이들은 물론, 고도비만자, 채식주의자, 왼손잡이, 암 생존자, 한국인 무슬림 등 사회의 차가운 시선과 편견에 시달리며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 이들의 이야기를 전해 왔다. 한국일보는 이 기획을 마무리하면서 취재를 통해 만났던 이들에게 다시 연락해, 현재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는지, 기사로 소개된 후 조금의 변화라도 있었는지를 물었다. 물론 불과 수개월~1년여 정도의 기간 동안 큰 변화가 생기긴 어렵다. 실제로 취재원 다수가 ‘편견은 여전하다’고 답했다. 하지만 기사를 계기로 법 제도를 바꾸려는 움직임이 생기거나 당사자가 새로운 삶의 에너지를 얻는 등 작지만 긍정적인 변화가 생긴 경우도 있었다.

 ◇베트남 모친 따라온 청소년 “한국어 못한다” 입학 거절 당해 

외국에서 태어나고 성장하다가 학교를 다닐 시기(학령기)에 부모를 따라 한국에 온 ‘중도입국 청소년’들은 여전히 학교 입학부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중도입국 청소년 지원센터인 서울시ㆍ현대차정몽구재단 서울온드림교육센터의 김수영 센터장은 “(지난 5월 7일 보도 이후) 변화된 것은 없다”며 “토론회가 열리기도 하고 정책 자문 등 활동도 해봤지만 여전히 많은 아이들은 본국에서 떼온 서류가 미비하다는 이유로 학교에 가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에도 중국에서 정규교육을 받지 않고 서당을 다니다가 온 10세 청소년이 초등학교 입학에 애를 먹었다. 한국인과 재혼한 어머니를 따라 온 한 베트남 출신 청소년(13)은 관련 서류가 있는데도 한국어를 못한다는 이유로 받아줄 학교를 찾지 못하기도 했다. 그나마 여성가족부가 내년 예산안에 이주배경청소년의 조기정착 지원을 위해 약 8억원(국비 4억7,800만원)을 책정한 것은 달라진 점이다. 이주민 밀집지역을 중심으로 이주배경 아동ㆍ청소년정책을 집중 추진할 시범도시(2개 지역)를 선정해 2년간 정책과 자원을 집중 지원할 계획이다.

소수자를 집단 구성원으로 포용하는 정도. 그래픽=신동준 기자
소수자를 집단 구성원으로 포용하는 정도. 그래픽=신동준 기자

 ◇정신질환자 취업, ‘진주 참사’ 이후 더 악화 

소수자에 대한 차별적 인식은 채용 현장에서 가장 극명하게 드러난다. 이 과정에서 좌절한 사람들은 아예 직장생활을 포기하기도 한다. 웹디자이너 송현숙(31ㆍ가명)씨는 난독증(2018년 12월 11일자)에 대한 직장 동료들의 편견 때문에 직장을 그만두고 현재 프리랜서로 일하고 있다. 난독증은 두뇌의 언어ㆍ읽기 기능과 관련된 영역의 신경회로 배선이 보통 사람과 다르기에 발생하는 증상이다. 때문에 야근을 하면서까지 다른 사람보다 서류작업에 3배 더 가까운 시간을 쏟았는데, 오히려 ‘난독증 핑계로 게으름 피우는 것 아니냐’는 비아냥으로 돌아왔다. 송씨는 “어차피 똑같이 야근을 할거라면 남들 눈치보지 않아도 되는 프리랜서가 낫다고 판단했다”며 씁쓸히 웃었다.

지난 4월 9일자에 소개됐던 정신질환자들의 취업 문제는 오히려 더 심각해졌다. 기사가 나간 지 불과 열흘도 안 돼 같은 달 17일 경남 진주에서 사회로부터 완전히 고립된 조현병 환자 안인득의 방화ㆍ살인 사건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이병범 대한정신장애인가족협회 부회장은 전화통화에서 진주 참사 이후 조현병이라면 정부가 소개해준 기업들도 손사래를 친다고 하소연했다. 직접 밝히지 않으면 주변에서 투병 사실을 알기 어려운 한 조현병 환자(30대)가 공공기관의 장애인 취업알선제도를 이용해 수개월 동안 코레일 자회사에서 성공적으로 수습사원 근무를 마쳤지만, 결국 정직원 전환에 실패한 사례도 있다. 이 부회장은 “성실하고 건강에 이상이 없어도 조현병이라면 기업들이 거부하는 분위기가 생겼다”라고 설명했다.

 ◇“ ‘수준’ 운운하며 직업계고 차별… 결국 퇴사” 

‘직업계고 출신 근로자’로 보도(7월 2일자)된 이지영(가명ㆍ18)씨는 8월 말을 끝으로 회사를 그만뒀다. 올해 서울의 한 상업계열 특성화고를 졸업하고 4월에 입사했으니, 재직 기간은 채 6개월을 채우지 못했다. 기자 인터뷰 당시에도 어렵사리 취업은 했지만 직장 내 고졸 사원에 대한 차별로 “미래가 없다”고 토로했던 이씨는 끝내 희망을 찾지 못했다. 퇴사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도 고졸 사원에 대한 일상적인 차별이라고 했다.

“조금만 실수를 해도 욕을 하거나 막말을 하는데, 어느 날은 ‘수준’을 운운하더라고요. 대졸 사원이 신입으로 들어왔는데, 상사들이 저희(고졸 사원)에게는 인사도 안 시키고 대졸 사원에게만 인사시키더라고요. 없는 사람 취급하는 거죠. 그런데 동료들이 이런 걸 보면서 ‘원래 그래’라며 당연하게 여기는 모습이 더 절망적이었어요.”

이씨는 다시 취업 준비를 하고 있다. 졸업생 신분, 6개월도 안 되는 경력을 들고 그가 두 번째 마주한 채용 시장은 지난해보다 더 가혹하게 느껴진다. 그는 “특성화고 졸업생이 졸업 후 최소 2년 시행착오를 거쳐 안정적인 직장에 정착할 때까지 정부가 적극적인 취업 지원을 해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2017년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고졸 취업자 중 이직 경험률은 54.0%로 대졸자(38.5%)에 비해 월등히 높았다.

 ◇‘한국인 무슬림’ 유튜브 1만 구독자 생기며 ‘이맘’ 되기도 

지난 3월 26일 ‘우리 시대의 마이너리티’ 기사에 ‘한국인 무슬림’으로 소개된 박동신(34)씨는 기사가 나가기 얼마 전부터 본인의 유튜브 채널에서 생방송을 시작했다. 반년이 지난 지금 박씨는 구독자 1만명을 보유하며 국내 무슬림 사이에선 ‘유튜브 스타’가 됐다. 예배를 인도하는 지도자인 ‘이맘’이 된 것도 큰 변화다. 이슬람교에선 기독교의 목사나 가톨릭 신부와 달리 대중의 추대에 의해 이맘이 될 수 있다. 그는 그동안 준비 중이던 한국이슬람평화회의 비영리단체 등록도 마치고 지난 7월 첫 번째 총회를 열기도 했다. 박씨는 이 단체에 대해 “이슬람을 알리고 신도를 늘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회 속에서 소통하면서 보다 나은 사회를 만드는 데 이바지하기 위해 설립했다”고 설명했다.

지난 3월 ‘한국인 무슬림’으로 소개된 박동신씨. 국내 무슬림 사이에서 ‘유튜브 스타’로 불리는 박씨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무슬림이 아닌 사람들과도 적극 소통한다. 최근 한국이슬람평화회의 비영리단체 등록에 이어 지난 7월 첫 번째 총회를 열기도 했다. 고경석 기자
지난 3월 ‘한국인 무슬림’으로 소개된 박동신씨. 국내 무슬림 사이에서 ‘유튜브 스타’로 불리는 박씨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무슬림이 아닌 사람들과도 적극 소통한다. 최근 한국이슬람평화회의 비영리단체 등록에 이어 지난 7월 첫 번째 총회를 열기도 했다. 고경석 기자

한국 사회에서 이슬람에 대한 반감은 여전하지만 그 안에서도 이슬람을 이해하려는 사람들이 점점 늘고 있다는 것은 긍정적인 신호로 읽힌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로 무슬림이 아닌 사람들과도 자주 소통한다는 그는 ‘마이너리티의 연대’를 통해 보다 나은 사회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씨는 “한국일보에서 다룬 소수자들이 한국 사회에 변화를 줄 수 있는 원동력이 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며 “소수자들이 서로 도우며 연대하다 보면 사람들의 인식도 조금씩 바뀌고, 사회도 조금씩 바뀔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고 말했다.

한국일보 정책사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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