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25일 대외경제장관회의를 통해 미국이 요구한 우리나라의 세계무역기구(WTO) 개발도상국 지위 포기를 결정할 것으로 20일 알려졌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7월 설정한 결정 시한은 오는 23일이다. 정부는 미국과 비공식 협의에도 불구하고 상황을 피해 갈 묘수를 찾지 못한 것으로 파악된다. 애써 개도국 지위를 고집해 미국과 정면 대립하는 게 득보다 실이 크다는 판단도 작용했다. 문제는 국내 반발 여론을 잠재울 농업 보호ㆍ육성책을 내놓을 수 있을지 미지수라는 점이다.
미국의 일방적 요구는 향후 새로운 다자간 무역협상에서 주로 중국의 개도국 지위 주장을 차단하기 위한 선제적 조치 성격을 갖는다. 하지만 개도국 지위를 인정할 수 없다는 4가지 기준, 즉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 △주요 20개국(G20) 회원국 △세계은행에서 분류한 고소득국가 △세계 상품무역 비중 0.5% 이상 등에 우리나라는 모두 해당이 된다. 따라서 칼을 빼든 미국으로선 예외를 인정하기도 어렵게 됐다.
국내에선 반발 여론이 비등했다. 1995년 WTO 출범 이래 개도국 지위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가구당 농업소득은 당시 연간 1,047만원에서 지난해 1,292만원으로 제자리 걸음을 했다. 또 같은 기간 곡물자급률도 29.1%에서 21.7%로 떨어져 OECD 회원국 중 최저 수준일 정도로 농업과 식량자급이 위축됐다. 따라서 향후 개도국 지위 포기에 따라 그나마 농업 보호 및 지원책 가동이 위축되면 국내 농업은 고사할 수밖에 없다는 위기감이 작용했다.
국회는 최근 개도국 지위 유지와 차기 다자간 무역협상에 대비한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결의안을 채택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보다 절실한 것은 개도국 지위 포기를 극복할 전략적 대책을 내놓는 일이다. 정부는 공익형 직불제 추진, 농업 경쟁력 강화, 국산 농산물 수요 확대 등 선제적 조치를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번 국정감사에서도 지적된 대규모 자본의 농산물 유통시장 장악 등 현장 문제를 개선할 대책은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막연한 청사진이나 비전만으로는 들끓는 여론을 잠재울 수 없는 상황임을 정부는 직시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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