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규직이라더니 계약직 이면 계약도
#지난해 4월 한 중소기업에 취직한 A씨는 1년여간 상사의 갑질에 시달렸다. 출근 시간 전에 나와 책상을 닦게 하거나 담배 심부름을 시켰고, 성희롱 발언까지 들어야 했다. 참다 못한 A씨가 부당한 지시를 거부하자 회사는 A씨에게 퇴사를 종용했다. 퇴사를 하지 않겠다는 A씨에게 회사는 ‘계약이 종료됐다’는 통보로 응수했다. 중소기업에 정규직으로 취업한 청년의 목돈마련을 지원해주는 ‘청년내일채움공제’도 가입했는데 알고 보니 회사가 계약직으로 이면계약서를 썼던 것이다.
#B씨는 회사의 권고사직으로 입사 3개월여만인 올 8월 회사를 나왔다. 자진퇴사가 아니기 때문에 실업급여를 받았는데 최근 갑자기 회사에서 자진퇴사로 근로복지공단에 정정 신고했다는 연락을 받았다. 직원을 해고하면 회사의 다른 청년내일채움공제 대상 직원이 더는 지원금을 받을 수 없다는게 회사가 내세운 이유였다. 하지만 회사는 B씨를 해고하면 자신들이 받는 정부지원금이 중단될까봐 ‘자진퇴사’로 거짓 신고를 한 것이다. 다른 직원들은 청년 몫의 지원금을 받을 수 있다. 자진퇴사가 될 경우 자신이 받은 실업급여를 토해내야 할 수도 있어 B씨의 고민은 깊어지고 있다.
20일 시민단체 직장갑질119가 낸 ‘정부지원금 제도와 직장 내 괴롭힘 보고서’에 따르면, 많은 고용주들이 청년내일채움공제, 고용장려금 등 고용 관련 정부지원금을 부정수급하거나 지원제도를 직장 내 괴롭힘 수단으로 악용하고 있었다. 특히 청년내일채움공제는 신청 시 근로기준법에 맞는 표준계약서가 필요해 노동관계법을 준수하게 하는 효과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현장에서는 이중계약서 등 편법이 만연해 노동자들이 피해를 보고 있었다. 청년내일채움공제는 중소기업에서 2년이상 장기 근속한 정규직 청년이 목돈을 마련할 수 있게 정부가 만기공제금 일부를 지원하고, 고용을 유지하는 기업에게도 지원금을 지급한다. 매달 12만5,000원(2년 형)을 넣으면 2년 뒤 부은 돈의 5배가 넘은 1,600만원을 탈 수 있고, 평생 단 한 번만 가입할 수 있기 때문에 청년들에게 인기다. 청년들이 일을 쉽게 그만두지 못한다는 점을 악용해, 많은 고용주들이 연차사용을 금지하거나 연장근무를 강요하는 등 직장 내 괴롭힘을 행사한다고 보고서는 지적했다. 직장갑질119의 최혜인 노무사는 “청년내일채움공제 재가입 문턱을 낮춰 노동자들이 부당대우를 당하는 상황을 개선하고 정부의 부정수급에 대한 관리감독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고용노동부 청년취업지원과 관계자는 “기업 귀책이 있는 퇴사나 가입 1개월이내에 해지한 경우 등에는 청년내일채움공제에 재가입할 수 있다”며 “부정수급 관리감독도 더 강화해나가겠다”고 말했다.
진달래 기자 az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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