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기업 투자 활성화를 위해 시행된 증권사 발행어음 제도가 취지대로 시행되지 않고 있다는 지적(‘벤처 지원’ 9조 모은 증권사, 벤처에 쓴 돈은 0원’ㆍ본보 6월26일자 1면 등)에 금융당국이 “제도 개선 필요성을 검토하겠다”고 한 지 4개월이 지났지만, 금융당국에선 그간 별다른 검토조차 없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20일 김종석 자유한국당 의원이 금융위원회로부터 제출받은 국정감사 답변 자료에 따르면, 금융위는 지난 6월 증권사들이 발행어음을 통해 9조원 가량을 조달해 놓고도 스타트업ㆍ벤처 기업에 전혀 투자하지 않고 있다는 본보의 지적 이후 비판 여론이 높아지자 “제도 개선 필요성을 검토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이후 ‘검토’라 할만한 어떤 행위도 하지 않았다.
금융위는 또 발행어음 조달 자금의 벤처투자 실적을 파악하고 있는지 묻는 질의에도 기존 제도의 기준을 그대로 읊는 수준으로 답했다. 금융위는 “발행어음 인가를 받은 증권사가 발행어음을 통해 조달한 자금을 기업금융 관련 자산에 일정 비율(50%) 이상 운용하고 있는지 점검하고 있다”며 “다만 벤처기업 등에 대한 별도 운용 비율이 정해져 있지 않다”고 밝혔다.
이는 벤처 투자에 대한 기준이 없어 점검 대상이 아니라는 의미로 읽힌다. ‘벤처 투자 0원’이라는 현실에 금융투자업계 내에서 조차 “발행어음 조달금의 일정 비율은 모험자본에 3년 이상 장기 투자하도록 의무화해도 된다”는 지적이 나올 만큼 ‘한계점’이 분명했지만, 이를 들여다 보려 하지도 않은 셈이다.
자연히 개별 증권사의 투자 현황에 대한 점검은 이뤄지지 않았다. 앞서 금융위는 지난 6월 28일 발행어음 인가를 받은 증권사(한국투자증권, NH투자증권, KB증권)를 포함해 자기자본 3조원 이상 대형 증권사들에게 “스타트업, 벤처, 혁신기업에 대한 투자 개선 방향”을 제출해줄 것을 요청하고, 긴급 간담회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이들은 “당초 기대보다 혁신기업에 대한 투자가 미흡한 측면이 존재한다”며 “벤처 등 혁신기업에 대한 투자를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결론 내렸다.
하지만 이 간담회를 끝으로 금융위와 증권사 간 정보 공유는 전혀 없었다. 실제 금융위는 “간담회에서는 증권사들이 모험자본 투자에 대한 개괄적인 기본입장을 자율적으로 공유한 것이며, 그 자체에 대한 이행여부를 점검할 만한 성격이 아니다”고 설명했다. 또한 당시 간담회에서 자료 제출을 하지 않은 증권사들에게 “간담회 이후 추가로 자료를 제출 받은 바도 없다”고 했다.
이에 대해 김종석 의원은 “증권사 발행어음이 인가된 뒤 벌써 2년이 지났고, 발행어음 만기(1년)가 벌써 두 번이나 돌아왔다”며 “이 시점에도 금융위가 벤처 투자 실적조차 파악하지 않았다는 것은 지나치게 안일한 태도”라고 지적했다.
김 의원은 또 “애초 1년짜리 단기어음으로 조달한 자금을 벤처 같은 ‘고위험ㆍ장기 투자’ 대상에 쏟아 붓는 것이 쉽지 않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제도를 시행한 금융당국의 책임도 있다”며 “금융위가 근본적인 제도 개선 방안을 내놔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상무 기자 allclear@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