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시간 정량화 등 형식적… 개인질병 있으면 여전히 불인정
과로사에 대한 기준과 평가가 엄격해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2017년 기준 우리나라 근로자 1인의 연평균 근로시간은 2,024시간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평균(1,759시간)에 비해 265시간이나 많은 ‘과로국가’이다. 올해 5월 13일 새벽 충남 공주우체국의 집배원 이모(34)씨가 심장마비로 숨진 것도 쉬지 못하고 장시간 노동에 시달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과로사 기준과 평가가 정량화돼 있어 근로자들이 과로사를 인정받기 힘들다면서 개선을 요구했다.
의학적으로 과로사로 숨진 경우 실제 질환명은 심근경색증이나 뇌경색, 뇌출혈 등이다. 고혈압, 고지혈증, 당뇨, 흡연 등이 이런 질병의 대표적인 위험요인이지만 요즘은 스트레스나 장시간 노동이 이들 질환을 일으키는 요인으로 주목받고 있다.
고용노동부의 고시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직업성 뇌혈관, 심장질환을 인정받기 위해서는 급성 스트레스 사건이 발생한 이후 24시간 이내에 심장, 뇌혈관질환이 발병했고, 최근 1주일 내에 노동시간 혹은 업무의 양이 30% 이상 증가했거나 일반적인 사람이 감당하기 힘든 정도의 업무시간 및 업무량 변화가 있어야 한다. 만성과로는 3개월 이상 업무량, 노동시간, 직업강도, 책임성, 휴일의 정도, 교대근무 혹은 야간근무, 정신적 긴장의 정도, 수면시간, 작업환경, 나이, 성별, 건강상태를 고려한다.
하지만 직업환경의학과 전문의들은 과로사의 평가 및 인정 시 개인적 요소와 직업적 요소를 복합적으로 따져 평가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아무리 고혈압, 흡연, 당뇨 등 개인적 위험요인이 있다 해도 ‘과로’라는 촉매가 작용하지 않았으면 과로사가 발생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특히 노동의 질적 특성은 무시한 채 정량적 기준으로 업무관련성을 평가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져 과로사 인정의 문턱이 높다는 건 문제다. 류현철 일환경건강센터 부센터장은 “직업적 요인이 인정되지 않고 단지 흡연을 하거나 고혈압이 있다는 이유로 직업병이 인정되지 않는 사례가 많은 것이 현실”이라고 말했다. 김형렬 서울성모병원 직업환경의학과 교수는 “야간노동은 정상적인 호르몬 주기 변화를 교란해 비만, 수면장애를 유발하고 이를 매개로 심혈관계 질환을 일으킬 수 있다”며 “직업병 심의과정에서 이러한 질적 특성이 잘 반영되지 않으며 이를 고려한 노출평가도 제대로 진행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치중 기자 cj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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