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다리 없는 의자, 차곡차곡 포개지는 탁자, 덮개를 씌운 탁상램프, 금속 주전자…. 오늘날 익숙하게 볼 수 있는 제품들의 디자인은 100년 전 설립된 독일 바이마르의 조형예술학교 ‘바우하우스’에서 시작됐다고 봐도 무방하다. 1919년 설립된 바우하우스는 1933년 나치에 의해 폐교됐다. 불과 14년간 운영됐지만, 당시 이곳에서 디자인 실험을 펼쳤던 예술가들은 이후 전세계적으로 퍼져 나가 혁신적인 디자인들을 만들어냈다. 설립자 발터 그로피우스(1883~1969)를 비롯해 루드비히 미스 반데어로에(1886~1969), 마르셀 브로이어(1902~1981), 빌헬름 바겐펠트(1900~1990), 페터 켈러(1898~1982) 등 33명의 교수진과 1,250명의 걸출한 예술가들을 배출했다.
이들은 20세기 초반 1,2차 대전과 산업화 시대 등 시대적 상황과 맞물려 실용적인 디자인을 추구하며 20세기 이전 산업 디자인과는 다른 길을 걸었다.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라는 철학을 추구하며 장식을 배제한 단순 간결한 디자인과 구하기 쉬운 저렴한 재료로 기능성을 강조했다. 디자인을 통해 더 나은 삶의 방식을 제안하고자 했던 바우하우스는 현대 디자인의 산실로 평가된다. 한국에서도 설립 100주년을 맞아 바우하우스의 철학을 살필 수 있는 전시가 잇따라 열리고 있다.
바우하우스 예술가의 작품을 가장 많이 전시하고 있는 곳은 서울 삼청동 금호미술관이다. 미술관 개관 30주년으로 마련된 ‘바우하우스와 현대생활’전에서는 미술관 디자인 컬렉션 120여점이 공개된다. 익숙한 디자인들의 초기 형태를 볼 수 있어 바우하우스가 현대 디자인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보여주는 전시다. 1920년대 바우하우스 학생이었던 마르셀 브로이어가 강철 파이프를 휘어 만든 뒷다리 없는 의자(캔틸레버)가 대표적이다. 비슷한 시기 마르트 스탐(1899~1986)도 가스 배관을 휘어 뒷다리 없는 의자(캔틸레버)를 선보였다. 나무를 활용해 네 개의 다리를 붙였던 기존 의자 디자인을 뒤엎고 두 작품은 강도가 높은 파이프를 활용해 ‘ㄷ’자 모양의 의자를 만들었다. 강철 파이프에 성형 합판을 만들어 차곡차곡 넣을 수 있게 디자인한 브로이어의 탁자도 좁은 공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도와줬다. 바우하우스의 금속 공방장이었던 바겐펠트의 모듈식 유리 용기 ‘쿠부스’는 저장용기를 내열 유리로 만들고, 일정 규격으로 만들어 활용도를 높였다. 오늘날 밀폐 용기의 시초인 셈이다. 그가 만든 입구와 손잡이가 간결한 금속 주전자는 오늘날 주전자 디자인의 원형으로 평가된다.
김희원 미술관 큐레이터는 “바우하우스는 1차 대전 이후 황폐해진 도시와 공간을 디자인의 고안을 통해 더 나은 삶의 방식을 제안하고자 했던 예술가들의 실험 정신이 녹아 있는 곳”이라며 “기존에 어떻게 만들지를 고민했지만, 바우하우스에서는 어떻게 쓸 것인가를 고민하며 기능과 실용성을 중시했다”고 설명했다. 8월 개막 이후 하루 평균 200명 이상이 찾으면서 방문 관람객은 미술관 개관 이후 최대치를 기록하고 있다. 전시는 내년 2월2일까지.
금호미술관이 현대 디자인의 산실로서의 바우하우스를 소개하고 있다면,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는 한국 디자인에 비친 바우하우스를 재조명하는 ‘바우하우스 미러’전이 내달 30일까지 열린다. ‘거울’이라는 개념을 매개로 한국 관점에서 해석되는 바우하우스를 조명한다. 김세중 작가는 ‘바우하우스 풍경’ 사진 콜라주 작품에서 고시원, 연립주택, 인테리어업체 등의 간판에서 바우하우스라는 이름을 쉽게 접할 수 있지만, 실체는 모호하다는 점을 꼬집는다. 이를 시작으로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 열린 대표적인 바우하우스 관련 전시들과 출판된 다수의 번역서, 총서들은 한국에 바우하우스가 어떻게 인식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국내 10여개 대학의 디자인과 학생들이 재현한 바우하우스 마스터피스들도 눈여겨볼 만하다. 이달 31일까지 열리는 ‘2019 광주디자인비엔날레’에서도 바우하우스에서 만들어진 작품과 그 작품의 현대적 의미를 되새겨볼 수 있는 전시가 마련돼 있다.
강지원 기자 styl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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