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윌리엄 터너의 ‘전함 테메레르’와 산업혁명의 도래 

※ 경제학자는 그림을 보면서 그림 값이나 화가의 수입을 가장 궁금해할 거라 짐작하는 분들이 많겠죠. 하지만 어떤 경제학자는 그림이 그려진 시대의 사회경제적 상황을 생각해보곤 한답니다. 그림 속에서 경제학 이론이나 원리를 발견하는 행운을 누리기도 하죠. 미술과 경제학이 교감할 때의 흥분과 감동을 함께 나누고픈 경제학자, 최병서 동덕여대 경제학과 명예교수가 <한국일보>에 격주 토요일 연재합니다.

윌리엄 터너 ‘전함 테메레르(The Fighting Temeraire)’(1839), 영국 국립미술관, 90.7㎝×121.6㎝

조지프 말러드 윌리엄 터너(Joseph Mallord William Turnerㆍ 1775~1851)는 걸출한 화가를 별로 배출하지 못한 영국이 가장 자랑하는 국민 화가라고 할 수 있다. 재능 있는 젊은 화가에게 수여하는 특별 예술상을 그의 이름을 따서 터너상(Turner Prize)이라고 한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그는 영국 낭만주의 풍경화의 거장일 뿐만 아니라 19세기 가장 위대한 풍경화가로 평가된다. 터너는 일찍이 왕립미술원에서 수학하였는데, 그의 작품은 빛과 색채에 의한 표현주의적 기법을 사용하며 빛의 묘사에 집중하여 웅장한 풍경의 모습을 보여 준다. 특히 바다를 표현한 작품이 뛰어나다.

 ◇풍경화 대가가 두 배를 그린 뜻 

터너는 낭만주의에 속하는 화가지만 추상화에 가깝게 보여질 정도로 매우 독특한 화풍을 가지고 있었다. 영국에서는 그의 화풍을 이어 받은 후계자가 나오지 않아 아쉽지만, 그의 작업들은 프랑스에서 인상주의를 꽃피우는 데 일조하게 된다. 또한 후대의 추상화가들은 순수한 색채를 추구했던 터너의 후기 작품에서 커다란 영향을 받았다.

터너의 진정한 인상주의적 스케치들은 당시 거의 전례를 찾아볼 수 없었다. 그는 여행하면서 얻은 체험과 눈으로 본 풍경으로 아름답고 경이로운 대자연의 장엄함과 그 속의 인간의 모습을 독특한 화풍으로 표현했다. 특히 자연의 빛과 대기 모습을 포착하여 신비한 빛의 변화와 대기의 움직임을 캔버스 속에 매우 사실적으로 형상화했다. 런던에서 터너의 작품들을 본 파리의 인상파 화가 클로드 모네(Claude Monet)와 카미유 피사로(Camille Pisarro)는 큰 흥미를 느꼈다. 영국에 체류했던 모네는 터너가 그려낸 날씨와 풍경을 보면서 그가 사용한 빛과 색채 기법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 터너의 새로운 화풍에 접한 모네가 그를 흠모하게 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터너의 많은 풍경화 중에서 유독 눈길을 끄는 것은 황혼 무렵의 바다를 그린 작품이다. 그것은 거대한 범선을 이끌고 가는 작고 검은 증기선을 그린 ‘전함 테메레르(The Fighting Temeraire)’이다. ‘전함 테메레르’는 1995년 영국 BBC에서 ‘영국이 소장하고 있는 가장 위대한 그림’ 1위에 선정되었다. 1839년에 그린 이 그림의 원래 제목은 ‘해체를 위해서 최후의 정박지로 이끌려 가는 전함 테메레르’이다. 이 전함은 1805년 트래펄가르(Trafalgar) 해전에서 나폴레옹과 스페인의 연합함대를 격파하며 혁혁한 위용을 보여 주었지만 이제는 구(舊)시대의 유물이 된 것이다.

터너는 두 배, 즉 전함과 증기선을 낭만주의적 수법으로 화폭에 담았다. 붉은 저녁놀의 바다에 떠 있는 거대한 범선은 과거의 영화(榮華)를 뒤로하고 역사 속으로 사라져가는 피할 수 없는 전함의 숙명(宿命)을 상징하고 있고, 예인해 가는 검은 증기선은 새로운 기술과 산업을 바탕으로 한 근대문명 시대의 서막을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과거의 시대는 가고 새로운 시대가 시작된다는 것이 그의 작품을 통해 고스란히 읽힌다. 마치 시대의 황혼을 빛으로 표현한 것 같다.

 ◇영화 속 ‘전함 테메레르’ 

이 그림은 흥미롭게도 007 영화에 등장한다. 샘 멘데스(Sam Mendes) 감독이 맡은 시리즈 23번째 작품인 ‘007 스카이폴’의 도입부에는 런던의 국립미술관(National Gallery)에서 한 그림 앞에 앉아 있는 제임스 본드가 등장하는데 그가 응시하고 있는 그림이 바로 ‘전함 테메레르’다. 잠시 후 본드는 MI6에서 나온 젊은 정보원 Q와 접선한다. 두 사람은 터너의 그림을 바라보며 묘한 신경전을 벌인다. Q는 한때 대단했던 전함도 쓸쓸히 퇴역하는 걸 보니 시간은 피해갈 수 없는 것 같다고 말한다. 이제는 한물간 본드를 겨냥한 말이다. 자신은 작지만 힘 있는 증기선에 비유하면서. 본드는 이에 “빌어먹을 큰 배(bloody big ship)”라며 쇠락한 전함에서 어쩔 수 없이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는 처지를 한탄한다.

터너의 명성은 당대 문예 비평가였던 존 러스킨(John Ruskin)이 그의 그림의 가치를 높이 평가하면서 더욱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2014년 작인 영화 ‘미스터 터너’를 보면 러스킨이 터너의 그림을 평가하면서 “당신의 그림 같은 명작을 볼 때면 순간을 포착하는 명료한 능력에 감탄을 하게 됩니다”라고 찬사를 늘어놓는다. 영화에서는 터너와 몇 사람이 보트를 타고 가면서 붉은 일몰 속에서 증기선이 테메레르 전함을 이끌고 가는 모습을 보는 장면이 나오는데, 터너가 실제로 증기선이 범선을 예인하는 장면을 목격하고 이 그림을 그린 것인지는 알 수 없다.(이 영화에서 터너 역을 맡은 배우 티모시 스폴은 그해 칸영화제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산업혁명이라는 새로운 시대 

터너가 표현하고자 한 ‘새로운 시대’는 산업혁명의 시대였다. 산업혁명은 18세기 중반부터 19세기 초엽까지 60여년에 걸쳐 영국에서 시작된 생산기술의 발전과 이로 인한 경제ㆍ사회적 변화를 의미한다. 이 시기 혁신적 기계의 발명으로 생산방식이 획기적으로 바뀌었고 농업사회는 산업사회로 이행했다. 기술적인 변화가 사회구조마저 새로운 경제체제로 급격하게 이행하게 만들었다는 점에서 ‘혁명’이라는 용어를 붙이게 되었는데, 산업혁명이라는 개념은 프리드리히 엥겔스(Friedrich Engels)가 ‘영국 노동계급의 조건’이라는 논문에서 처음 사용했다. 이후 영국의 사학자 아널드 토인비(Arnold Toynbee)가 1884년 ‘18세기 영국에서의 산업혁명 강의(Lectures on the Industrial Revolution of the 18th Century in England)’에서 산업혁명을 본격적으로 논의하면서 이 개념은 널리 퍼지게 됐다.

영국은 다른 유럽 국가들보다 봉건제가 일찍 해체되어 자유농민층이 형성되어 있었고 이들이 농촌에서 가내 직물공업에 종사하고 있어서 근대적인 생산기술이 접목할 수 있는 토양이 마련되어 있었다. 제임스 와트(James Watt)가 당시 발명한 증기기관은 생산방식을 획기적으로 바꾸어 놓았다. 증기기관을 개량하여 만든 방적기는 면직물 생산공정을 대량생산이 가능한 방식으로 개선하였으며, 이후 면직물 공업은 산업혁명의 단초가 되었고 실제로 영국을 산업사회로 진입하게 만드는 견인차 역할을 하였다.

산업혁명은 생산공정뿐만 아니라 경제구조에 혁명적 변화를 초래하였고 정치적인 면에서도 왕정의 지배체제가 무너지고 신흥 부르주아 세력이 자본을 축적하면서 영향력을 넓혀 갔다. 이러한 정치ㆍ경제적 변혁을 계기로 영국은 점차 자유주의 경제체제로 전환하게 되었다. 또한 농업 부문이 해체되면서 많은 농민이 도시로 이주하는 이농(離農)현상이 괄목할 만한 사회현상이 됐다. 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한 도시에서는 노동자들의 열악한 집단 거주지역이 확대되고 빈부 격차도 심화되는 경향이 나타났다. 이는 산업혁명의 여파로 공업화를 겪은 대부분의 사회에서 나타난 현상이었다.

 ◇혁명의 복판에서 외딴집으로 

터너의 그림 중에는 새로운 기술혁명의 상징물을 그린 것들이 꽤 있다. 가령, 증기기차를 타 보고 나서 엄청난 기차의 속도에 놀란 감흥을 화폭으로 옮긴 작품이 바로 1844년에 그린 ‘비, 증기, 속도(Rain, Steam and Speed)’이다. 또한 1842년 작 ‘눈폭풍: 항구 앞바다의 증기선(Snow Storm: Steam-Boat off a Harbour’s Mouth)’은 심한 눈폭풍에 난파 직전처럼 보이는 배의 모습을 다이내믹한 붓 터치로 보여 준다.

영화 ‘미스터 터너’에서도 보여 주듯이, 터너는 말년에 도시를 떠나 해안가에서 가까운 첼시의 외딴집에서 고독한 은거 생활을 하였다. 그는 조수나 제자도 없이 집주인 여자의 보살핌을 받으며 칩거했고 결국 그곳에서 1851년 고독사로 생을 마감하였다. 터너는 죽기 전에 자신이 남긴 1만9,000여점에 이르는 데생과 수채화, 유화, 스케치를 영국 정부에 기증하라는 유언을 남겼다. 그런 연고로 현재 런던의 테이트(Tate) 뮤지엄에는 가장 많은 터너의 작품이 전시되고 있다. 그의 유해는 세인트폴(Saint Paul) 대성당에 안장되었다.

최병서 동덕여대 경제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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