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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볼모 해외 위구르 인권운동 탄압하는 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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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볼모 해외 위구르 인권운동 탄압하는 중국

입력
2019.10.17 17:42
수정
2019.10.17 18:47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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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에 거주하는 위구르인들이 지난해 11월 이스탄불에서 중국의 위구르족 탄압에 항의하며 거리 시위를 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자료사진
터키에 거주하는 위구르인들이 지난해 11월 이스탄불에서 중국의 위구르족 탄압에 항의하며 거리 시위를 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자료사진

“가족의 안전을 생각하라.”

독일 뮌헨에 거주하는 위구르족 압두제릴 에멧(54)은 얼마 전 3년 만에 신장위구르자치구에서 걸려 온 여동생의 전화를 받았다. 반가운 마음도 잠시, 동생은 인사할 틈도 주지 않고 가족이 얼마나 좋은 환경에 살고 있는지 중국 정부 칭찬을 잔뜩 늘어 놓았다. 1년 전 죽은 남동생의 비보는 한참 뒤에나 들을 수 있었다. 머릿속이 복잡해질 즈음 낯선 목소리의 한 남자가 수화기를 건네 받았다. 자신을 중국 보안요원으로 소개한 남자는 “당신은 독일에 있지만 (신장에 남은) 가족의 안전을 한 번 생각해 보라”고 공포 분위기를 조성했다.

에멧은 20년 전 독일로 귀화해 중국 정부의 위구르족 탄압 정책을 비판하고 알리는 일을 해왔다. 세계위구르총회에서 자원봉사를 하는 등 꽤 열성 활동가였다. 대신 가족에게는 철저히 비밀에 부쳤다. 전화번호조차 알려주지 않았다. 인권운동 탓에 형제자매가 피해를 입을지 모른다는 걱정 때문이었다. 하지만 남자는 어떻게 번호를 알아냈는지 여동생을 앞세워 대놓고 활동을 중단하라고 협박했다. 에멧은 “중국 정부는 나를 위협하려 가족을 이용해서는 안 된다. 더 이상 침묵하지 않겠다”고 힘주어 말했다.

중국 당국이 가족을 볼모로 해외에서 활동 중인 위구르족 인권운동가들을 탄압하고 있다고 영국 일간 가디언이 16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최근 중국의 위구르 탄압정책을 향한 비난 목소리는 계속 커지는 상황. 7일엔 미국 상무부가 위구르 인권 침해에 연루된 28개 중국 정부기관 및 기업을 제재 명단에 올려 놓기도 했다. 지난해 유엔 발표 자료를 보면 신장위구르자치구에서 100만명 이상이 재교육을 명목으로 비밀 수용소에 감금된 것으로 파악됐다.

이렇게 국제사회의 반발과 비판이 거세지자 중국 정부가 직접 나서 가족을 인질로 반중 세력의 해외 네트워크를 와해시키려 한다는 것이다. 비밀 공작은 방대하고 집요하다. 활동가 거주 지역 사람들을 문어발식으로 접촉해 각종 모임과 이름, 휴대폰, 주소 등 개인정보를 마구잡이로 수집한다. 또 첩보 요원들을 외교관 신분으로 위장시켜 정보를 모으고, 중국 인기 메신저 위챗을 통해 무작위 연락도 시도한다. 가디언은 “에멧의 전화번호도 이런 식으로 흘러 들어갔을 가능성이 높다”고 추정했다.

일단 활동가와 선이 닿으면 인권운동을 중단하는 대가로 현금이나 비자 발급, 가족 보상과 같은 당근을 제시한다. 그러나 회유가 먹혀 들지 않을 경우 가족에 가해질 가혹한 결과를 설명하면서 협박이 뒤따르는 식이다. 신문과 인터뷰한 해외 위구르족 활동가 20여명은 예외 없이 중국 측의 침묵 강요를 받았다고 고백했다. 중국의 공작은 어느 정도 성공하고 있는 듯하다. 어머니가 신장 수용소에 갇힌 한 활동가는 프랑스 TV에 출연하고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에게 50만명이 서명한 탄원서를 전달할 만큼 위구르족 인권보호에 앞장섰지만 갑자기 공개석상에서 사라졌다.

인권 전문가들은 서방국가들의 무관심이 중국의 불법 첩보를 활개치게 만든 배경이라고 꼬집는다. 위구르 문제에 정통한 독립연구원 아드리안 젠츠는 “중국이 체계적 조직을 갖추고 활동가들을 위협하는데도 유럽연합(EU)은 지켜만 보고 있다”며 “EU 차원의 통합 대응 전략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김이삭 기자 hir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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